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빨간 T셔츠를 입은 한국오라클 대표

지난 8월 3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는 오라클의 개발자 행사인 ‘오라클 코드’가 개최됐습니다. IT회사가 컨퍼런스를 여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지만,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김형래 한국오라클 대표의 옷차림입니다. 김 대표는 빨간 T셔츠를 입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한국오라클의 대표가 공식 행사에 T셔츠 차림으로 참석하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정장에 넥타이 차림이죠.

IT업계에서 정장과 넥타이는 ‘비즈니스 맨’을 상징하는 옷차림입니다. 티셔츠(또는 남방셔츠)와 청바지는 개발자를 상징하는 옷차림입니다. 말하자면 언제나 비즈니스 맨 옷차림이었던 김 대표가 이날은 개발자 옷차림을 하고 행사에 참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오라클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라클이 주력으로 판매하는 제품인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는 매우 고가의 제품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오라클의 고객은 대부분 ‘엔터프라이즈(규모가 큰 기업)’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대기업의 최고정보책임자(CIO)나 전산팀장을 상대했습니다. 오라클 대표는 비즈니스 맨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라클은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엔터프라이즈에 비싼 소프트웨어를 팔던 비즈니스 모델이 앞으로는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라클 DB는 성능 좋고 값비싼 하드웨어(서버, 스토리지)와 함께 운용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기업의 IT환경이 클라우드로 전환되면 오라클DB의 위력이 지속된다고 장담하기 힘듭니다.

최근 스타트업은 대부분 클라우드 위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거나 클라우드로 전환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쿠팡이 최근 전체 IT인프라를 아마존웹서비스(AWS)로 이전했습니다. 배달의민족도 AWS를 이용합니다. HP나 IBM 서버가 아니라 AWS 위에서 돌고 있는 서비스에 오라클 DB를 파는 건 큰 도전 과제입니다.

이런 환경의 변화 때문에 오라클은 ‘클라우드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겸 CTO는 연일 “타도 AWS”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클라우드는 지금까지 오라클이 해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비즈니스입니다. 기존에는 소수 엔터프라이즈의 CIO나 전산팀장을 상대했지만 클라우드는 불특정 다수의 개발자를 상대하는 비즈니스입니다. 기존에는 특정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했다면, 클라우드는 누구나 참여해서 스스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하는 비즈니스입니다.

같은 IT산업이지만, 비즈니스 방식이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IBM, HP, 오라클과 같은 전통의 엔터프라이즈 IT기업들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쓴 맛을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라클이 ‘개발자 컨퍼런스’를 열고, 김형래 한국오라클 대표가 빨간 T셔츠를 입고 등장한 것은 이런 변화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비즈니스 맨의 옷차림 vs 개발자의 옷차림

오라클은 지금까지 많은 행사를 했지만 그 대상은 주로 ‘고객’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객 행사’와 ‘개발자 행사’는 많이 다릅니다. 고객 행사는 ‘우리 제품을 사줄 사람을 대상으로 우리 기술과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개발자 컨퍼런스는 ‘개발자 생태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리’입니다.

오라클의 기존 비즈니스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바텀-업(Bottom-Up)으로 변해야 합니다.

오라클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고객 행사’가 아닌 ‘개발자 행사’를 개최한 이유이자, 김형래 한국오라클 대표가 비즈니스맨의 옷차림이 아닌 개발자의 옷차림을 한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