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망중립성, 어떻게 볼 것인가

망중립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오는 12월 14일 오바마 정부에서 확립한 망중립성 원칙을 재검토한다고 합니다.

아마 이 회의는 망중립성 원칙을 유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연히 망 중립성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해왔고,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망중립성 폐지론자이기 때문입니다. FCC 위원 구성도 공화당 3명, 민주당 2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어 정부 측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

미국에서 망중립성 원칙을 버린다면, 이는 국내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망중립성을 원치 않는 통신사들이 미국의 사례를 들며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망중립성이란?

위키백과 사전에는 망중립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모든 네트워크 사업자와 정부들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사용자, 내용, 플랫폼, 장비, 전송 방식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용어는 2003년에 콜롬비아 대학교의 미디어 법 교수인 팀 우(Tim Wu)가 만들었다. 비차별, 상호접속, 접근성 등 3가지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조건이다.”

망중립성의 핵심은 콘텐츠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네트워크 시스템에 부담을 많이 주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텍스트처럼 가벼운 데이터를 선호합니다. 망중립성이 없다면 통신사는 자의적인 선호에 따라 콘텐츠 종류나 콘텐츠 업체를 선별해 전송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망에서 동영상은 못 보내”라거나 “동영상 보내는 콘텐츠 회사들은 돈을 더 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철도로 예를 들어 볼까요. 지난 주 부산에서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 2017이 열렸습니다. 지스타 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지스타에 참석합니다. 그러다보니 KTX가 만석이 됐다고 가정해봅시다. 기차 좌석은 한정돼 있는데 지스타 때문에 일반 여행객은 표구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이때 철도공사가 지스타조직위원회에 “너희들 때문에 기차 이용에 지장이 있으니, 돈을 더 내라”라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실제로 200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메디슨 리버 커뮤니케이션즈(Madison River Communications)라는 회사는 인터넷전화 사업자인 보니지(Vonage)의 트래픽을 차단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9월 LG파워콤이 자사망에서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 트래픽을 차단한 적이 있고, KT도 삼성 스마트TV를 접속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콘텐츠의 내용을 통신사가 검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2006년에는 미국 AOL사가 자사에 반대하는 특정 사이트의 링크가 포함된 이메일을 차단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캐나다의 Telus사는 불법적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통신 노동조합 운영 웹사이트에 방문하는 것을 차단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정부는 ‘오픈인터넷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망중립성을 법제화 했습니다.

“무임승차” vs “이중과금”

망중립성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통신사(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와 콘텐츠 제공회사(Internet Contents Provider, ICP)의 이해관계게 첨예하게 맞물리는 이슈입니다.

통신사들은 망중립성을 강하게 반대합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한 가입자가 이용하는 트래픽이 커질수도록 부담이 커집니다. 가입자수는 한정돼 있는데 트래픽은 계속 늘어나서 설비투자를 멈출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제한 정액요금을 마음대로 인상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죠.

이런 점에서 트래픽을 과도하게 일으키는 콘텐츠 서비스를 차단하고 싶은 통신사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망중립성을 요구하는 넷플릭스의 온라인 시위. 망중립성이 없었다면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유지되기 힘들다.

트래픽의 빈익빈부익부 현상도 발생합니다. 미국의 경우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서비스가 대부분의 트래픽을 잡아먹습니다. 망이 제공하는 트래픽은 한정적인데 특정 몇몇 회사가 트래픽의 대다수를 차지하면, 다른 회사나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용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또 통신사들은 약간의 피해의식도 있습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놈이 번다”는 생각입니다. 본인들은 엄청난 자본을 들여 시설투자를 하고 인터넷망을 깔았는데, 인프라 구축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콘텐츠 업체들이 그 위에서 돈을 다 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철 LG 유플러스 부회장은 “호텔을 지어놨더니 로비에서 호떡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반면 콘텐츠 회사들은 “통신 사업자들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이미 요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 기업에 추가로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이중 과금”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콘텐츠 회사들은 망중립성을 ‘기본권리’라고 주장합니다. 망중립성이 없다면 인터넷콘텐츠 산업이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이 처음 나왔을 때 이동통신사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문자메시지(SMS)로 쏠쏠하게 수익을 내고 있는데, 카카오톡의 등장으로 수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망중립성이 없었다면 이동통신사는 카카오톡 데이터를 제한하거나, 카카오 측에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이용자들은 카카오톡을 이용할 수 없거나 유료로 이용해야 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랬다면 카카오가 국내 최대 모바일 기업으로 성장할 일도 없었겠죠.

2012년 카카오톡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인 ‘보이스톡’의 통화 품질을 이동통신사가 고의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저가 요금제 이용자들은 M-VoIP 이용이 제한돼 있습니다.

한국의 망중립성 현황

국내에서는 현재 기본적으로 망중립성 원칙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12월 ‘망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방송통신위원회 주도로 만들어졌는데, 망중립성을 옹호하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이를 좀더 구체화 한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이라는 것도 발표됐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망중립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현재까지는 망중립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망중립성 원칙은 조금씩 완화되는 조짐이 있습니다. ‘제로 레이팅’이라고 불리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와 콘텐츠 업체가 제휴를 맺고 특정 콘텐츠 이용 데이터 요금을 받지 않거나 싸게 받는 것을 말합니다. SK텔레콤의 ‘포켓몬고 데이터 무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통신사와 콘텐츠 업체 사이에 제휴를 맺고 이용자가 저가에 이용하니 모두가 윈윈(Win-Win)일 것 같지만 망중립성이 훼손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켓몬고 데이터 무료’는 경쟁 게임에 진입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통신사와 콘텐츠 회사가 제휴를 맺을 경우 스타트업 등 새로운 경쟁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특히 통신사가 제로 레이팅을 자사 콘텐츠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SK텔레콤은 LTE 요금제 5만원대 이상 가입자에게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옥수수 SK텔레콤 전용관’이라는 상품을 내놓았는데, 자사 콘텐츠 서비스의 경쟁력 강화에 요금제를 이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로 레이팅이 망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정부는 2016년 통신비 절감 정책 차원에서 제로 레이팅을 일단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망중립성 원칙을 버리기로 한다면 국내에서도 망중립성 원칙을 재검토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또다른 논란 망 역차별

네이버 한성숙 대표는 구글과 신경전을 벌이던 지난 11월 9일 “2016년에만 734억원의 망사용료를 지불했다”고 밝히며, 구글은 얼마를 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네이버 한성숙 대표

국내 인터넷 회사들의 오랜 불만 중 하나가 망사용료 역차별 문제를 거론한 것입니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구글 유튜브의 2017년 9월 국내 동영상 시간 점유율은 72.8%로, 네이버 동영상 서비스(2.7%)의 27 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네이버가 동영상 서비스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영상이 대역폭을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유튜브가 네이버보다 훨씬 더 많은 망을 사용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는 구글은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내지 않습니다.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 아프리카TV와 같은 국내 업체들은 수백억원의 망 사용료를 냅니다.

이런 구조가 된 것은 배경이 있습니다. 유튜브 서버는 해외에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유튜브에 접속하면 국내 통신사들은 해외망 이용료를 내야합니다. 이용자들이 유튜브를 이용할수록 통신사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 때문에 통신사는 자사 데이터센터 내에 유튜브 캐시서버를 두고 있습니다. 많이 보는 동영상을 국내 데이터센터에 저장해두고 이용자들이 접속하면 보여주는 것입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해외망 이용료를 절약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자비로 캐시서버를 만들어줍니다.

자비로 캐시서버까지 만들어주는 통신사가 유튜브에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망 사용료를 내라고 할 수는 없겠죠? 구글이 캐시서버를 없애고 해외 데이터센터에 접속하도록 한다면, 통신사로서는 큰 손해를 보게 될테니까요.

이런 사정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수백억원의 망 사용료를 내고, 해외 업체는 한 푼도 안내고 서비스를 펼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정이 서비스 품질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망 사용료를 안내는 유튜브는 영상 품질을 높여도 망 비용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내 서비스 업체들은 영상의 품질을 두 배 높이면, 망 비용도 두 배로 늘어납니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고화질 서비스로 720p를 제공하는데, 이를 4k 영상으로 서비스한다면 비용은 6배 늘어납니다. 네이버가 734억원의 트래픽 비용을 냈다고 하니까 720p 영상을 4k 영상으로 업그레이드 한다면 4400억원의 트래픽 비용이 나가겠네요.

망 사용료 역차별 문제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많은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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