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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 회사들의 경쟁력 악화가 정말로 근로 시간 단축 때문일까? 일단 경영진들의 입장은 그런 것 같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주 52시간 근무제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 시간이 두 배나 차이가 난다는 발언을 했고, 장병규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제한한다고 발언했다.

화답하듯 정부가 탄력근로제, 선택적근로시간제, 유연근무제 적용기간 확대 등의 카드를 꺼내자 IT 노동자합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8일 오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과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은 ‘노동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화섬노조 수도권본부 IT 위원회’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의 노조 지회장이 함께 했다.

(왼쪽부터) 차상준 스마일게이트노조 지회장, 서승욱 카카오노조 지회장, 이정미 정의당 의원,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노동 시간 연장은 회사가 과도한 야근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하도록 나라가 허락해주는 조치라는 점이다. 어렵게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는데, 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정부가 시계를 과거로 돌리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논의에 중심에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반영되고 있지 않고, 사용자(회사)의 입장만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노동 시간 연장을 막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IT 기업들에 노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기자회견문 중 일부다.

IT 업계는 고질적인 하청구조로 인한 저임금노동과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장시간 근로가 만연합니다. 사람이 버틸 수 없는 구조이기에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평균 근속년수가 채 2년이 되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현실이 장병규 위원장이 말하는 것처럼 더 많이 일할 권리를 침해해서 일어나는 일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김택진 대표나 장병규 위원장이 근로시간 단축을 생산성과 경쟁력 저하의 이유로 꼽고 있지만, IT 노조는 노동 시간 연장 논의를 “사람을 갈아서 서비스를 만드는 식의 구시대적 관습”으로 회귀라 평가한다. IT 산업의 특성상 자율적인 업무환경이 정착되어야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IT 노조 측의 이야기다.

이날 기자회견을 IT노조와 공동 개최한 이정미 의원은 “장시간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게임과 IT서비스는 결코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며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쓰고 마는 업무 문화는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노동자 삶을 파괴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노조 측은 아직도 IT 업계까 고질적 하청구조로 인한 저임금노동과 납기일을 맞추기 위한 야근,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평균 근속년수가 채 2년이 되지 않다는 것이 실제 노동환경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또, 노동조합 조직률이 10%가 안 되는 현실에서, 정부가 노사협의에 따른 노동시간 확대가 가능하다고 지침을 내린다면 노조가 없는 회사에선 강제로 노동시간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의원은 “일시적 업무량 증가에 따른 특별 연장근로를 허용 할 경우 신규 게임을 출시하거나 업데이트를 할 때 ‘크런치 모드(야근 등 집중 근무체제)’를 합법적으로 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며 “노동자 선택권은 없고 그저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일을 해야 할 뿐”이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정부나 사용자가 노동 시간을 연장하는데 집중하는 대신, 오히려 창의적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의 노동시간 단축방안을 찾을 것을 촉구했다. 기업들이 야근 문화의 핵심요인인 과도한 단기목표나 부족한 인력, 하청구조에 대한 개선 없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후 오히려 휴게시간 기준을 강화하여 노동시간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조 지회장은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의 핵심은 사용자가 쓰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인 건강권, 휴식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