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혁신을 위한 제1조건, 금지를 금지하라
1.
결국 8월 국회에선 은산분리 완화 등 규제혁신 관련법 처리가 무산됐다.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 방침을 천명했음에도 여당이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9월 정기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은산분리는 다른 말로 하면 일반기업의 은행사업 금지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기존의 금융사만 해야한다는 규제다. 즉 카카오는 카카오뱅크를 가질 수 없다.
이런 규제가 왜 생겼을까? 은행이 특정 기업의 사금고처럼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실제로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소유할 때 적지 않은 문제가 벌어졌다. 동양증권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3년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경영진들과 공모해 자사의 부실회사채를 우량한 것처럼 속여 판매했고, 이를 산 많은 피해자들이 거리에 쏟아졌다.
은산분리는 이같은 위험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취지에서 전두환 정부가 도입한 1982년 이후 아직까지 철옹성 같은 규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은산분리는 부정적 효과도 크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무려 23년만에 신규 허가를 받은 은행이다. 23년동안 신규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기존 은행산업이 혁신될 동인이 적었다는 의미다.
고객들이 그렇게 액티브엑스(Active-X)가 싫다고 외쳐도 은행들이 꿈쩍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눈치만 잘 보면 현 시중은행들은 지금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하며 사업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은행은 글로벌 경쟁력 없이 국내 시장에만 주로 머물러 있고, 은행간 서비스 차별화가 거의 없으며, 예대마진이라는 이자장사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어떤가?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메기가 등장하자 짦은 기간동안 은행산업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액티브엑스는 단숨에 없어졌고, 편의점에서 아무때나 수수료 없이 현금을 찾을 수 있게 됐으며, 새롭고 흥미로운 상품이 쏟아졌다. 일례로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은 출시된지 20일만에 30만계좌를 돌파했다. 기존은행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치다. 금융과 거리가 멀었던 20대가 너도나도 적금계좌를 만들었다. 금융상품을 게임처럼 만든 것이 주효했다.
결국 카카오뱅크가 등장하자 엉덩이가 무거웠던 기존 시중은행들도 혁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은산분리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은행의 사금고화를 원천차단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동시에, 시장에 신규참여자를 막아 혁신을 어렵게 한다.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으면서 혁신을 가속화할 방법은 없을까? 은산분리를 완화하고, 대신 은행 대주주나 계열사와의 거래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댈 수 있지 않을까? 금융위나 금감원이 산업자본 소유의 은행을 좀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전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제가 아니라, 부정적 효과만 막아내고 긍정적 효과를 살리는 규제를 찾아야 한다.
2.
이는 승차공유 서비스 금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택시에 면허라는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자격을 가진 자만 운행할 수 있도록 해서 고품질의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국내 택시 서비스의 품질은 어떤까? 많은 이들이 택시 서비스의 품질에 불만을 표한다. 멀리 우버나 디디추싱, 그랩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국내에서 택시업계의 공적이 된 카풀 서비스를 써본 이들은 택시보다 훨씬 싸고 편리하다며 입을 모은다.
택시 서비스의 품질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경쟁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는 다 불법이기 때문에 택시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면허라는 제도는 태생적으로 공급을 제한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는 법이다.
정부가 이런 기득권 옹호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아무리 택시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려 해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누구라도 혁신적인 서비스를 가지고 택시와 경쟁할 수 있어야 택시도 혁신한다. 경쟁이 없는 시장에서 혁신을 바라는 것은 망상이다.
3.
우리 정부는 ICO(Initial Coin Offering)도 금지시키고 있다. 물론 묻지마 코인투자 열풍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 있다.
하지만 개미들이 주식투자로 퇴직금을 날린다고 증권거래 금지나 기업공개 금지를 한다면 말이 될까? 부동상 값이 폭등한다고 부동산 거래를 금지시킬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ICO 금지는 한정된 기간에 쓰는 극양처방에 머물러야 한다. 사실 국내에서 ICO를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싱가폴이나 스위스에서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괜히 국부(國富)만 해외로 유출하는 꼴이다.
‘금지’라는 규제가 생길 때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금지에는 반드시 반대 급부가 따라온다. 이 반대급부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는 규제는 행정편의적이고, 폭력적이다.
금지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반대급부를 최소화하는 스마트한 규제를 찾아내는 것이 엘리트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무조건적인 금지는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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