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전상서, 트렌드란 무엇인가

CES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한국 IT담당 기자들이 해마다 못가서 안달인 것일까. 바이라인네트워크도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9에 방문, 취재했다. 선배 기자들이 간 거였는데, 한국에 있었던 내가 봤을 때 다른 건 몰라도 트래픽은 잘 안 나오더라. 사실 지금 상하이에서 매일 밤을 새며 글을 쓰고 있는 내 기사 트래픽도 안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봤을 때 트래픽이 안 나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독자가 별로 관심이 없는 주제나 기획을 잡았을 때가 첫 번째. 두 번째는 조금 슬픈데 글을 못 써서다. 바이라인네트워크 선배들이야 원체 글을 잘 쓰는 분들이고, 내 글도 상하이 오기 전에는 빵빵 터졌다. 이런 것을 봤을 때 글이 문제는 아닌 것 같고, CES에 무엇인가 마력이 있지 않나 생각하려고 한다.

어찌됐든 IT담당 기자들에게 CES에 굳이 돈 들여서 가는 이유를 몇 가지 물어봤는데, 공통적으로 나오는 답변이 있었다. CES에 가면 그 해의 아젠다를 잡을 수 있는 ‘기술 트렌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기술 트렌드나 알 겸, 동시에 “모빌리티하면 역시 물류지!”라는 미친 생각을 하면서 여기 온 거다. 모빌리티로 물류 이야기 쓰는 기자는 흔치 않아서 직접 올 수밖에 없었다.

트렌드를 만나러 상하이에 왔지만

그런데 막상 내가 만난 현실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일단 말이 안 통한다. 한국어 통역이 붙을 때도 있지만, 안 붙을 때도 있다. 차라리 없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무엇이 됐든 심층취재가 불가능하다. 이건 내가 못난 탓이니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와 중국어 공부를 하려고 생각만 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가 결정적인데 기자들이 CES에 가는 이유라고 말했던 ‘아젠다 세팅’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이미 봤던, 이미 업체들이 공개했던 기술들이 보였다. 로봇? 자율주행? 5G? VR? 이미 봤던 것들이다.

예컨대 기사로도 쓴 중국의 자율주행 화물차업체 ‘인셉티오(Inceptio)’와 같은 경우엔 이 정도 하는 한국 업체는 이미 만나서 인터뷰도 했다. ‘마스오토’라고 카카오모빌리티로부터 투자 받은 기업인데 여기도 완전 자율주행 목표로 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 상용화 안 된 것은 두 기업 모두 똑같으니,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두 기업의 현재 상태는 동일해 보인다. 물론 중국업체가 훨씬 돈이 많아 보이긴 하다.

하이센스(Hisense) 같은 중국 가전업체는 그냥 TV들고 나왔다. 우리 동네 하이마트에 가면 비슷하게 전시한 것 많다. 지난 라스베이거스 CES2019에 LG전자가 공개해서 화제가 된 막 뭐가 휘고 말리고 이런 것은 없었다.

중국 인공지능 기업 호라이즌 로보틱스(Horizon Robotics)가 자랑하는 카메라로 얼굴을 인식해서 성별과 나이를 맞추는 스크린은 삼성SDS가 얼마 전에 했던 ‘첼로테크페어’에도 걸어놨던 것이다. 물론 호라이즌 로보틱스의 스크린이 인식속도가 훨씬 빠르고 정확도도 높은 느낌이었는데, 어찌됐든 개념은 같다.

호라이즌 로보틱스 말고도 이런 거울을 걸어놓은 업체는 많았다. 기자는 인공지능 인식 결과 29살 나왔고, 실제 나이는 비밀에 부치겠다.

트렌드는 성숙한다

그렇다면 CES에 트렌드는 어디 있는 것일까. CES를 주최하는 CTA에서 트렌드와 혁신을 담당하고 있는 벤 아놀드(Ben Arnold) 수석디렉터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 트렌드는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고.

그에 따르면 2018년의 트렌드였던 ‘인공지능’과 ‘5G’, ‘자율주행’과 같은 기술은 2019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2018년과 2019년에 차이가 있다면 좀 더 기술이 소비자에 가까워지고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기존 음성인식 컨트롤뿐만 아니라 무인매장에서 사람이나 사물의 특성을 인식하는 것과 같이 소비자에게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자동차 관련 기술은 조금 더 애플리케이션에 친화적이고 자율주행에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거면 이해가 된다. 세계 최초라는 한국의 5G는 아직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 한다고 외친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상용화된 차량은 안 보인다. 한국의 누군가는 우리 평생에 자율주행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물류업계? 사물인터넷까지 갈 필요도 없다. RFID 이야기한지 20년이 넘은 것 같은데, RFID는 아직도 바코드를 못 넘었다.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야 할 기술들보다 개선해야 할 기술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기술처럼 보여도 깊게 들어가면 그 수준에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던 인셉티오가 마스오토보다 훨씬 뛰어난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 기술의 차이를 비전문가인 기자가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한 단계 기술의 진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시각은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다. 귀국까지 6시간 남았다. 안녕 동방명주. 3일 밤샘으로 기록된 나의 상하이여.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상하이>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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