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은 앞으로 뭐 먹고 살까. 얼마 전 쿠팡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난 화두다. 한진은 국내 3대 택배사에 들어간다. CJ대한통운이 과반에 가까운 점유율(약 48%)로 치고 나가는 가운데, 한진은 롯데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와 아웅다웅하면서 각각 12%대의 점유율로 2, 3위를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3대 택배사 중 한진이 갖는 특이점이 있다면 화주사가 없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의 1인자인 롯데그룹의 계열사다. 최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3월 1일부로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의 B2B물류를 처리하던 롯데로지스틱스와의 통합을 공식화했으며, 이에 따라 그룹 화주사의 대거유입이 예견된다. CJ대한통운은 국내 여타 2PL(2자물류)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사물량 비중이 낮은 3PL(3자물류)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CJ제일제당, CJENM(오쇼핑), CJ올리브영 등 제조 및 유통화주사가 건재하다.

한진은? 아마도 국내 유일한 3PL 대기업이 한진이다. 국내 대부분의 거대 물류기업들은 모회사 물량을 기반으로 먹고 산다. 앞서 언급한 롯데글로벌로지스와 CJ대한통운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기아차, 판토스가 LG전자, 삼성SDS와 삼성전자로지텍이 삼성전자 물량을 처리한다. 심지어 중소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들도 물류회사 하나씩은 끼고 있다.

물론 이들 업체들은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로 인해, 모두 3PL을 안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나름 열심히 한다. 하지만, 모기업 물량을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3PL 영업을 하는 이들과 순수하게 외부업체 영업만으로 먹고 사는 이들은 그 절박함이 다르다. 한진은 후자에 속한다.

이 와중 한진그룹이 그나마 자랑하던 것은 ‘육해공’ 통합 인프라였다. 육상운송의 ‘한진’, 항공운송의 ‘대한항공’, 해상운송의 ‘한진해운’이 삼각편대였다. 사실, 한진은 종합물류기업이라는 지위가 무색하게 예부터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등쌀에 치여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왔고,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육해공 통합 인프라? 통합이 안 되는데 뭔 통합이냐”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그래도 한진이 육해공 인프라를 모두 가진 국내 유일한 물류회사인 것은 맞았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2017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그 자랑거리도 퇴색됐다. 그렇다고 땅콩 던지던 그 분을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쿠팡으로 대표되는 유통화주들이 ‘물류’를 한다고 치고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주사 없는, 그러니까 순수 외부업체 ‘영업’만으로 승부해야 되는 물류기업 한진의 경쟁력은 무엇이 될까. 정말 궁금하던 차에, 지난주 금요일(25일) 한진의 B2B화주 고객초청 설명회에 초청받았다. 이 자리에서 앞으로 한진이 뭘 먹고 살아야 되나, 그들의 생각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한진 B2B백암허브(TC) 출고장에 꼬리를 문 11톤 간선차량들의 모습. B2B백암허브는 한진의 유일한 B2B물류 허브다. 한진 B2B백암허브는 크게 보관형 창고인 DC(Distribution Center)와 통과형 창고인 TC(Transport Center, 크로스도킹 센터: 집하된 화물을 보관하지 않고, 즉각 분류하여 배송을 내보내는, 말 그대로 거쳐 가는 물류센터)로 나눠져 있다.

강조되는 것은 본질

언젠가 한 물류업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물류 서비스의 본질은 ‘고객이 물류회사에 연락할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계약체결 이후, 고객이 물류회사에 연락을 한다면 그것은 필히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녹아있는 것이 물류의 역할이다.

한진이 강조하는 것도 물류의 ‘본질’, 그러니까 고객에게 딱히 연락이 올 일이 없는 수준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진은 2019년부터 B2B집배점 서비스 평가지표 개선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그 평가항목이 ‘정시배송률’, ‘배송정확도’, ‘고객불만 유입률’, ‘클레임 발생률’, ‘서비스 만족도’ 등인데, 이 지표들이 좋아지면 당연히 고객에게 연락 올 일이 없어진다. 김현우 한진 택배기획운영 담당 상무는 “배송기사에 대한 서비스 만족도 평가와 동시에, 회사의 적절한 보상이 부여된다면 물류 서비스는 점점 나아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한진이 2019년 시행 예정인 B2B집배점(대리점) 서비스 평가항목. 여기서 B2B물류란 백화점, 할인마트, 패션 및 화장품 브랜드 로드샵까지 필요한 상품을 배송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소비자까지 전달하는 B2C물류(택배)와는 허브앤스포크 방식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하지만, 고객군의 특성이 다르다. (자료: 한진)

이와 함께 한진이 강조하는 부분이 ‘원가절감’이다. 이 또한 물류의 본질이다. 고객 서비스를 향상시킴과 동시에 원가를 낮추며 수익성을 만드는 것이다. 원가가 절감되면, 우선 한진의 영업이익률이 올라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경쟁사에 비해 더 저렴한 물류 서비스를 만드는 데 투입해, 고객사까지 이득을 보도록 만들 수 있다.

한진이 원가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는 방안은 ‘데이터 활용’이다. 예를 들어 한진에 따르면 당장 ‘대리점 수수료’, ‘간선운송’, ‘택배조업(물류터미널 인력운영)’ 등이 3대 비용요소로 꼽히는데, 그 중 간선운송 비용을 절감하는 한 방법으로 ‘반품 데이터 확보’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게 한진측 설명이다. 김 상무는 “지방 택배 대리점을 통해 반품물량이 올라오는데, 사전에 한진이 관련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특정 지역의 반품 물량을 모아서 허브 물류센터로 일괄 가지고 오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며 “만약 60~70%의 로드팩터(Load Factor, 하중계수)를 만들 수 있다면 물류센터가 아닌 구간에서 순회 집하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진의 B2B 전국 네트워크 현황. 허브터미널 1개, 집배점 51개, 직출고 집배점 13개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직출고 집배점이란, 허브앤스포크 방식으로 허브터미널을 거치지 않고, 고객에게 바로 전달하는 집배점을 이야기한다.

생산성향상을 위한 투자

앞서 ‘서비스’와 ‘원가절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서비스를 만드는 핵심 요소로 ‘생산성’을 고려할 수 있다. 예컨대 한 물류센터에서 하루 처리할 수 있는 최대 출고량(Capacity)이 얼마나 되는가. 하루 6만개의 물량을 내보낼 수 있는 TC가 있다고 하자. 여기서 갑자기 설날특선으로 물량이 터져 나와 10만개의 물량이 몰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하루에 처리하지 못하고 남은 4만개는 당연히 배송이 지연된다. 서비스 품질은 떨어진다.

물론 물류업체에게 있어서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굉장히 많다. 지난해 CJ대한통운 사례로 ‘택배노조의 파업’이라던가, ‘안전사고로 인한 대전 허브터미널 가동중단’ 등이 그 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모두 ‘택배대란’으로 연결됐다는 것을 기억하자. 물류업체에게 있어서 이렇게 돌발변수에서도 균일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생산성’을 미리 확보해놓는 것, 중요하다. 지난해 CJ대한통운의 택배대란으로 인해 화주가 이탈하며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로 물량이 몰렸지만, 두 업체도 이 생산성(Capacity)이 부족해서 모든 화주를 받지는 못했다.

(위에서부터) (1) 한진 B2B허브 TC 1층 입고라인, (2) TC 3층 자동화 분류라인(휠소터 구간). 사진 끄트머리에 보이는 바코드 스캐너에서 상품의 출고지 정보를 스캔한다, (3) TC 1층 슬라이드 슈 라인. 3층에서 자동분류된 상품이 슬라이드 슈를 타고 내려와 출고지점에 떨어진다.

한진이 이번 B2B백암허브에 고객사들을 초청한 이유 중 하나도 최근 진행한 백암B2B허브 자동화 설비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한진은 지난해 12월 백암 B2B허브 TC 3층에 보우시스템의 ‘휠소터’를 도입했다. 휠소터란 자동으로 화물을 분류하여 배송지역으로 떨궈주는 장비다. 1층 입고라인을 타고 올라온 화물은 먼저 3층 자동분류 라인 초입에 있는 바코드 스캐너를 거쳐 각각 배송 지역을 인식한다. 자동분류 라인에는 배송지역별로 분류된 각 화물의 출고라인과 연결되는 ‘슬라이드 슈(미끄럼틀 모양)’가 있는데, 해당 화물이 출고되는 라인이 아니라면 그냥 컨베이어를 통과하고, 출고되는 라인이라면, 슬라이드 슈로 화물을 떨어뜨리는 구조다.

한진에 따르면 휠소터가 도입되기 전 TC 3층에는 사람들이 일일이 택배화물을 눈으로 보고 분류하는 ‘구동라인’을 운영했었다. 당시에는 시간당 5000박스, 하루 최대 6만5000박스 정도의 화물을 처리했다는 게 한진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휠소터 설치 이후에는 시간당 처리 물동량이 8000박스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이제는 일평균 10만박스의 물량을 B2B백암허브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 김 상무는 “한진은 패션물류에 특화된 B2B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에이더, 아디다스 등 브랜드 로드샵까지의 물류를 처리하는 것이 B2B물류의 개념”이라며 “현재 한진은 B2B시장에서는 경쟁 택배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 CJ대한통운 이상의 시장 1위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한진 B2B물류 주요실적. 한진의 B2B물류 서비스는 물동량 처리 기준 국내 1위를 자랑한다.(자료: 한진)

또 다른 핵심은 가시성

한진이 이번 설명회에서 강조한 또 다른 사항은 ‘가시성’이다. 국내 B2C택배를 포함하여 퀵서비스, 배달대행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화물 트래킹(Tracking)’이 B2B 로드샵 물류에 있어선 지금껏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는 게 한진측의 설명이다. 김 상무는 “10명 중 2~3명은 B2B 화물의 이동경로에 대한 가시성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루트배송과 오전배송이 거의 99%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B2C 익일배송률도 98~99%를 만들고 있는데, B2C 고객은 화물위치 추적을 수도 없이 조회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B2B고객인 로드샵 중에는 ‘어련히 오전에 배송되겠지’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정확한 가시성을 제공한다면 짜투리 시간을 화물을 전달받는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B2B물류 가시성 확보를 통해 고객의 숨은 니즈를 해소하겠다는 한진의 계획이다.

한진이 B2B물류 가시성 향상을 위해 도입하고자 하는 알림톡 개념도(자료: 한진)

한진이 B2B물류 가시성 확보를 위해 도입하는 기술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미 B2C택배에선 일반화된 ‘카카오톡 알림톡’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제 로드샵 샵매니저도 배송기사가 누구고, 대략적으로 몇 시에 화물이 도착하는지, 아직 배송이 안 된 화물이 몇 개나 남았는지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김 상무는 SNS를 통해 “물류업체에게 있어 가시성이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지만, 많은 업체들이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며 “한진은 투자확대를 통해 최대처리 역량(Capacity)과 운영역량을 강화하고, 화물의 이동단계별 고객과 단절된 부분에 대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IT기술을 접목하여 고객에게 디지털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객은 물류 서비스에 차별점을 느끼지 못한다. 한진이 먼저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은 화주사가 없는데요?

한진의 자랑거리를 잔뜩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한진이 ‘화주사’가 없다는 것은 아킬레스건이다. 생각해보자. 10조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낸 물류 하는 IT기업 삼성SDS와 국내최대 물류기업 현대글로비스가 무엇을 먹고 이렇게 클 수 있었는지 말이다. 앞서 이미 언급했지만, 한진의 경쟁사인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도 빵빵한 그룹계열 화주사를 가지고 있다. 한진은? 없다.

이 질문에 대한 김현우 상무의 답변이 이렇다. “자사 그룹물량으로 성장하고 있는 경쟁사와 달리 한진은 순수 영업활동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물류기업을 가진 화주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고객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물류업체와 계약을 할까요? GS홈쇼핑, 농협하나로마트, 신세계, 한화, 쿠팡은 모두 한진의 고객사입니다”

11톤 차량을 가득 채운 한진의 고객사 에이더의 물량. 11톤 차량에 1500~2000박스가 들어가는 B2C택배와는 달리, 박스가 큰 B2B배송은 통상 400~500박스가 들어간다는 한진측 설명이다.

우문현답인가. 한진은 앞으로 뭐 먹고 사나에 대한 답이 나왔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순수 3PL 대기업인 한진은 앞으로 ‘물류’해서 먹고 살면 된다. ‘서비스’와 ‘원가절감’, ‘생산성’과 ‘가시성’… 앞서 한진이 강조한 물류의 본질로 언급된 요소들이지만, 아직도 개선할 것은 많다. 그런 역량을 더욱 강화해나가는 것이 앞으로 한진의 숙제가 될 것이다. 김 상무는 “세상에 무조건적인 약점과 강점은 없다. 때로는 약점이 강점이 되고, 강점이 약점이 된다. 그래서 세상은 재밌다”고 전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