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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이 만든 웹툰 플랫폼은 의외로 병맛이 아니다

갑자기?

‘배달의민족’을 만드는 우아한형제들이 웹툰 플랫폼을 시작한다고 밝혔을 때,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듣진 않았다. 그동안 우아한형제들이 해왔던 수없이 많은 기발한 마케팅들 – 그 언저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하던 배우 류승룡의 TV 광고도 떠올랐고, 배민 신춘 문예도 생각났다. 세계 최초 치믈리에 같은 배달의민족 정서를 강화할 B급 만화 대잔치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들은 예상외로 진지했다. 창간호를 열어보니 10대들의 사랑과 싸움을 그린 학원물도, 3040의 지갑을 열게 한다는 성인물도 없었다. 만화경 안에는 바깥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는 덩치만 큰 고양이와, 꿈 따라 방송쟁이가 됐다가 몸도 통장도 아픈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립출판이 아니고서는 찾기 힘들다는 ‘단편 만화’도 긴 호흡으로 통째로 싣는다. 단편 ‘그림을 그리는 일’ 속 인물은 “망칠 땐 끝까지 망쳐봐. 완성도 아닌 그림을 망칠까봐 더 못 건드리거나 조금 망쳤다고 다시 시작하면 다음에 또 같은 자리에서 멈추게 돼”라는 진지한 대사를 뱉는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웹툰에 뛰어들었다가 사업을 접고 나갔다. 양대 포털이 석권한 시장에서 새로운 플랫폼이 자리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순한 만화’라니. 그래도 MSG를 뺀 착한 만화에 위로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만화경은 바로 그 자리를 노린다. 만화경에 일 번 타자로 입사한 이예근 셀장을 최근 우아한형제들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그린 공감 만화를 모아놓는다면, 우리도 (웹툰 생태계에서) 한자리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이예근 우아한형제들 만화경 셀장. 이 셀장과 만난 공간은 ‘가평’ 회의실인데, 가평에 있는 펜션처럼 꾸며놓은 공간이다.

원래 만화를 하던 사람은 아니다. 편집자 출신인데, 어떻게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해 웹툰을 하게 됐나?

저도 그게 의아했다. (김봉진) 대표님이랑 취재원과 기자로 만났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웹툰에 대해 말씀을 주시더라. 그래서 내가 “웹툰 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소개해줄까요?”로 시작됐다.

김봉진 대표가 어떻게 제안을 했나?

우아한형제들에는 재미있는 일을 꼬이게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으쌰으쌰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다. 그 연장 선상에서 물어본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잡지사에 있었고, 콘텐츠도 만들어 봤으니 와서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주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내가 웹툰을?’ 하고. 그 뒤로 대표님과 만나면서 얘기를 듣고,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해보겠습니다” 하고 왔다. 와서 나 혼자인 걸 알았다.

혼자라니. 지금은 만화경에 몇 명 정도 되나?

스무 명 정도 된다. 초반엔 혼자였고, 팀으로 하면서 사람 수가 늘어났다.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지금의 인원이 됐다. 내가 일 번 타자로 들어왔다. 일단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건 알았는데, 실제로 경험하면서는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긴 했는데 사업화를 위한 모델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해본 사람이 아니었어서 고민이 됐다. 우선 팀을 꾸려보라는 이야길 들었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우아한형제들이 웹툰을 한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었다. 매우 조용하게 진행된 것 같은데

사람을 뽑을 때도 웹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채용에서 우대사항에 ‘콘텐츠를 좋아했으면 좋겠고 만화나 영화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적었지만, 웹툰을 하게 될 거란 이야길 안 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외부에 알려지면 많은 이야기가 오갈 텐데 공식 답변을 드릴 만한 프로덕트가 있었던 게 아니라서 면접을 볼 때야 만화경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지원자도 놀라서 “아, (웹툰) 하세요?”하고 되묻기도 했다. 작가들을 만날 때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의향을 물었다.

우아한형제들이 웹툰을 한다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대표님 머릿속에 많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웹툰이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이 중심이지만, 기존에 해왔던 것 중에도 문방구나 서체, 배민 신춘문예 등 문화에 대한 콘텐츠가 많았다. 웹툰도 그중 하나인데, (그 아이디어를) 잘 다듬어 만드는 데 지난 1년여를 보냈다.

웹툰 시장은 이미 양대 포털이 석권했다. 만화경이 승산이 있을까?

기존 웹툰 시장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듯이 양대 포털이 꽉 잡고 있다. 레진은 레진 대로 콘텐츠의 유료화를 한 상황이다. 이들과 경쟁한다기보다는, 다른 만화로 다양성의 영역을 갖고 싶었다.

다른 영역이라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뭔가, ‘인스타그램 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있었다. 일상에서 작지만 즐거움을 주는. 공감할 수 있는 톤의 작품만 모아놓은 플랫폼이라면 우리도 한자리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승산이라는 단어보다는, 감성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이런 작품만 모아놓은 또 하나의 자리를 만드는 거다. 차분하게 작품을 볼 수 있고 울기도 하고 깔깔대서 웃기도 하는데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 있는 곳, 만화경은 그런 작품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웹툰 생태계에서도) 한 자리 마련할 수 있지 않겠나.

 

2주에 한 번씩 발행한다. 잡지 감성을 살려, 독자가 한 번에 한 권의 책을 모두 읽는 느낌을 주려 했다.


우아한형제들이 만화 플랫폼을 만든다니
, ‘B급 만화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저희가 배달의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이라고 말했을 때, “음식 만화 그리려는 것 아니냐, 브랜드 웹툰 준비하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병맛 만화, 개그만화 이야기도.

(현웃터짐) 음식 만화 ㅋㅋㅋ 그랬을 것 같다.

작가를 만날 때도 “혹시 그런 만화를 생각하고 저를 선택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런 건 없다. B급 만화를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 저희한테는 B급보다는 치유물 같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우선이다.

만화경 창간에 합류한 작가들에 어떤 공통성이 있는 것 같다. 작가를 만나는데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

작가님을 만날 때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 공감을 줄 수 있는 만화를 찾다 보니 일상툰이 많았다. 성인 만화를 할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유머보다는 자연스러운 유머를 원해서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 페이스북 등에 연재하는 분들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에이전시 소속보다는 혼자 하는 분이 많았다.

그런 작가를 어디서 어떻게 찾았나?

(네이버) 베스트도전이나 다음 웹툰리그도 봤고 인스타그램,  브런치, 페이스북도 봤다. 만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은 다 봤다. 인기 작가보다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발견해서 독자에게 전달해보자고 했다. 만화경 로고가 망원경인데, 망원경으로 보는 느낌하고 (작품을 발굴하는 과정이) 맞물렸다. 작가들이 대부분 연재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봤을 때는 인지도가 없었는데, 그사이 고맙게 팬이 많이 생긴 작가도 있다. 다른 작가들도 충분히 그런 잠재력이 있다. 작가들이 어디서든 연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작품을 연재할 수 있게 돼서 (만화경이) 운이 좋았다.

신인 작가 중심인가?

연재를 처음 하는 작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랑 같이 시작하면서, (작품을) 발견한다는 콘셉트와도 맞으니까. 작가들이 웹툰을 그리는 걸 행복해하더라. 다른 일을 하더라도 만화를 그리는 시간 만큼은 행복해해서, 미팅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만화경은 신생 플랫폼이라, 작가들도 선뜻 연재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어떻게 꼬셨나

작년에 만났을 때는 웹툰 플랫폼이 사라지는 것과 불공정 이슈가 있었다. 그래서 작가들이 새로운 웹툰 플랫폼이 생긴다는 것에 의심을 많이 했다. 작가님들을 만날 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작가님의 고민과 우리가 생각하는 고민을 잘 얘기를 나눴고, 지금 연재 작품에 들어온 열두 명의 작가와 “우리가 같이 한 번 해보자”는 뜻이 잘 맞았다. 그분들도 신생 플랫폼이라는 위험 부담을 갖고 왔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잘 통했다.

많은 작가가 가장 궁금해할 문제일 것 같은데, 고료는 어떻게 되나?

내부적으로 기준을 잡고 고료를 지불하고 있다.

잡지 콘셉트를 잡은 이유가 있나?

열두 편의 작품을 따로따로 보는 것보다는 한 번에 볼 수 있게 담을 그릇이 만화잡지 형식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다 보니 잡지가 잘 어울리겠다고 봤다. 만화뿐만 아니라 인터뷰나 텍스트 같은 콘텐츠도 들어갈 수 있고, 단편 만화도 넣을 수 있다. 오시는 분들이 어쿠스틱,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한다. 잡지 형태는 새롭지만, 스크롤로 웹툰을 보는 방식은 익숙하다. 이런 것이 시장에서 조금 차별성을 갖는 콘셉트다.

창간호 마케팅으로 종이 잡지를 발간했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면에서, 우아한형제들 식 마케팅의 일환이다.

2주에 한 번씩 발행한다

잡지 콘셉트를 잡으면서 ‘아이큐점프’나 ‘소년점프’가 격주에 한 번 나왔던 걸 적용했다. 연재하는 작품이 한 회에 100컷 이상이다. 작가들과 같이 만드는 환경을 생각하면서 발행주기를 2주로 잡았다. 작품이 많으면 요일제가 좋았겠지만, 저희가 묶은 열두 편의 작품과 인터뷰와 단편이 어우러지는 걸 생각하면 2주가 좋은 작품이 나올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독자들도 덜 부담스럽게 다음 호를 챙겨보지 않겠나. 저희도 테스트를 한번 해보는 것이다. 2주가 독자 입장에선 길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 내부에선 작품 리뷰도 해야 하고 새로운 작가도 찾아봐야 하니까 2주가 빠르더라.

포털 작가들은 매주 연재하는 시스템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순위를 생각하면 매회 웃겨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긴 호흡을 갖지 못할 때도 있고

회마다 웃길 필요는 없다. 작가님들이 조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꾸 부담을 가지면 본인이 하고픈 이야기를 제대로 못 할 때도 있다. 독자들이 1초라도 스크롤을 느리게 했으면 좋겠다. 작가가 대사 하나도 고생해서 쓰는데, 그걸 생각하면서 읽었으면 좋겠다고 내부에서도 이야기하곤 했다. 작가님들한테도 연출하면서 조급함을 안 가지고 작품 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었다. 물론, 마감은 잘 지켜야 하겠지만(웃음).

피드백이 있나?

(예전 종이 잡지 만화처럼) 애독자 엽서가 있는데, 여기로 보내시는 걸 다 본다.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온다. 라디오 사연 같다. 작품을 보고 “나도 만화가를 꿈꿨는데 이 작품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부터 초등학교 3학년생의 “웹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라는 문의까지 다양하다. 잡지형식이나, 순한 만화 콘텐츠에 독자들이 익숙해지도록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창간호가 나왔을 때 작품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딱 좋다”는 것부터 “이게 뭐야”라는 반응까지. 그런데 3권째 쯤 되니까 각 작품의 스토리도 나오고 틀도 잡히다 보니 “이런 작품이구나” 하는 경우가 생긴다.

스스로 만든 잡지를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회사가 만화경에 준 성과지표가 있나?

저희 미션은 콘텐츠를 잘 찾고 지켜보자는 거다. 좋은 작품을 발견하고 이걸 잘 다듬어서 독자들에 전달하는 것이 정확한 KPI다.

배달의 민족과 계획된 협업이 있나?

지금 당장은 없다. 우아한형제들에서 하는 새로운 서비스로서 (정체성을) 당분간 유지할 거다. 그렇다고 가능성을 닫아놓진 않는다. 처음에는 만화경이 배달의민족 브랜드 인지도 덕을 봤다. 앞으로는 만화경이 배달의민족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열심히 해야겠다.

IP 활용 계획은?

계획이 있다기보다,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지금 그 계획을 바라보기엔 아직 시기가 안 된 것 같다. 바라보고는 있다. 다른 플랫폼, 콘텐츠 회사들의 IP 사업을 보면서 “아, 이렇게 하고 있구나” 하면서 “우리가 하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2차 콘텐츠, TV 드라마 등, 상상은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만화경이 2권까지 나왔는데, 김봉진 대표는 뭐라고 하던가?

“콘텐츠가 좋아요”라고 말하더라. 긴 얘기는 없었다.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노력해달라고 했다. 만화경에 수록된 단편이 호흡이 긴데, 의외로 이걸 다 보고 코멘트를 줬다.

바람이 있다면.

독자는 물론, 작가들하고도 잘 소통하는,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게 장기 목표다. 또, 독자들이 지금 만화경에서 연재하는 작품을 모두 다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연재작품도 있지만, ‘편집자의 방’이란 섹션에서 가상의 편집자 캐릭터가 단편을 소개한다. 그 단편이 짧게는 1화짜리부터 길게는 8화짜리까지 있다. 이걸 한 번에 소개한다. 모두 읽는데 40분 정도 걸리더라. 기존 웹툰보다 호흡이 굉장히 긴데, 그 의미를 느꼈으면 한다. 단순히 만화만 있는 게 아니라, 텍스트도 있고 작가 인터뷰도 있다. 만화가 가진 모든 콘텐츠를 담아 보려고 했다. 앱 다운로드 수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저희 작품이 상을 받는 거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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