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방통위의 국뽕 프레임은 끝났다

“향후에도 방송통신위원회는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 이익 침해 행위에 대해서 국내 사업자와 동등하게 규제를 집행하는 등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페이스북이 제기한 행정소송 1심 판결 이후 방통위가 내놓은 반응이다. 이 소송에서 방통위는 페이스북에 완패했다.

[관련기사 : 방통위, 법정에서 페이스북에 완패했다]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듯, 방통위는 지금까지 글로벌 콘텐츠 업체의 불공정 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는 국내 업체를 대변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포지셔닝을 취해왔다.

망 이용료 관련 논쟁이 마치 ‘힘없는 국내 기업’ 대 ‘힘센 초국적 기업’의 싸움인 것처럼 프레임을 짜온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등 국내 기업들은 망 이용료를 많이 내고,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기업은 망 이용료를 전혀 내지 않거나 적게 낸다는 논리가 주를 이뤘다. 또 글로벌 콘텐츠 업체들이 한국 통신사가 구축한 망에 무임승차한다고 주장해왔다. 방통위는 이 프레임에 기초해서 ‘망 이용 계약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방통위가 좀 머쓱하게 됐다. 그동안 줄곧 써먹던 ‘국뽕(애국심 고취)’ 프레임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국내외 7개 인터넷 사업자들은 지난달 26일 공동성명을 내고 “문제의 본질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상호접속고시’와 과다한 망 비용”이라며 “망 비용의 지속적 상승구조를 초래하는 현행 상호접속고시를 국제적 기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이번 소송의 핵심은 ‘망 관리의 책임이 통신사와 콘텐츠업체(CP) 중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해 법원이 CP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며 “국내·국외 CP 간 역차별 문제와 구분 지어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규모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콘텐츠 기업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자 통신사들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통신사업자연합회는 지난달 28일 CP 업계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통신사연합회는 “극소수 대형 글로벌 CP는 전체 트래픽의 30~40%를 점유하고 막대한 수익을 챙기면서도 망 비용을 내지 않고 있다”면서 “이러한 비용은 이용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쟁을 통해 갈등의 본질이 명확해졌다. ‘힘없는 국내 기업’ 대 ‘힘센 글로벌 기업’의 대결이 아니라 국적과 상관없이 ISP(통신사) 대 CP(콘텐츠 업체)의 이권 갈등이 본질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정답이나 옳고 그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자마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양측의 논리를 살펴보자.

망을 깔고 유지 관리하는 데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통신사의 주장은 CP도 이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망 위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 망 이용료를 내라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특히 유튜브처럼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서비스는 망 비용을 많이 내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CP는 통신사가 이용자들에게 요금을 받아놓고 CP에도 달라는 것은 이중으로 수익을 얻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인터넷은 자유롭게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인터넷 접속료 이외에 망 이용료를 더 받는 것은 인터넷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강변한다. 아울러 이용자들이 통신사에 돈을 내는 이유는 콘텐츠를 보기 위한 것이지 망 자체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서, CP의 비용 부담으로 콘텐츠 생산이 위축되면 CP뿐 아니라 인터넷 전반이 위축돼서 통신사까지 피해를 입는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 역시 일리가 있다.

이처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 집단의 이익이 상충하는 문제인 경우,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정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가짜 국뽕 프레임 대신 진짜 국뽕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대한민국 전반에 이득인지 판단하고, 그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지금까지 방통위는 통신사 편을 들어왔다. ‘힘없는 국내 기업’ 대 ‘힘센 초국적 기업’이라는 가짜 국뽕 프레임이 일방적인 편애의 근거였다. 그러나 이것이 가짜 프레임이며, 실제는 ISP 대 CP 간 이익의 상충 문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도 본질적 프레임 위에서 판단할 때가 됐다.

과연 방통위는 CP의 이익에 반해 계속 통신사 이익을 위할 것인가? CP는 반대하고 통신사는 원하는 상호접속고시를 미래부는 계속 유지할 것인가? 대한민국 정부는 계속 CP의 이익은 외면하고 통신사의 이익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 질문이 본질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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