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은 만들어질 수 있는가

13명의 대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부분 자동차 관련 전공을 배우고 있는 이들은 모두 이날 처음 서로를 만났다. 이들에게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주어진다. 자동차 산업의 문제점을 찾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제품(소프트웨어, 하드웨어)을 기획하는 것.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실무를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제품 기획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도우미가 붙는다. 관심사 별로 나눠진 4개의 조에는 5명의 멘토가 배정됐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직접 창업을 하거나 마케팅, 투자, 디자인 등의 실무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자동차공학한림원의 원로교수들이 멘토를 자청했다.

학생들은 먼저 자동차 시장의 문제점을 포스트잇에 자유롭게 적었다. 이렇게 모인 문제점을 멘토, 팀원들의 의견을 모아 몇 가지로 압축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기획했다.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교육하겠다고 나선 업체가 있다. 업체의 이름은 오이씨랩. 오이씨랩의 장영화 대표는 현시대를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라 표현한다. 과거에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얻을 수 있었던 학벌과 전문직 자격증이 평생직장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저는 사실 안전 패키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서울대를 졸업했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사다리가 끊어졌습니다. 여전히 서울대 가기는 어렵고, 변호사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서울대 졸업장을 받거나 변호사 자격증을 땄을 때의 효과는 예전만 못합니다. 이제 서울대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변호사 자격증요? 가지고 있는 사람 엄청 많습니다. 무엇이 새로운 사다리가 될까 고민했습니다. 저에겐 그것이 ‘기업가 정신’이었습니다”

오이씨랩이 교육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이란 ‘남들이 하지 않는 기회를 발견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창업가의 기업가 정신’과는 다르다. 모두가 창업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이씨랩이 사업자 등록 과정을 안내해주는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장 대표는 “대학생에게 바로 창업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벼랑 끝에서 등을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모두가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될 순 없다. 나머지는 언젠가 찾아올 창업의 순간을 자기 방식대로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게 어떤 지식을 달달 외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스피릿

중요한 것은 ‘창업가처럼 사는 자세’다. 오이씨랩은 사회에 나오기만 하면 절룩거리는 이들을 만드는 현시대의 불안전한 교육을 이 시대에 맞게 재편하고자 한다. 석학을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이다. 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스스로 창조를 해보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필요한 것, 문제점을 발견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팀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더 좋다.

오이씨랩은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나는 ‘앙트십스쿨’이다. 강사, 운영, 콘텐츠를 한데 묶은 일종의 기업가 정신 교육 패키지다. 앙트십스쿨을 이용하는 고객은 기업가 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은 학교, 기관, 재단 등 교육기관이 된다. 일종의 B2G 교육모델이다.

앙트십스쿨 프로그램 특징(자료: 오이씨랩)

장 대표는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는 먹고 살려고 일을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하하는 ‘일’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현세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한 일을 찾을 수 있는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관심이 많다”며 “앙트십스쿨은 10년 전 교육에 머물러 있는 교육현장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알리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인턴즈’다. 기업가 정신을 교육한다는 목적은 앙트십스쿨과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교육보다 ‘진짜 세상(Real World)’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인턴즈는 먼저 한 달 과정의 교육을 진행한다. 이 과정을 통해 교육생 스스로가 본인이 스타트업 문화와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한다. 오이씨랩은 직무와 관련된 스타트업 실무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교육생의 성장을 돕는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결정을 마친 교육생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지난 7일 진행된 스타트업인턴즈 첫주차 교육 프로그램 진행과정과 추천도서. 중요한 건 참가자가 ‘스스로’ 답을 찾는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재 스타트업인턴즈는 두손컴퍼니, 눔코리아, 퍼블리 등 200여개의 매칭기업을 교육생과 연결해주고 있다. 스타트업이라고 ‘아무나’ 매칭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와 조직원이 서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존중’과 ‘같이성장’ 문화를 가진 기업들을 매칭기업으로 선정한다는 오이씨랩의 설명이다. 채용된 교육생과 업계의 평판에 따라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이 발견되면 과감히 매칭기업에서 제한다.

지난달 기준 스타트업인턴즈를 거친 교육생은 1108명이다. 955명이 한 달 교육과정을 수료했으며, 359명의 수료생이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장 대표는 “스타트업인턴즈는 단순히 스타트업에 특화된 헤드헌팅이 아니라, 인재를 발견하고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며 “스타트업 업계에서 좋은 신입은 스타트업인턴즈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지금은 신입대상의 교육만 하고 있지만, 향후 경력직과 관련된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스스로 무언가 만든다는 것

13명의 대학생들, 4개의 조가 하나씩 단상에 나와 발표를 시작한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스마트폰과 동일한 화면에서 다양한 모바일앱 UI/UX를 기획할 수 있는 마블(Marvel) 앱을 통해 실제 모바일화면으로 구성됐다.

마블앱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기획 발표. 참가자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앱화면을 구성했다.

첫 번째 조는 장거리 출장을 나가는 회사원을 위한 통합 교통 서비스 예약 앱을 발표했다. 앱은 캘린더와 연동된 최적 경로 안내와 관련된 경로에 있는 교통수단을 한 번에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교통편을 놓쳤을 때 막막할 수 있는 회사원들을 위해 해당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대체 교통수단 안내와 예약 서비스도 함께 제공된다.

두 번째 조는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활용하여 모바일 화면을 차량 창문에 띄울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자동차에 탑승한 승객들은 더 재미있는 승차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창문 썬팅 용도로 겸용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조는 1인용 자율주행 택시를 제안했다. 방법은 카카오택시의 그것과 같다. 탑승자는 QR코드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를 할 수 있다. 발표자는 승객을 괴롭히는 택시기사가 없는 차량임을 강조했다.

네 번째 조는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는 ‘자동차 열쇠’를 제안했다. 스마트폰이 자동차 열쇠 역할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차키를 빌려주는 기능도 있는데, 대여 시간을 설정하고 인증번호를 발송하면 해당 시간 동안 다른 이에게 차량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수 있다.

위 아이디어들은 오이씨랩이 ‘앙트십스쿨’의 일환으로 지난 3일 대구 엑스코에서 주관한 <자동차 스타트업캠프>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기획했다. 결과물의 완성도와 독창성은 차치하더라도,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 스스로 의견을 모아 치열하게 완성한 그들의 기획임에 분명하다.

장 대표는 “자동차 스타트업캠프를 준비하면서 대학생들이 무엇을 얻고자 이 캠프에 참가하는가 많은 고민을 했다”며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당장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자신의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을 위해 향후 창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업계, 학계 멘토들과 만나 충분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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