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19에서 내가 보려고 했던(?) 것들
나는 원래 이 시간에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배회하고 있어야 했다. CES 2019 출장 당번이었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행 항공기에 오르기 17시간 전 ESTA 비자가 만료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ESTA 비자는 신청하면 실시간으로 발급이 되니까…
그러나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20일 전에 미국 이민국의 정책이 바뀌었다. ESTA 비자는 이제 실시간으로 발급되지 않는다. 72시간 이전에 발급받은 사람만 미국행 항공기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여의도 사무실에 앉아 기사를 쓴다. 직접 보려고 했지만, 간접적으로 봐야할 CES 2019와 기업들에 대해…
CES란 무엇인가?
CES는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약자다. 우리말로 하면 ‘소비자 가전 전시회’다. 전자기기 제조업체들의 협회인 CTA가 주최하는데, 196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올해는 1월 8일~11일(미국 현지시각) 개최된다.
CES는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가 아닐까? 155개국에서 4500개의 기업이 전시회에 참여하며, 18만명의 사람들이 이를 보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이를 취재하기 위한 언론매체만 6500개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도 힘들다. 비슷한 IT분야의 행사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MWC 등이 있지만, CES가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화제를 일으킨다.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가 메인 행사장인데, 여기뿐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인 스트립 전역이 CES의 무대다. 전시장과 호텔을 걸어다니다보면 다리가 아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CES 2019 취재를 위해 푹신한 운동화를 준비하기도 했는데…
CES 2019에서 보려고 했던 것들
CES가 개막하기 이전부터 참가 기업들은 뉴스를 쏟아낸다.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개막전인 6일이나 7일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전시장 문이 열리면 프레스 컨퍼런스는 눈길을 끌기 어렵기 때문에 행사 시작 전에 하는 것이다. 행사 전에 기업들의 발표를 듣고 행사가 개막하면 전시장에서 발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이글의 주제인 올해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해보자.
중국의 테슬라 바이턴(BYTON)
바이톤은 BMW·닛산 등 자동차 기업들과 테슬라·애플 등 IT 기업 임원들이 회사를 뛰쳐나와 중국 난징에 세운 모빌리티 스타트업으로 중국의 테슬라라고 불린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가장 주목하는 회사다.
바이톤은 지난 해 CES 2018에서 새로운 전기자동차(SUV)를 소개하며, 2019년에 양산하겠다고 밝혔었다. 4만5000달러에서 시작하는 이 차의 기본형 모델은 한번 충전하면 4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71시간짜리 배터리 팩을 탑재하고 있다. 충전은 30분 안에 이 배터리의 80%를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올해도 바이톤은 개막 이틀전인 6일(현지시간) 프레스 컨퍼런스를 개최했다고 한다. 이자리에서 올해 양산될 엠바이트라는 전기차의 실내를 공개했다.
사진으로 보면 흔히 보는 자동차 대시보드가 아닌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스티어링 휠 뒤에서 볼 수 있다. 무려 48인치라고 한다. 기본적인 대시보드 정보와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인포테인먼트 정보를 이 디스플레이에서 다 담아낸다.
바이톤은 올해 엠바이트 양산형 판매 이후, 세단 모델인 케이바이트(K-Byte)를 2021년에 내놓고, 아직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은 신모델을 2023년 내놓을 계획이다.
AI 시대의 주인공 엔비디아
엔비디아는 최근 CES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다. GPU가 머신러닝을 위한 가속화 기술로 보편화되면서 엔비디아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기술을 이용하는 기업들은 엔비디아와 협력을 맺는다. 지난 해 폭스바겐(Volkswagen), 바이두, ZF, 우버(Uber), 오로라(Aurora) 등이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발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해 CES 기조연설에서 ‘자비에’라는 AI용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자비에는 SoC 형태의 통합 칩으로 8개 CPU 코어와 512개 GPU 코어로 구성된 프로세서다. 30와트 전력으로 1초에 30조 번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엔비디아는 지난 해 8월 이 자비에가 탑재된 AI 컴퓨터 ‘젯슨 자비에’를 출시하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올해 CES에서도 개막에 앞서 프레스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올해는 엔비디아의 전통적 고객인 게이머를 위한 소식을 주로 전했다. 올해 프레스 컨퍼런스의 주인공은 고급형 그래픽카드 RTX 시리즈의 신제품 ‘RTX 2060’이다. 가격을 파격적인 349달러(약 39만원)로 책정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될 듯 보인다. RTX 2060 RTX 2080이 탑재된 랩톱(노트북) 컴퓨터도 선보였다.
모니터 그래픽 기술인 지싱크의 개방정책도 발표했다. 이 역시 파격적인 일이다. 엔비디아는 VESA 표준 규격인 어댑티브 싱크(Adaptive Sync)가 적용된 지싱크 모니터 인증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지싱크 기술이 탑재된 모니터는 엄청 비쌌는데 앞으로는 엔비디아 전용 장비가 탑재되어 있지 않은 모니터에서도 지싱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CES에 무대에 데뷔하는 네이버
올해는 네이버가 처음으로 CES 행사에 참가한다. CES는 말그대로 가전쇼다. 원래 TV를 중심으로 가전제품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이때문에 네이버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IT산업에 경계가 무너졌다. 가전은 가전만, 포털은 포털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모두가 AI와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지난 해에는 구글이 CES 2018을 지배했다. 라스베이거스 곳곳에 구글의 거대 광고판이 세워졌으며, 행사장 여기저기에서 우주인 복장을 한 구글의 도우미를 만날 수 있었다. 구글의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가전제품이 많기 때문이었다.
처음 무대를 세운 네이버는 야외 부스에 자리잡았다. 구글 부스와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위치다. 구글 부스를 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네이버 부스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네이버는 네이버랩스에서 개발하고 있는 로봇 및 자율주행 기술을 주로 소개할 예정이다.
네이버에서 소개하는 기술은 이미 국내에서 발표되고 시연됐던 것들이다. 이를 못 보는 것은 아쉽지 않지만 해외 언론이나 IT관계자, 소비자들의 반응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쉽다.
다양한 자율자행 셔틀
지난 해 CES 2018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회사는 토요타였다. 토요타는 이팔레트라는 자율주행셔틀 컨셉을 공개하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시험운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팔레트는 카셰어링, 라이드셰어링 같은 사람을 이동시키는 일반적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이동형 병원이나 상점, 연구소도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이동형 호텔이 될 수도 있다.
이팔레트는 자율주행이 ‘자동차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구두 한 켤레를 사고 싶을 때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한 후 배송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자율주행셔틀 기반의 신발가게가 나에게 오는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피자를 먹고 싶을 때도 조리된 후 배달돼 식은 피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피자 가게가 우리 집앞에 와서 눈앞에서 신선한 재료로 갓 구운 따끈한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이처럼 자율주행은 서비스로 발전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자율주행 기술의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야 한다. 올해는 어떤 자율주행차가 눈길을 사로잡을까? 내가 보고 싶었던 자율주행 기술들이다.
LG전자의 두루마리 TV
LG전자는 화면을 둥글게 말았다 펴는 플렉서블 TV, 시그니처 올레드TV R를 발표한다. 사용자가 TV를 시청할 때는 화면을 펼쳐주고, 시청하지 않을 때는 본체 속으로 화면을 말아 넣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TV가 꺼져있을 때 멋진 그림이 담긴 액자처럼 이용하자고 접근하는 반면, LG전자는 안 볼 때는 TV를 말아넣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이 제품은 CES 2019의 혁신상을 받았다. 연내 국내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TV를 말았다 폈다 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매우 신기한 제품임은 분명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