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가 바꾼 삶의 풍경

삼성전자에 다니는 김지영 프로(가명)는 금요일 오후 2시쯤 자리에서 일어난다. 올 1월부터 주 단위 40시간 일하는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어, 주중에 일을 잘 마무리하면 금요일 오후부터 일찌감치 주말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하루 필수 근무 시간은 네 시간이라, 시스템에 ‘비업무’를 표시하곤, 잠깐 나가 듣고 싶은 강의를 듣기도 한다. 야근을 안 하니까, 자연스럽게 업무 중 집중도가 높아졌다. 하루 서너번은 담배를 피러 나가던 동료들도 일명 ‘담배 타임’을 줄이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불필요한 회의도 많이 없어졌다. 한 동료가 “저녁 있는 삶이라기보다, 삶의 질 자체가 많이 올라간 기분”이라 말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네이버에 다니는 김현정 과장(가명)은 최근 퇴근 후 ‘미드 활동’을 시작했다. 보고팠지만 시간이 없어 미뤄왔던 ‘워킹데드’를 몰아본다. 이미 선택근로제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52시간제 이후 삶이 딱히 달라진 건 아니다. 그래도 퇴근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라진 건 사실이다. 낮 동안 일을 압축적으로 하고, 퇴근 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물론, 워킹데드를 보는 시간도. 쿠팡 김정민 차장(가명)은 7월부터 선택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출퇴근 시간을 매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됐다. 원래는 9시 30분 출근이었던 것을 지금은 8시 30분으로 당겨서 회사에 간다. 퇴근 시간이 5시 30분으로 빨라져 배드민턴 동호회에 들 수 있게 됐다. 회사와 집 사이가 멀어서 그동안은 동호회 활동을 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충분히 가능하다. 일주일에 하루는 재택근무가 가능해 은행 업무를 볼 때 따로 반차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위메프 대외협력팀의 박찬지 님은 올 초 결심했던 여름맞이 다이어트를 7월 들어 본격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일주일에 사흘 운동을 끊으려고 해도, 하루이틀 야근하다보면 결국 일주일에 한 번도 못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7월 1일부터는 각 부서 임원들이 ‘정시 퇴근’ 팻말을 들고 다니면서 퇴근을 독려한다. 눈치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 한 번도 안 빠지고 주 3회 운동에 성공했다. 넷마블 품질관리실에서 일하는 서일환 매니저는 지난해 2월부터 개인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 내 일하는 문화 개선안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가장 달라진 건 눈치 보지 않고 칼퇴한다는 것이다. 여유 있을 때는 4시쯤 퇴근해서 양육과 가사를 분담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딸아이 유치원 등하교를 시키는 것도 이번에 가능해졌다. 아이도 좋아하고, 아내한테도 칭찬받아 가족애가 돈독해진 것 같다. 엔씨소프트 정영민 씨(가명)는 지난 1월부터 유연근무제를 시작했다. 개인별로 출퇴근 시간을 정해 주 40시간 만큼 일하는데 그 이후 사내 동호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활동은 밴드다. 직원들과 그 가족, 친구를 초청해 공연이나 강의를 하는 엔씨 컬처 클래스(NC Culture Class)에도 많이 참여하게 됐다. 업무 외적으로 사내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도를 높였다. NHN엔터테인먼트 홍보실 이현중 차장은 7월 들어 일주일에 하루는  5시에 퇴근해 아내와 맥주를 마신다. 가장 맛있는 안주는 대화다. 그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진솔할 이야기를 할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느껴왔다. 최근엔 함께 할 취미거리를 찾아 보고 있었는데 조만간 클라이밍을 같이 시도해 볼 생각이다. 업무상 야근이 잦던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 말하다보니 5시가 넘었다. 얼른 퇴근해서 맥주 마시러 가야지. 카페24에 다니는 이현목 과장은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어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원래 6시 칼퇴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일해도 낮 시간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제몫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퇴근 후에는 늘 그랬듯 1주일에 한 번은 독서모임에 참여한다. 매월 네번째 금요일은 복지 휴가인데, 이때는 전 직원이 모두 쉬기 때문에 동료들은 ‘꿀휴가’라고 일컫기도 한다. 배달의민족 로보틱스 사업팀 박진용 님은 회사에 3년 전 입사했다. 그때부터 주 35시간을 일했기 때문에 주 52시간제가 생긴 후 달라진 건 없다. 3년 전에는 집과 회사가 멀어 개인 시간이라고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입사 후 늘어난 개인 시간은 주로 강의를 듣는데 쓴다. 월요일엔 오후 출근을 하는데, 조금 일찍 출근해 회사 동료들과 머신러닝 과정 강의를 수료했다. 요즘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자율주행과 로봇 개발 관련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제빵이나 음식 같은 취미 생활도 즐긴다. 남들 출근한 월요일 오전에 조조 영화를 보고 회사에 가는 것도 꽤 괜찮은 기분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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