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패치 끝낸 아마존, 한국 들어온다고? 하하

미국 아마존닷컴이 최근 한국어 쇼핑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마존닷컴 앱과 웹에 한국어 주소가 입력된 아이디로 접속하면 메인화면에 ‘한국어로 쇼핑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라는 배너가 노출된다. 지난달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어는 이제 아마존닷컴이 지원하는 7개의 언어(중국어-간체, 중국어-번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 중 당당한 한 꼭지를 차지하게 됐다.

쿠팡에선 중국어가 보이고, 아마존에선 한글이 보이는 재밌는 세상이다. 전자상거래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몇몇 언론은 아마존의 한국 진출이 예상된다는 보도를 날리기 시작했다. “아마존이 한국어 서비스를 추가하며 ‘한국 진출’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는 예측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아마존의 한국 진출 예상 보도는 언론계의 연례행사다. 지난해 여름에는 아마존이 한국까지 무료배송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하니 마니 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었다.

아마존 한글패치는 아직 불안정하다. 어느 정도냐면 4500만개의 상품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자랑하던 배너를, 4500만개의 상품을 전 세계로 보냈다고 오역할 정도다.

그래서 정말 아마존이 한국에 들어올까. 제프 베조스라면 진실을 알고 있겠지만, 기자는 제프 베조스의 연락처를 모른다. 하지만 우연인지 오늘 아마존 미국 시애틀 본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분을 만났다. 그 분에게 물었다. 아마존이 한글패치를 끝냈고, 몇몇 언론들은 아마존의 한국진출이 예상된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정말 아마존이 한국에 들어올까요? 그 분의 답이 이렇다.

안 들어올 것 같은데요?

“사실 한국(South Korea)에 들어가자는 이야기는 제가 아마존에 입사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나온 이야기에요. 하지만 아마존이 생각하는 방향과 한국시장은 잘 맞지 않습니다. 아마존은 기본적으로 같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더 많은 보상(Return)을 얻을 수 있는 시장에 들어갑니다”

한국은 레드오션인걸요

“근데 한국은 어떤가요. 이미 너무 많고, 좋은 온라인쇼핑몰 수십개가 있어요. 아마존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워요. 그리고 사실 한국은 시장 사이즈도 작아요. 아마존한테는 인도 같은 곳이 블루오션이지 굳이 한국시장에 비집고 들어올 이유가 크게 없어요”

AWS는 한국에 들어왔죠?

“아마존이 한국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이미 한참 전에 AWS(Amazon Web Service)가 들어와 있죠? 아마존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구축한 IT 인프라를 클라우드로 외부업체에게 공개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한국에 있는 이커머스 기업들은 AWS에서 컨설팅 받고 도입하면 훨씬 개발환경이 좋아질 거에요. 개발환경이 좋아진다는 것은 남들 한 수 둘 때, 자기는 몇 수 더 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AWS 쓰세요!

“아마존이 한국에 리테일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리테일의 기반사업에 싹 들어와 있어요. 아마존은 한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사업자들과 함께 부대껴 경쟁하는 것보다, 그들이 아마존의 망을 쓰도록 만드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요. 굳이 이커머스 업체들만 AWS를 쓸까요? IT기업도 쓰겠죠. 아마존이 이 판을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굳이 아마존이 한국 리테일, 이커머스판에 들어올 이유가 없어요”

아마존은 고객밖에 모르는 바보니까요

“이번에 아마존닷컴에 한글이 추가된 것은 아마존에서 직구하는 한국분들이 많으니까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마존은 고객 중심 기업이고, 미국 물건을 사가는 한국 고객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한글화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작업이에요”

직구하는 한국사람도 고객이니까요

“그래서 아마존이 한국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미국 쇼핑몰에서 직구하는 한국 고객의 구매패턴을 보고 이런 것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물류센터’를 짓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한국고객이 선호하는 물품 데이터를 확보해서, 그 품목을 한국 물류센터에 보관하여 배송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미국 물건을 더 사기 편하게 만드는 거에요. 또 미국에도 한국까지 판매하고 싶은 셀러가 정말 많거든요? 한국 지마켓에 올려 한국고객에게 파는 것보다 미국 아마존에 올려 한국고객에게 파는게 그들 입장에서도 편하죠”

역직구하는 한국사람도 고객이니까요

“또 하나는 이미 미국 아마존닷컴에 물건을 올려서 팔고 있는 한국 사람이 많잖아요? 이들을 위한 픽업 서비스를 아마존이 제공해줄 수도 있어요. 중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아마존이 셀러 자택에서 상품을 픽업해서 중간단계 전부 생략하고 아마존 물류센터까지 입고시켜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죠. 무역 같은 것을 안 해본 한국 셀러가 미국에 파는 데는 진입장벽이 있어요. 포워더 같이 중간에 끼어 운임을 받는 사람들을 알아야 하거든요. 셀러 입장에서 이런 것을 일일이 다하는 것은 골치가 아픈데, 아마존이 픽업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걱정을 덜 수 있겠죠”

[참고 콘텐츠 : A Look At Dragon Boat: Amazon’s Plan To Disrupt The Shipping Industry, Supply Chain 247]

[참고] 내용 중 ‘중국 픽업 서비스’라 언급된 프로젝트(Dragon Boat)에 간접 참여한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로부터 더 상세한 내용 제보가 들어왔다. 관계자에 따르면 Dragon Boat 프로젝트는 2015년부터 실행된 단순 FBA(Fulfillment By Amazon) 입고 서비스다. 그 전엔 대부분 항공운송으로 FBA 물류센터로 들어갔는데, 프로젝트 시행 이후 해상운송(Sea Freight)이 추가됐다고.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에서 픽업 서비스가 포인트는 아니라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류대행사를 썼으니 ‘픽업’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자가 만나서 이야기한 이 분이 제프 베조스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이야기들 또한 하나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이 분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아마존은 굳이 한국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아니, 이미 들어와 있다. 쿠팡과 11번가, 마켓컬리와 같은 쟁쟁한 한국의 이커머스 업체들이 AWS(Amazon Web Service)의 서버를 빌려 쓰고 있으며, 한국 셀러들은 AGS(Amazon Global Selling)를 통해 전 세계에 있는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에 한국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AWS가 2017년 고객사례 모음집을 통해 공개한 한국고객 리스트. 당연히 여기 소개된 업체들은 일부일 뿐이다. 예컨대 쿠팡은 AWS 쓰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았던 업체였다. 기자의 전직장인 CLO도 AWS 썼었다. (자료: AWS)

아마존이 이미 한국시장에서 충분한 돈을 벌고, 한국 상품을 소싱해서 미국에 팔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이베이코리아, 신세계, 롯데, 쿠팡, 네이버, 카카오가 날뛰고 있는 이 판에 들어오고 싶을까. 아마존은 한국기업들끼리 열심히 싸우는 것을 구경하면서 계속 돈을 벌면 된다.

오늘 기자가 이야기를 나눈 ‘이 분’의 풀버전 인터뷰는 조만간 공개된다. 이번에 쓴 글은 곧 있으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한국 언론들의 아마존 한국진출 예상 보도 이전에 공개하는 티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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