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의 목걸이


에어팟 이전에도 완전 무선 이어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넥밴드가 있었지만 그건 어째 커다란 짐을 어깨에 들쳐멘 형벌을 받은 아틀라스 같은 꼴이 된다. 혹은 끝없이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 목이 한없이 무거워 보인다. 주로 가장으로 보이는 이들의 인생의 무게가 한층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거기에 스타일링을 무조건 박살 내는 로즈골드 같은 컬러를 사용한다면 화룡정점이다. 편의성과 음질 면에서만큼은 인정한다.

 

에어팟의 진정한 유행은

에어팟이 공개되고 출시되기 전, 그러니까 2016년 9월 8일과 12월 3일 사이 다양한 분리형 이어폰들이 등장했다. 브라기 대시처럼 인디고고 등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펀딩 후 판매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브라, 브리츠, 뱅앤올룹슨 등 전통의 업체들도 뒤늦게 코드리스 이어폰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통 업체의 제품들의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21만9000원이었던 에어팟과 비슷하거나 30만원이 넘어간다. 에어팟이 코드리스 블루투스 이어폰 가격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어팟이 유행시킨 건 또 있다. 케이스에서 충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가볍고 음질에 민감하지 않은 기자는 주로 10만원 미만의 제품을 썼다. 주로 처음엔 인디고고에서 펀딩한 제품을 사용했다.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다.

‘콩나물’이라고 부르는 에어팟의 외관이 예쁘냐 아니냐는 논외로 친다. 우선 이건 기능에 디자인이 따라간 타입이다. 이른바 Form Follows Function 류의 디자인이다. 마이크 성능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한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빔포밍 마이크를 넣었다. 이 형태 덕에 에어팟에서는 기존의 이어폰 수준의 통화를 할 수 있다.

(제공=애플)

헤드 부분에도 마이크가 있음을 알 수 있다(출처: 애플 유튜브)

빔포밍(Beamforming) 마이크는 소리 신호의 위상차로 신호를 처리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서 에어팟 한 쪽에는 마이크가 두개달려있다. 흔히 아는 콩나물 뿌리쪽 말고도 머리쪽에도 마이크가 있다. 이 마이크 두개의 소리차를 순간적으로 비교해 잡음을 걸러내고 가중치와 지연시간을 조절한 후 합하는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니 몰라도 된다.


다른 제품과 에어팟의 차이는 센서의 역할도 있다. 통화하는 주 이어폰이 어느 쪽이냐를 판단하기 위해 가속도 센서나 근접 센서를 달았다. 예를 들어서 양쪽을 끼고 있다가 오른쪽 귀에서 에어팟을 빼버렸다고 치자. 그럼 이 움직임을 파악해 왼쪽 그가 주 마이크가 되는 식이다. 스마트폰에서는 흔한 기술인데 좀 큰 코딱지만한 이어폰에 이 부품들을 욱여넣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긴 이어폰의 몸통(콩나물 줄기) 부분에는 배터리가 들었다.

 

에어팟을 끼고 거울을 보면

문제는 이 디자인이 사람을 탄다는 것이다. 블루투스 이어폰 광고에 유난히 더 굉장한 모델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극악의 얼굴이 되는 사람이 있다. 기자가 끼니 귀에서 고무나무 수액이 흘러나오는 모양새가 됐다. 인류 전체의 자원이 된 느낌이다. 전 인류에게 보호받아야만 할 것 같다. 돈벌면 무조건 옷을 사는 기자에게, 아름답지 않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기자의 삶은 대체로 의미가 없다.

이런 모델이 나오는 이유는 나머지가 끼면 이상하기 때문이다(제공=애플)

다른 제품의 모양도 녹록치 않다. 센서를 빼버린 건 그렇다치고 블루투스 모듈과 배터리를 욱여넣으려 이어폰의 모양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넥밴드 수준은 아니지만 귀가 혹사당하는 느낌이다. 농구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신체는 유약한 3점 슈터가 힘을 기르기 위해 타이어를 메고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이 헤드폰들은 물론 무겁지 않다. 그러나 보이기엔 충분히 무거워 보인다. 무선이어폰의 카테고리를 열어젖힌 브라기를 포함해 그 어떤 제품도 귀에 꽂았을 때 가벼워보이지 않는다. 삼성에서 처음 나온 기어 아이콘 X는 귀에 케틀벨 꽂고 다니는 모양새였다. 갤럭시 버즈 시대에 와서야 가벼운 디자인으로 변했다. 그래도 여전히 무거워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이정도 얼굴은 돼야 한다는 소리다(출처=Bragi)

귀에 끼는 케틀벨

에어팟이 아닌 제품들은 이어폰이 주로 귀쪽에 달려있으므로 통화도 어렵다.

그래서 기자는 디자인을 거의 포기하고 저렴한 것 위주로 샀다. 그중에도 ‘청음시간이 짧더라도’ 가벼운 배터리를 탑재한 것만을 사용했다. 어차피 충전 케이스가 있으니 가끔씩 충전하면서 들으면 된다. 유선 이어팟을 사용하면 되지만 기자는 충전을 못 하면 죽는 병에 걸려있다. 그리고 당시 사용하던 아이폰은 무선충전을 지원하지 않는 제품이었다. 무조건, 저렴하고, 가벼워보이는 이어폰을 사용해야만 했다. 통화는 포기한다. 어차피 일 관련된 것 빼면 오지도 않는다.

스캇 스테인은 거의 에어팟 비공식 모델이 됐다. 씨넷 에디터로, CES 현장인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옆에 있는 남혜현 기자가 화내고 있어서 사진 찍어달라고 말을 못 했다.

다행히 중국발 이어폰들은 매우 저렴하다. 주로 20달러를 넘기지 않고 30~40달러면 꽤 준수한 제품을 산다. 왠지 저렴한 이어폰의 표준이 되고 있는 QCY 제품도 20달러 수준이다. QCY는 좀 무거워보이지만 가성비의 왕이다.

문제는 사용기간이다. 중국발 제품은 6개월 이상 사용하기 어렵다. 잃어버리기 쉬워서도 있지만 기자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자리를 떠나기 전 항상 잃어버린 물건이 없나 살펴보는 버릇 때문이다. 자리에 있어도 가방을 뒤적거리며 물건이 사라지지 않았나 확인하는 습관도 있다. 가난한 시절의 버릇인데 좋은 버릇이라 고치지 않고 내버려뒀다.

QCY를 비롯한 중국산 이어폰의 가격은 거의 서브스크립션 수준이다. 10달러에 한달 정도의 느낌이다. 20달러인 QCY를 사용하면 두달만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이후엔 한쪽에서 블루투스 신호가 가끔 유실된다. 그래서 한쪽만 사용할 수 있다. 오기로 한달을 더 사용하면 그 한쪽도 안 들리기 시작한다. 40달러짜리 준수한 제품을 샀더니 정확히 네 달 사용했다. 이럴거면 그냥 구독 방식으로 출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에어팟처럼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쪽을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저렴하니 참고 쓴다 정도의 제품이 돼가고 있다.

에어팟은 물론 훌륭한 제품이다. 애플 제품을 여러 개 사용하면 편의성이 다른 것에 비할 수 없다. 바라보는 그 기기로 페어링이 옮겨 다닌다. 예를 들어 폰을 보다가 패드를 보면 패드로 페어링이 자동으로 바뀐다. 맥과 아이맥에도 페어링이 된다. 그러나 인류의 자원 취급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에어팟 2세대가 등장했다

그 에어팟의 2세대가 등장했다. 등장 전에는 유광블랙 컬러가 추가될 것이라는 소문이 많았으나 애플은 결국 고무나무 수액 look을 고수했다. 즉, 외관상 변화는 없다.

기능은 조금 변했다. W1 칩에서 H1 칩으로 바뀌어서 접속 시 지연시간이 줄었다. 원래도 지연시간이 없다 싶을 정도였는데 30% 줄었다고 한다. 통화시간은 최대 50% 늘었다. 그러나 구형 제품 대비 엄청난 차이는 아니므로 사용하는 에어팟은 그냥 사용하는 것도 좋겠다.

“시리야”가 2세대에서 지원된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안 되고 있었던 게 더 신기하다(제공=애플)

가격은 조금 인하됐다. 기본 모델이 21만9000원에서 19만9000원으로 내렸고, 무선 충전 기능이 들어간 케이스 모델이 24만9000원으로 출시됐다. 기능 하나를 더해 더 비싸게 파는 애플의 가격 전략이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3세대가 되면 아마 기본 모델을 없애고 무선충전 제품만 24만9000원으로 팔게 될 것이다.

이 케이스는 9만9000원에 별도 구매할 수도 있다. 그리고 큰 희소식이 있다. 이 케이스가 1세대와 호환된다. 1세대 이어폰을 여기에 넣어도 충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만약 이 제품이 너무 비싸다면 무선충전 가능한 케이스 커버를 구매하자. 오픈마켓 기준 3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류의 자원으로써 긍지를 가지고 활동하자.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이전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