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오라클, 인터넷을 죽이다

오라클과 구글의 자바 API 저작권 전쟁에서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끝내 오라클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법정 다툼에서 패배한 구글은 오라클에 수조 원을 배상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거나말거나.

돈 많은 구글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판결이 인터넷 산업, 나아가 IT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언론은 이번 분쟁을 ‘자바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구글이 자바의 특허권과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오라클의 주장으로 시작된 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자바 법적 분쟁은 자바 전쟁이라고 불리면 안된다. 이는 문제를 축소시키는 표현이다. 이 재판의 핵심은 자바가 아니다.

이번 재판은 자바가 아니라 API에 대한 것이었다. API에 저작권을 인정하느냐마느냐, 저작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정사용 대상이냐 아니냐가 핵심이다. 공정사용이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이라도 허가없이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API란 프로그램이 서로 통신할 수 있는 규격이다.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일종의 명령처럼 이용된다. 최종 저작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가 API인데, 여기에 저작권을 부여한다면 자유로운 창작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자프론티어재단은 이번 분쟁에 대해 “API는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이 서로 통신하기 위한 것으로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코드와는 다르다”면서 “API를 저작권으로 취급하는 것은 상호운용성과 혁신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IT의 발전은 API를 개선하면서 이뤄졌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과 온라인 서비스는 개방된 API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구상 거의 모든 온라인 기업이 사용하는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생각해보자. 리눅스는 어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일까? 리누스 토발즈라는 천재가 하얀 백지 위에 하나씩 코드를 써서 갑자기 ‘짠’ 하고 세상에 내보인 것일까?

아니다. 리눅스는 유닉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리눅스가 유닉스 기반으로 만들여졌다는 것은 유닉스의 API를 차용해 확장 발전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닉스 API는 원래 유닉스 커널을 위해 AT&T의 벨 연구소(벨랩)에서 개발한 것이다. 리눅스는 이를 확장해서 만들어졌다. 덕분에 유닉스 프로그램을 리눅스에서 실행할 수 있었다.

당시 API 저작권이 강하게 적용됐다면 현재의 리눅스는 존재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유닉스 프로그램과의 상호운용성이 없었기 때문에 리눅스를 위해 새롭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수고를 할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C언어와 C++는 다른 프로그램 언어지만 API의 상당부분을 공유한다. C언어의 API를 확장할 수 없었다면 C++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C, C++뿐 아니라 오브젝트C, GCC 와 관계도 마찬가지다. 파이썬을 변형한 자이썬, 아이언파이썬, PyPy 등이 있고, 루비와 유사한 제이루비, 아이언루비, 루비너스 등이 있다. C#과 비주얼베이직을 차용한 Mono도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업체들의 표준처럼 이용되는 오픈스택은 한동안 아마존웹서비스(AWS)의 API를 채택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내외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AWS와 오픈스택의 상호운영성을 위해 필요성이 대두됐다. 다행히(?) 커뮤니티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오픈스택이 AWS의 상호운용성을 위해 API를 차용했다면 이번 판결로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 전체가 불법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API의 자유로운 활용에 족쇄를 채운 이번 재판 결과는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지금도 돈이 많은 오라클은 약간의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인터넷과 IT산업의 혁신은 크게 위축될 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오라클이 IT 생태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법조인들을 앞세워 인터넷을 죽인 사건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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