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의병 때 안동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척암 김도화 선생의 ‘척암선생문집책판’ 중 1장이 지난 3월, 독일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 의 일부로, 중요한 문화재이나 총 1000여장의 책판 중 현재 20장만이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척암 선생의 후손에 따르면, 책판은 1960년대를 전후해 사라졌다. 11일 서울 삼성동 라이엇게임즈의 한국 본사에서 열린 ‘척암선생문집책판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선생의 종손 김동호 씨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가세가 기울어, (책판을) 복원하고픈 마음만 있었다”며 “실물을 보게 된 것이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공개된 한 장의 책판은 독일의 한 작은 경매에서 발견한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단이 지난 2월 이를 발견해 한국국학진흥원과 긴밀히 협의해 매입에 성공했다. 그전까지 이 책판은 오스트리아의 한 가족이 오래 전부터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오스트리아까지 건너가게 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환수한 척암섬생문집채판 1장. 권9의 23~24장에 해당한다.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환수되는 데는 통상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기증과 경매를 통한 매입이다. 특히 경매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데는 꽤 큰 돈이 든다. 척암 선생의 책판 공개가 라이엇게임즈의 사무실에서 열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이엇게임즈는 지난 7년간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고 한국 문화유산 보호와 지원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데  52억원을 썼다. 주로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다시 한국으로 가져오는데 주력했다.

척암 선생의 판본을 비롯해, 라이엇게임즈가 국내로 다시 들여온 문화재는 미국에 있던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 프랑스 경매에 출품됐돈 ‘효명세자빈 책봉 주객’ 등이 있다. 이번에 매입한 척암섬생문집책판은 기록유산 전문기관으로 동일 문집의 책판을 소장, 관리하고 있는 진흥원에서 관리할 계획이다.

라이엇게임즈는 국내에서 10대, 20대들에게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있는 PC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일명 ‘롤’)’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미국 게임 회사다. 미국 게임 회사가 왜 한국 문화재 환수에 돈을 쓸까?

박준규 라이엇게임즈 한국대표는 책판 공개회 행사에서 “게임도 문화라는 것을 자부하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문화재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한국에 많은 팬 층이 있고, 이들이 10~20대가 많은 만큼 선조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준규 라이엇게임즈 한국대표(오른쪽)와 척암선생의 후손 김동호 씨가 돌아온 책판을 반기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는 앞으로도 국외 문화재를 한국에 들여오는 것을 계속해 후원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국외 반출된 문화재가 모두 환수대상은 아니다. 김동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차장은 “한국에 없는 문화재, 희귀 문화재, 가치가 높은 문화재, 한국에서 우리가 직접 보존 관리하고 활용했을 때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우선 대상”이라며 “척암 선생 문집의 경우 워낙 훌륭한 인물의 유산이므로 꼭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척암 김도화 선생은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의병장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촉발되자 안동통문을 각지로 보내고 1896년 1월 안동의진의 결성을 결의했다. 같은해 3월, 2차 안동의진에서는 71세의 나이에 2대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지휘부를 조직하고 격문을 발송해 의병 참여를 호소했다. 1910년 한일 강제 합병에 이르자, 자택의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라고 써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글로써 일제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호소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이 높게 평가되어 1983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에, 1990년에는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선생의 책판 중 일부가 고국에 돌아온 이 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