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업계의 화두는 규제다. 규제를 혁파해야 한국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규제 때문에 혁신적인 시도가 막히고, 규제 때문에 경제가 역동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같은 인식에 동의해 규제 샌드박스 등 규제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제발 규제 좀 해달라고 외치는 이상한(?) 산업이 있다. 바로 핀테크의 총아 ‘P2P금융’ 업계다.

P2P금융은 관련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규제도 없다. 현재 P2P금융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지위에 있다. P2P 금융을 정의하는 법이 없다보니, 어딘가에는 속해야 하고 결국 대부업으로 귀속돼 있다. 그 결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금융산업의 떠오르는 샛별인 P2P금융이 한국에서는 러시앤캐시나 산와머니와 같은 규제를 받는다.

산업을 정의하는 법과 규제가 없으니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법에 하라고 돼 있는 것만 할 수 있고, 하라고 돼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마켓플레이스금융 산업의 혁신과 사회적 가치’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마켓플레이스금융은 P2P금융을 새롭게 부르는 용어다. P2P(Peer to Peer)가 마치 개인간 거래(Person to Person)인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어서 이를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한국인터넷산업협회 마켓플레이스금융협의회가 용어를 바꿨다.


중소기업연구원 박재성 혁신성장본부장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중소기업연구원 박재성 혁신성장본부장은 “한국은 규제가 없거나 정의가 결여된 상태”라면서 “무규제는 산업의 방치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자금을 모은 사모펀드가 미국의 P2P금융에는 투자할 수 있지만, 한국의 P2P금융에는 투자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규제가 없어서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되는지 관련업계가 알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일단 소극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산업의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P2P금융의 대출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 세계 최대 P2P금융회사 렌딩클럽의 경우 투자금액의 80% 이상이 은행 등 전통 금융기관이라고 한다. 심지어 연기금도 렌딩클럽에 투자한다고 한다. 은행은 중신용 중금리 대출보다는 고신용 저금리 대출 시장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렌딩클럽과 같은 P2P금융에 투자함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중신용 중금리 대출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들은 P2P금유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도 된다는 명시적인 허가가 생길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그런데 기관투자를 받는 것은 P2P금융의 신뢰도를 높이고, 기존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아무래도 P2P금융업체의 행보를 면밀히 살피기 어렵다. 폰지사기 같은 일이 벌어져도 개인투자자들은 이를 근접 감시할 수 없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은 P2P금융의 실제를 면밀히 살펴보고 투자할 것이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를 통해 P2P금융사들의 옥석이 가려지고, 산업의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는 사기성 짙은 P2P금융 업체로부터 피해자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박재성 본부장은 시급히 P2P금융에 대한 규제를 만들되 “포용적 규제”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현재 금융위가 운영하고 있는 ‘P2P금융 가이드라인’은 투자한도, 투자금관리, 영업행위 준수사항, 광고제한, 공시의무 등 ‘투자자 보호’에만 방점이 찍혀있다. P2P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이에 대해 박 본부장은 “렌딩클럽의 경우 정부로부터 포용적 규제 대상이 된 이후 기하급수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면서 “포용적 규제가 P2P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또다른 발표자인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P2P금융이 중금리 대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P2P금융으로 인해 개인대출, 여성대출이 늘어났고,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와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 승인률로 인해 중신용자의 고통을 줄여줬다고 설명했다.

다행인 점은 정부가 P2P금융에 대한 법제화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11일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도 진행됐다. 금융위는 4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회일정이다. 최근 국회는 선거법 개정안으로 극단의 갈등을 빚고 있다. 4월 임시국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