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게임이 크긴 컸다. 중국산 게임의 국내 유입을 방치해도 되는지, 적절한 대책은 없는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생겼다.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에서  ‘중국 게임의 수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신년 토론회를 열었다. 국내 게임 생태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산 게임의 선전이 위협이 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일단, 토론자들의 인상 깊었던 발언을 먼저 소개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태희 유통지원팀장

“4~5년 전만 하더라도 ‘게임은 우리가 (중국보다) 더 잘만들지’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 사석에서 만난 한 (게임사) 대표가 ‘기술 격차가 감소된 것이 아니라 추월당했다. 자괴감을 느낀다’는 표현을 하더라. 중국게임사들이 전반적으로 매출 목표를 재조정하면서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신흥 시장도 많이 진출하고 있지만,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나 문화적 친숙도가 높은 한국 시장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엔피게임즈 이승재 대표

“중국 게임이라고 해서 다 질이 나쁜 건 아니다. 정식으로 퍼블리셔를 통해 수입된 게임은 국내 규제를 다 따른다. 다만, (중국 게임업체의) 직접 서비스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내 법을 준수하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사업을 한다. 정식으로 수입해오는 퍼블리셔는 역차별 당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법인이 없는 게임의 직접 서비스에 있어서는 공정한 경쟁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학회장

“국내 생태계가 튼튼했다면 중국 게임의 유입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게임 시장) 독과점이 심화되면서 중소기업에 자금이 안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뒤이어 중국 게임이 들어왔다. 민간 차원에서 자율규제를 만들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서비스를 못하게 하든지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산업은 전쟁이므로 규제가 필요하고, 비법적 규제를 통해 수입을 줄여야 한다.”

 

매경게임진 이창희 국장

“게임 이용자 입장에서는 콘텐츠가 재미있다면 국적이 어디든 관심없다. 정부가 공식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중국게임 수입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분별한 수입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왼쪽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 이태희 유통지원팀장, 이엔피게임즈 이승재 대표, 한국게임전문기자클럽 곽경배 간사,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학회장, 매경게임진 이창희 국장.

 

시장경제 국가에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수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토론회가 열리진 않을 것이다. 이런 토론회가 열린다는 것은 지금 국내 게임산업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지 못하고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거나, 혹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방증이다.

앞서 언급된 토론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업계에서 인지하는 문제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국내 게임 생태계가 승자독식 구조로 짜여져 있다. 둘째,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는 산업 구조라 자금 여유 없는 소규모/중견 개발사는 생존하기 어렵다. 셋째, 중국 게임사가 국내 직접 진출하고 있는데, 심지어 인기도 얻고 있다. 넷째, 퍼블리셔 없이 국내 직접 진출하는 중국 게임사의 경우 문제가 있어도 규제를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태희 유통지원팀장은 “(2017년) 매출 순위를 보면 (전년도에 비해) 톱1의 비중이 5배가 늘었다. 톱100 안에 들어간 게임의 매출은 1.7배이며, 10위권 안의 매출 비중은 1.1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톱 100에 들어간 게임들의 매출 비중이 그 전해와 거의 동일한데 비해 톱1을 비롯한 아주 소수의 게임이 전반적인 매출 증가를 독식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보니 상위 소수의 게임은 아예 논외로 치고, 매출 6위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이 자리를 최근 중국산 게임이 파고들고 있다. 25일 기준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를 보면 6위 신명, 7위 왕이되는 자, 8위 뮤오리진2다. 모두 중국산 게임이다. 왕이 되는 자 같은 경우는 아예 중국 게임사가 국내 퍼블리셔를 거치지 않고 직접 서비스한다. 왕이 되는 자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며 지나친 선정적 마케팅으로 지적 받아 왔으나, 국내 사업자가 없어 규제를 하기 어려웠다.

 

출처=게볼루션 홈페이지

 

정리하자면 이렇다. 최근에는 특히 ‘리니지 빼고 뭐가 있느냐’는 이야길 들을 만큼, 국내 게임 업계의 승자독식 구조가 세졌다. 이제는 아이디어 하나로 중소 게임사가 매출 톱10 안에 들어가기 아주 어려운 구조가 되었는데, 일명 3N이라 불리는 게임 대기업의 뒤를 중국 게임사가 잇고 있고, 중국 게임사가 선정적인 마케팅 등을 해도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시장 경제에서 더 재미있는 게임이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게임사가 더 신선하고 이용자 시선을 빼앗을 만한 게임을 만들어내면  당연히 문제될 일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게임산업은 누가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확률의 시장이다. 이용자로부터 선택 받을 가능성을 높이려면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더 많은 마케팅을 해야 한다. 아주 참신한 기획이 아니라면, 유력 퍼블리셔가 많은 돈을 들여 마케팅하는 게임을 이기기 어렵다. 지금와서 예전처럼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가 또 나올 수 있을까?

국내 게임이 어려운 이유는, 산업이 저출산 고령화가 됐기 때문이다. 리니지 같은 대형 IP가 오랫동안 생존하며 인기를 얻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게임이 계속 나와 신선한 피를 수혈해줘야 한다. 가능성 하나만 보고도 뛰어들어 성공하는 신생업체가 많아져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게임산업 사업체 수가 오히려 계속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문화체육관광부, ‘2017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 콘텐츠산업 사업체 수 증감 조사 부분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펴낸 ‘2017 콘텐츠산업 통계조사’를 보면 2016년 게임산업 사업체 수는 총 1만2363개로 전년 대비 10.7% 줄어들었다. 전체 11개 콘텐츠 산업 분야에서 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들어선 곳은 게임과 만화, 출판 밖에 없고 그 중에서도 게임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좋은말로 국내 게임 업계는 성숙기에 다다른 것이고, 나쁜 말로는 더이상 ‘열정’ 만으로는 가망 없는 산업계에 뛰어들 패기넘치는 개발사에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게임이 육성되는 기간 동안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힘을 얻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규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중국의 판호 같이 모든 게임의 출판에 일일히 허가를 내는 방식을 갖기는 어렵다. 설령 그런 규제를 도입해도  또 다른 방식의 무역 보복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모든 우려를 뚫고 규제를 만들어내더라도, 그 규제가 다시 국내 게임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뿐더러, 심지어 이용자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하기 위한 우회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이승재 이엔피게임즈 대표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이 대표는 “수입한 중국 게임이 왜 성과를 내느냐하는 근본적인 부분부터 봐야 한다”며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에서 특정 현상 때문에 수입을 제한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고 직접 서비스가 가능한 환경이 확대되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제한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게임의 저출산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게임 개발자가 창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을 잘 알아야 한다. 실제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와 유사하다고 본다. 게임을 만들고 키울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큰 마음 먹고 창업해서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고 게임을 키울 돈을 마련하기도 힘들다.

이승재 대표는 “창의성과 상업화를 적절하게 융화시킨 국내 게임 R&D를 지속 지원하고 의미있는 실패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 개발사의 글로벌 직접 서비스를 위한 개발비와 글로벌 마케팅, 운영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최근에는 기술보증기금 등에서도 더이상 게임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게임은 흥행산업이므로,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적은 산업에 투자가 계속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성공 확률이 적은 신생 게임사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 게임 강국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최소한 이들이 숨통을 트일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야 한다.

게임에 대한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 게임 기업이 조 단위 매출을 낼 정도로 성장했고, 심지어 글로벌 진출 성공 사례까지 나오고 있지만 게임을 보는 시선은 아직도 술, 담배, 도박 등과 같은 부류에 머무른다. 게임을 개발하는 이들의 사기진작이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중국 게임 수입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 게임 수입이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아닐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