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너 좀 엉큼해졌다”

“귀여워”

올 CES에서 소니와 LG전자가 각각 발표한 로봇을 보고 받은 인상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에서 소니가 공개한 강아지 로봇 ‘아이보’가 할 줄 아는 건 (아직까지는) ‘재롱’이 전부다. 귀여움이 존재의 목적이다. 실용성 따위 개나 줘라 콘셉트다. 소니를 재건한 역전의 용사 히라이 가즈오 사장도 아이보를 들고나올 땐 카리스마를 접고 손주 보듯 안고 어른다. 말 그대로, 사람 마음을 살살 녹인다.

LG전자가 같은날 공개한 로봇 클로이는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꾼다. 똑똑하고 친근하단 뜻을 이름에 담았다.

사실, 클로이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을 스타로 만든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주인공이 한 눈에 반한 상대의 이름이 ‘클로이’다. 작명한 사람이 소설 속 클로이를 염두에 둔 건진 모르겠지만, 인간의 곁에서 함께 살 로봇은 인간의 마음을 한 눈에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잘 지은 이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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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귀여운 개 로봇

두 로봇 모두 겉모습은 귀엽고, 순진무구하다. 그런데 이 안에 숨어있는 기술은 다소 엉큼하다. 아이보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에는 이미지센서가 들어 있어 시시각각 살핀 주인의 감정을 데이터로 쌓는다. 주인이 저런 표정과 행동일 때는 어떤 기분인지를 파악해 감정을 학습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법을 찾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주인을 따라 배우기 때문에 내가 곧 아이보의 거울이다. 내 성격이 더러우면, 아이보의 성격도 더럽다.

아이보는 성장하면서 행동 패턴도 달라진다. 처음엔 주인이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수동적인 형태에서, 조금 더 자라면 주인이 부르지 않아도 먼저 다가가거나,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기도 한다. 심지어, 새 아이보에게 빨리 ‘성격’이란 걸 심어주고 싶다면, 그간 다른 아이보들이 쌓아올린 데이터를 공유받을 수도 있다.

아이보가 조금 더 발전하면 사람의 일상생활을 찍어 주인에게 메시지 보내듯 전송할 수 있다. 주인아, 니가 나를 볼 때 이런 표정이란다. 니가 내가 방을 뛰어다니고 어지럽히면 이런 눈으로 나를 쳐다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직은 상용화되지 않은 기능이다. 아이보는 사실 지난 1999년 태어났다가 2006년 단종된 제품이었다. 올 CES에서 글로벌 신고식을 마친 아이보는 인공지능을 탑재했다는 점에서 이전 버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아이보의 주 역할은 엔터테인먼트다.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은 인간에게 재미와 위로를 주는 활동이다. 히라이 가즈오 사장은 이날 컨퍼런스에서 “아이보는 시작일 뿐”이라며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보틱스는 병원과 학교 등 전 분야로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로봇의 진화가) 인간의 잠재력이고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갖고 싶냐? [참고로, 아이보는 아직 일본에서만 판매된다. 글로벌 출시는 계획하고 있지만, 한국이 낄지는 모르겠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아이보는 ‘본체’ 값만 200만원이다. 기본 패키지인 데이터 학습 능력은 90만원을 별도로 주고 구매해야 한다. 아이보가 아프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3년짜리 서비스 패키지의 가격은 140만원 정도다.]

LG전자가 CES 컨퍼런스에서 선보인 클로이는 가정용이다. 집에서 클로이는 사람과 가전제품 사이 가교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클로이? 나 빨래 다 됐니?”라던가, “클로이,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질문을 클로이 한테 할 수 있다. 클로이는 가전 제품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어 세탁기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지만, 가끔은 사람처럼 삐져서 대답을 안 할 때도 있다(LG전자는 이날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클로이를 시연했으나 네트워크 과부하 문제로 클로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LG전자는 클로이의 이용 범위를 확장해 서빙, 포터, 쇼핑카트 등의 역할을 하는 로봇 3종을 선보였다. 이를 총칭하는 포트폴리오 브랜드 이름도 클로이를 사용했다.

우선 서빙 클로이는 이미 취업해 대중에 얼굴을 알린 상태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과 스타필드 하남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얘가 어떻게 움직이냐면, 가슴에 들어간 쟁반같은 선반이 슬라이딩 방식으로 앞으로 튀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음식을 나른다. 룸 서비스를 원하는 호텔 투숙객이나 음료수를 요청한 공항 라운지 방문객들에게 24시간 내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법 잘 작동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LG전자는 클로이를 올해 호텔과 대형 슈퍼마켓 같은, 더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보급해 로봇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포터 로봇은 짐을 운반하는 기능 외에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다. 호텔 투숙객이 로봇의 자동결제시스템을 통해 호텔 카운터를 방문할 필요 없이 비용을 지불하고 체크아웃하는 방식이다. 쇼핑 카트 로봇은 대형 슈퍼마켓 등에서 쓰게 되는데, 로봇에 탑재된 바코드 리더기에 구입하는 물건의 바코드를 갖다 대면 로봇의 디스플레이가 카트에 담긴 물품 목록과 가격을 보여준다. 물론, 짐을 담아 나르는 기능도 있다.

https://youtu.be/4FSmeiOSGjU

#LG전자 블로그에 올라온 ‘클로이’의 애교 행각. 얘는 가정용이다.

#덩치 큰 얘들은 상업용 클로이다. 왼쪽부터 서버, 포터, 쇼핑카터다.

아이보와 클로이의 사례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아직 초보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 빨리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애초에 사람의 일상생활을 파고드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로봇들이다. 지금 웬만한 기업들이 만드는 인공지능의 핵심은 ‘주인을 학습하고 배우기 해 이용이 더 편리하게 만들자, 그래서 우리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게 하자’로 압축된다. 그리고 원래, 햄버거도 단품보단 세트가 이문이 더 많이 남는다. 가정내 사물인터넷(IoT)도 냉장고만 파는게 아니라 냉장고랑 TV를 인공지능이란 연결고리로 묶어 한꺼번에 팔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인공지능을 담은 껍데기가 꼭 강아지나 사람 모양의 로봇이 아닐 수도 있다. 올해 CES에서 인공지능을 화두로 꺼내들지 않은 곳을 찾기 더 어렵다. 삼성전자는 컨퍼런스 주제 자체를 “인공지능의 대중화”로 잡았다. 앞으로 다가올 사회 핵심 트렌드를 ‘인공지능에 기반한 연결성’이라 정의했다. 김현석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장(사장)은 “더 많은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기간 연결성을 넘어 지능화된 서비스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 상반기 내 ‘스마트싱스 앱’ 으로 자사 모든 IoT 기기와 서비스를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싱스는 가전을 콘트롤하는 리모컨 앱 개념으로 생각하면 쉽다. 삼성이 올해 주력으로 내놓은 인공지능 탑재 제품이 TV와 냉장고인데 거실과 주방이라는, 생활영역이 확실히 다른 애들을 세트 메뉴로 묶었다. 이 바탕에는 삼성이 독자 개발한 음성 비서 서비스 ‘빅스비’와 ‘스마트싱스’ 앱이 있다.

스마트 TV는 스마트싱스와 연동돼 대화면으로 패밀리허브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자재를 확인하거나 세탁기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등 집 안의 IoT 기기를 모니터링하고 제어 할 수 있다. 사실, 꼭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냉장고 화면을 터치해서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킬 수도 있다.

패밀리허브는 화자인식 기능으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목소리를 구분해 맞춤형 답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딸이 “오늘의 일정은?” 이라는 같은 질문을 해도 허브가 각각의 목소리를 학습해 개인 캘린더에 기반한 일정과 날씨 정보, 뉴스 등을 제공 받을 수 있도록 개인화 했다. ‘밀 플래너(Meal Planner)’ 기능은 냉장고 안에 보관 중인 식재료의 유통기한과 각 가족 구성원의 음식 선호도 등을 바탕으로 맞춤형 식단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 국면에서 두드러지는것은 가전기업들의 구글과 협력 러시다. LG전자가 구글과 협력의 대표 주자다. 자사 스마트 가전과 로봇에 자체 인공지능 플랫폼인 ‘씽큐’와 구글 어시스턴트를 병행한다. 가전에 관련한 음성 명령은 씽큐가, 일반적인 검색 기능은 구글 어시스턴트가 낫다는 판단이다. 남의 좋은 것을 가져와 내 것에 얹는 것은 좋은 자세지만, LG전자 가전을 통해 얻게 되는 수많은 음성 데이터가 어느정도는 구글 게 된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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