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 안 작다, 한국서 먼저 성공한 스타트업 돼라”

나라 밖, 더 큰 시장에서 벤처 투자를 하는 이들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라볼까. 미국 벤처투자사(VC) ‘트랜스링크 캐피탈’을 이끄는 음재훈 대표에 따르면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자, 글로벌 시장도 승산이 있다. 국내서 성공한다면 글로벌 투자자가 먼저 돈을 싸 들고 찾아올 것이란 뜻이다. “한국 시장 작다, 한국에서 성공해봐야 우물 안 개구리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귀담아 들을만한 이야기다.

음재훈 대표는 21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 키노트 발표자로 섰다. 그는 실리콘밸리 벤처 신기술 동향을 ‘인공지능, 로봇공학, 블록체인’으로 꼽으면서 국내 스타트업에 “기술력으로 차별화를 할 것, 경험과 능력을 키울 것, 한 번에 하나의 제품에 매진할 것, 국내 시장에서 먼저 성공할 것”을 주문했다.

국내 소비 시장과 스타트업의 성장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한국이 경제 규모는 13위이지만 도시 지역 소비성향은 세계 어느 시장 못지않게 좋다”며 “그 시장을 공략하는 스타트업은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트랜스링크 캐피탈은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도 투자하고 있다. 발표가 끝나고 음 대표를 만나 그가 바라보는 아시아, 그리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다음은 음 대표와 일문일답이다.

음재훈 트랜스링크 캐피탈 대표

Q. 국내서는 라이드셰어링(승차공유) 서비스가 위기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규제에 가로막혔고, 그로 인해 선발주자의 대표가 사표를 내기도 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라이드셰어링에 대한 규제가 어떤가?

나라마다 정확한 규제는 잘 모른다. 라이드셰어링과 관련해 한국이 규제가 엄격한 것은 사실(fact)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택시 업계에 대한 정부 간섭을 통한 택시비가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래서 (정부 입장에서) 택시 노조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정한다.

Q. 다른 나라도 택시를 운행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어떻게 갈등을 풀었는지, 사례가 있나

그런 갈등은 사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버 같은 라이드셰어링뿐만 아니라 에어비앤비 같은 홈셰어링도 결국은 라이선스 비즈니스다. 라이선스를 받는 조건이 나라마다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그 까다로운 요건을 맞춰서 라이선스를 받았는데 그게 없이 운영한다면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제가 보기에 결국은 ‘여론’이다. 그동안 운송업체, 숙박업체가 서비스를 잘하거나 가성비(가격대비성능)가 높으면 소비자의 불만이 없어질 텐데 그런 불만이 누적돼 훨씬 더 좋은 서비스가 출현하게 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여론이 그쪽(혁신 서비스)에 몰린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정 이해 단체보다는 전체적인 여론을 수긍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잡음은 나라마다 있다. 프랑스에서도 택시 노조 파업을 했음에도, 결국 지금은 우버 서비스를 쓰지 않나

Q. 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경쟁을 시키는 게 맞다. 규제를 통해서 하나는 하게 되고 하나는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시장 경제로 풀어 놓은 거다. 지금도 택시는 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우버를 쓴다.

Q. 국내에서도 갈등을 여론으로 풀어가는 것이 맞다고 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모두 편하게 쓰는 서비스를 한국에서는 못 쓴다. 예전에 공인인증서 때문에 불편을 겪은 부분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런 사례가 예전부터 많이 있었다. 모바일 인터넷 시절에도 한국에 특화된 서비스만 하다 보니 다른 나라로부터 애플리케이션 서비스가 들어오는 게 늦어졌다. 이런 것이 자생적 생태계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쇄국정책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뒤처지고 속국이 된다.

Q.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중에서 스타트업 창업과 투자가 가장 활발한 곳은 어디인가

단연 중국이 일등이다. 중국이 실리콘밸리에 육박할 만큼 성장했다. 유니콘 수도 많고,  유니콘의 시가총액도 더 많다. 실제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BAT)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에 버금가는 수준이 됐다.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된 곳이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이 아닌가 한다.

Q. 의외다. 국내에서는 “우리는 창업도 잘 못 하고, 투자도 없다”는 목소리가 큰데

팩트 근거가 없는 자아비판적 성향이다. 그런데 그게 장점이 돼서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우리가 조사하는 바로는 중국 다음에 한국, 그리고 대만과 일본 순이다.

Q. 일본은 생각보다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

문화적인 특성도 있다. 활성화가 안됐기 때문에 아베 정권 들어 정부 주도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보다 10년 정도 늦은 것 같다.

Q. 글로벌 투자가 중국에서도 많이 이뤄지나

중국에 미국의 최상위(Top tier) VC의 돈도 많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중국 VC의 모태펀드에 미국 기관의 돈도 많이 들어가 있다.

Q. 일본이 관 중심이라고 말했는데, 우리도 투자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경우에는 돈을 집어 넣으면 돈을 벌 수 있는 엑시트가 워낙 많이 나온다. 정부가 돈을 안 집어 넣어도 거기에 돈이 몰려들어가게 되어 있다. 재단이나 기관이나 개인이 투자를 많이 한다. 우리의 경우 엑시트나, 성공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관에서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정부 돈이) 촉매제로 작용해 어느정도 활성화가 된 다음에는 그 비중을 줄이는 게 맞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진화가 되긴 했지만 아직 큰 성공사례가 많이 안 나왔으므로 정부에서 계속 푸시를 하는게 아닌가 싶다.

Q. 정부가 돈이 아닌 다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민감한 이야기인데, 제가 보기엔 지원을 안 하는것보다는 하는 것이 100% 좋다. 단지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을 했으면 한다. 무슨 말이냐면, 창업을 이미 해놓은 스타트업인 경우에는 여러가지 지원을 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창업 하기 전 단계의 창업 지망생들에게 보다 더 많은 교육 기회, 인턴십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인턴십이라면, 일반 기업을 포함해서 말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서 실리콘밸리나 중국, 이스라엘 같은 다른 나라 인턴십을 지원한다. 학생이 해외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자문제를 풀어주고, 그 학생들을 채용할 때 교통편의나 숙박을 지원하는 거다.

Q.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스타트업 하기 힘들다는 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까지 규제가 강한 편이다. 한국 경제는 초기부터 정부주도로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도 정부가 다 챙겨줘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유년기 청소년기가 아니다. 이미 다 컸는데 마마보이 같이 챙겨주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

Q. 코인공개(ICO)를 하게 되면 벤처투자사의 경쟁자가 될거라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ICO는 펀드레이징의 한 방법일 뿐이다. 크라우드 펀딩의 하나다. 심지어는 은행빚을 질 수도, 개인돈으로 사업할 수도 있다. ICO는 그런 여러 옵션 중 하나다. 노력 대비 투자 받을 수 있는 성과가 높다면, 창업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단지, 투자를 받고 나서 결국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나 플랫폼을 개발을 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만드는데 있어서 ICO 투자자들이 얼마나 지원을 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VC가 다른 자금 소스와 차별화한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은 그런 쪽에 경험이 누적돼서 네트워크를 활용해 좋은 인재 영입을 도와주거나 거래선 파트너를 찾아준다든지 하는 부분의 가치를 더해준다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ICO를 해 수천만불의 자금을 확보하고 나서, 와이컴비네이터에서 교육 받고 네트워킹 확장한 후 벤처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사례가 있다.

Q. 발표에서 강조한 것 중 하나가 “국내 시장을 먼저 장악하라”였다. 그런데 그만큼 크지 못한 기업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기업들에 해주고픈 말이 있나

그게 정상이다. 잘 나가는 회사라고 말하는 유니콘 하나가 있다면, (상응해서) 그러지 못하고 실패한 회사가 천개, 만개씩 있다. 그건 이 업계의 생태계다. 그런데, 창업자의 능력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글로벌한 비즈니스를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시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라서’ 하는 도전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 받고 지원받는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제 생각에는 확률이 높은 방법은 홈그라운드에서 먼저 이긴 다음 충분한 리소스를 갖고 해외 진출을 하는 거다.

Q. 최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평가한다면?

미국에서 일하는 지난 20년 간 나를 찾아온 스타트업을 생각해보면 최근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퀄리티가 좋아졌다. 소위 말하는 ‘박세리 모먼트’가 조만간 터질거라고 생각한다. 그거 한 번 터지면 봇물 터지듯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괜히 어렵게, 더 어둡게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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