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1시, 국회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는 ‘근조 게임 문화 게임 산업’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도록 코드를 발급해서다. 2022년부터 WHO가 통과시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이 적용되면, ‘게임 통제 능력을 잃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는 이에게 의사가 ‘6C51’이라는 질병 코드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게임업계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다. 관련 대책 세우기에 나선 업계는 90개 협회가 모인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개정된 ICD가 WHO 회원국에 강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 2025년 예정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에 게임이용장애가 등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다. 아울러 국외 게임 관련 협단체와 함께 연구를 진행, WHO에도 개정안 폐기를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식은 WHO의 결정으로 인해 게임 산업이 죽게 생겼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장례식 형태로 치러졌다. 대책위원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출범식에 참여했다. 통상적인 출범식 기념사는 애도사로 대체됐다.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이 애도문을 읽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김병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장,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정석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 최요철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장.

다음은 ‘게임 질병코드 지정에 관한 애도사 전문’이다. 다섯 문단을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김병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장, 최요철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장이 한 단락씩 차례로 나눠 읽었다.

 

어릴 적 전자오락실에서 게임을 처음 만난 날부터 게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지치고 힘들었을 때 내 옆에서 친구가 돼 주었던 게임, 밤을 새워가며 공략해가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 줄 몰라서 게임이 너무 좋아서 게임업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시간에 비례하여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어느새 나이가 들어 업무에 치어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줄어들어 갓습니다.

2019년 5월 25일 저녁 멀리 스위스에서 갑작스럽게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WHO에서 게임이용장애라는 이름을 붙여 질병코드로 지정한다는 보도였습니다.
‘아……질병……’
소식을 드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제 입에서는 탄식만이 맴돌았습니다.
“왜 내가 좀 더 세상에 대해 설득하고 노력하지 못했을까?”,
게임에 몸 담은 많은 분들이 슬픔에 이기지 못하고 술로 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 깊은 회한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자 합니다. 게임이 문화가 아니라는 자들에 대항하여 당당히 맞서고자 합니다. 지능적으로 변신해 온 그들의 논리에 맞서고자 합니다.
“게임은 마약”이라고, 게임 자체를 공격하던 논리에서 변화해 “게임이용자 중 아주 소수이지만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우회하지만 그들의 결론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제 게임 뿐 아니라 인터넷, 유튜브, 영화, 만화에도 이러한 굴레를 씌우려고 시도할 지 모르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임요환, 장재호, 페이커 같은 선수들은 나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왜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이 나오지 않냐? 왜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를 개발하지 못하냐?” 말할 때도 우리는 e-Sport의 종주국이며 게임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자부심은 과거의 영광이 될지 모릅니다.

게임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완벽하지 못한 모습의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게임을 게임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드라마의 한 대사를 끝으로 애도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네 잘못이 아니다.”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앞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공개됐다. 구체적인 계획은,

  1. 문체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중기부 등 게임 관련 범부처 참여 민관협의체 구성 제안
  2. 공대위 상설 기구화
  3. 사회적 합의 없는 KCD 도입 강행시 법적대응 검토
  4. 보건복지부 장관 항의 방문, 보건복지위 위원장, 국회의장 면담
  5. 게임질병코드 관련 국내외 공동 연구 추진 및 글로벌 학술 논쟁의 장 마련
  6. 게임질병코드 도입 Before & After FAQ 제작 및 배포
  7. 게임질병코드에 맞설 게임스파르타(파워블로거) 300인 조직과 범국민 게임 촛불운동 시작
  8. 게임질병코드 관련 모니터링팀 조직
  9. 유튜브 크리에이터 연대 활동 강화
  10. 범국민 청와대 국민청원 검토

 

등 10가지다. 공대위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 게임업계, 의료계, 관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힌 계획을 환영하면서도, 이를 복지부와 문화부 외에 국방부나 중기부 등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한 이슈가 예상되는 모든 부처가 함께 하는 민관협의체로 확장할 것을 제안했다.

또, 게임이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한 만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여론전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청원은 물론, 파워블로거로 구성된 300인의 게임스파르타 조직을 중심으로 WHO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알리고 게임 문화를 전파한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게임이용장애에 찬성하는 진영에서 온라인에 자신들이 올렸던 글 중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고 있다고 판단, 이를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개정된 ICD가 한국질병분류에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전방위적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개정된 ICD를) 한국이 의무도입해야 한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국제분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주요하게 참고하라는 것이지 반드시 따르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강제로 관철할 경우) 법적 대응에 대한 심도 있는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비단 게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익숙하지 않은 모든 미디어나 콘텐츠 등에도 언제든 적용될 수 있을 것임도 경고했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청소년들의 동영상 시청률이 게임을 앞섰다는 보도를 언급했다. 또, 스마트폰 사용이 훨씬 더 중독성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가 익숙한 스마트폰 사용은 중독으로 분류하지 않으면서, 게임만 마녀사냥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같은 이야기는 젊은 세대의 미디어와 콘텐츠가 게임 업계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위 학회장은 “가슴이 벅차게 받아들인 것은 게임과 직접 관련이 없는 콘텐츠, 문화, 예술, 미디어, 심지어는 경영 IT 학회와 협단체에서도 공대위에 공감하고 참여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앞으로 오늘 이 자리는 새로운 게임 문화 확산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