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철 만화영상진흥원장 “북한과 만화로 만납시다”

남북 정상이 전화 한 통으로 상대를 불러내 이야기 하는 시대가 왔다. 쉽게 연락하고 자주 만날수록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평화를 위해서는 서로를 대화의 상대로 바라봐야 하며, 적으로 여기기보단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를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쉽게 상대를 아는 방법은 문화 콘텐츠 교류다. 기자는 위험한주부들을 보면서 미국의 중산층 문화를 알게 됐고(한글 자막), 슬램덩크를 읽으며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다는 일본의 스포츠 사랑을 느꼈다.

콘텐츠로 북한을 이해하고, 교류하자고 움직이는 곳이 있다. 북한과 만화 교류를 준비하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이다. 진흥원은 지난 3월 남북체육교류협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남북만화 교류전’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안종철 진흥원장이 있다. 안 진흥원장은 5년 전 청주비엔날레에서 일할 때 북한과 ‘도자기’를 통한 문화교류를 추진했던 경험이 있다. 남북만화 교류전 준비를 위해 북한에 방문할 채비를 하고 있는 안종철 원장을 지난달 부천 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안종철 만화영상진흥원장.

“만화가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기 위한 문화교류의 시발점이 되면 얼마나 뜻깊을까요? 만화는 이슈를 전달하기도 좋고, 콘텐츠가 있어서 더 쉽게 읽고 이해하기 쉽잖아요.”

안 원장은 정권이 바뀌기 전부터 북한과 문화 교류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세계 주역이 되기 위해선 남북통일을 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울러 “북한의 역량이 다른 민족이 갖고 있는 것보다 뛰어나다. 개성공단에서 이미 증명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진흥원은 남북만화 교류전을 위해 국내외서 북한 만화를 수집하는 이들에게 관련 자료를 빌려 내용을 참고하고 있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현재 진흥원이 소장자에 대여에 잠시 보관하고 있던 만화들이다.

북한 만화는 대체로 계몽, 프로파간다를 주제로 다룬다. 국내외 수집가들이 모으는 것은 대체로 학습을 목표로 하는 계몽용이라고 한다.
‘해녀와 왕자’라는 만화의 머리말. ‘어린 동무들’을 독자로 삼았다. 2006년 출판작.
국내로 반입되는 만화책들은 프로파간다류를 제외한 계몽 서적이 많다고 한다. 위는 역사를 다룬 만화들이다.
말풍선이 들어간 만화.
계몽용으로 만들어진 만화는 삽화를 넣은 그림책 형식의 만화가 많다고 한다.

안 원장이 문화 교류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이력과 관련이 깊다. 학교 다닐 때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에 푹 빠졌고, 영화나 소설 등의 미디어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게 됐다.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내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문화운동을 하기 위해 케이블로 진로를 틀었다. 난생 처음 듣는 전파 관련 어려운 단어 속에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돼 박사학위는 방송통신정책으로 땄다.

그에게 만화는 효과적인 문화운동 수단이다. 이 때문에 안 원장의 부임 일성은 ‘만화의 르네상스를 이끌겠다’였다. 구체적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는 ‘진흥원의 국가기관화’다. 진흥원의 역할이 확장되어야만 만화계에 대한 지원을 활성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두번째는 ‘멀티소스 멀티유즈(MSMU)’로, 만화가 갖고 있는 원천 콘텐츠의 확장성을 십분활용해 타 산업과 연관효과를 크게 가져오겠단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카카오처럼 최근 웹툰의 세계 진출에 관심을 갖는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이중 우선 관심을 갖는 것은 MSMU다. 그는 “만화에 기술을 붙여 확장하면 다른 산업영역에 뿌리 역할을 하는 생태계로 확장할 수 있다”며 “IT를 공부했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무빙툰, 더빙툰처럼 기술적인 요소가 접목된 새로운 웹툰 시장 분야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이 현재 460여 명의 작가가 입주한 진흥원을 돌아다니며 부정기적으로 작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최근엔 하일권 작가를 찾아서 네이버에 연재한 인터랙션툰 ‘마주쳤다’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를 듣고, 관련 기술을 확장할 방안은 없는지 토의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작가들의 골칫거리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최근 만화계의 큰 골치거리는 불법 복제 사이트다. 안 원장은 “콘텐츠 업계는 복제와의 전쟁이고 디지털의 특성이 복제(copy)”라며 “이걸 막을 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끊임 없이 같이 가야하는 평행선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정부나 우리 기관이 업계와 협력해 지속적이고 정기적이고 주기적으로 관심을 갖고 시스템적으로 체크해 불법 복제를 막는 수밖에 없어요. 기술적으로 불법복제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국민의 의식이 더 중요해요. 좋은 성과를 얻은 영화의 굿 다운로더 운동을 모델 삼아 불법 복제 사이트에 가지 말자는 운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불법 저작권은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안 원장이 중국에서 지식재산산업국장을 만나 한국 만화 저작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키도 했다.

앞으로는 만화계 생태계를 다양하게 확대하는데 힘을 쓰고 싶다고 했다. 유명 작가, 유명 플랫폼에 한정한 만화 논의에서 벗어나 신인 창작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강조한 것은 ‘공정한 생태계’다. 작가와 플랫폼간 갑을 논쟁에서 벗어나 상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다.

최근 안 원장은 직원 평가 지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사과나 직원들 사이에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걸 체험했기 때문이다.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애초에 없애기 위한 정량 평가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 번에 시스템을 바꾸긴 어렵지만 기회에 대한 평등, 자기가 일한 것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음으로써 직원들이 자존감을 느끼길 바란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평가 지표가 필요한 유관 기관이나 기업에 팔아 수익을 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돈을 벌면 어디에 쓸 것이냐 물었다. 안 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익이요? 당연히 남겨야죠. 그 돈은 직원들 복리후생에 쓸 겁니다.”

시스템을 개발해 다른 기관에 팔아 직원들 복지에 쓰겠다는 기관장은 난생 처음 봤다. 성공했으면 좋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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