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8에 비친 삼성전자의 고민

삼성전자가 23일 (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갤럭시 노트8을 발표했다. 지난해 가장 큰 관심과 기대 속에 등장했던 갤럭시 노트7이 불꽃처럼 순식간에 사그라진 뒤로 브랜드의 존재 자체가 고민되기도 했지만 삼성전자는 갤럭시 S8을 성공시켰고, 이에 힘입어 다시 새로운 갤럭시 노트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 제품 소개보다 감정 추스르기가 우선

지난해 갤럭시 노트7의 폭발 이후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부쩍 소심해진 모습이다. 올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키노트에서도 가전 제품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배터리 폭발에 대한 사과가 먼저 있었고, 갤럭시 노트8의 발표 역시 갤럭시 노트7로 인해 실망한 소비자들과 팬들의 응원 메시지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 미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성전자가 시장에 깔린 불안감과 불편함을 한국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것이다.

전반적으로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의 팬들로부터 갤럭시 노트8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영상에서 보이듯 팬들의 응원이 내부 분위기와 제품 개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던 지난 해 말 상황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물론 배터리 보강도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 같지 않다. 삼성전자가 그 동안 쌓아 놓은 갤럭시 브랜드의 역할이 드러나는 듯하다. 물론 가장 큰 응원이 이뤄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제품을 선보이는 ‘글로벌 기업’의 면모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 다른 듯 닮은 디자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 노트7로 만들려던 그림을 올해 다시 그려내고 있다. 한 해에 발표되는 갤럭시 노트와 갤럭시S를 같은 세대로 묶고, 각각 상반기와 하반기를 이끄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갤럭시 노트5 이전까지 삼성전자는 두 브랜드를 분리했다. 하지만 갤럭시 S7과 갤럭시 노트7부터 삼성전자는 브랜드의 디자인 언어나 기술적인 부분을 통일하고자 했다. 두 제품이 완전히 드라다기보다, ‘갤럭시’라는 브랜드의 연속성을 갖는 거이다. 이 때문에 갤럭시 노트6를 건너뛰는 큰 결정을 내렸지만 지난해 시장에 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브랜드 정리 부분이 판매 중단보다 삼성전자에게 말 못할 아픈 손가락이었을 듯 하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한 마디로 갤럭시 노트8은 갤럭시 S8과 매우 닮았다. 정확히는 갤럭시 S8+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의 변화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급격한 디자인 변화가 쉽지 않은 요즘, 세대별로 디자인의 큼직한 분위기를 맞추는 것은 여러 산업에서 흔히 일어나는 하나의 흐름이기도 하다. 게다가 갤럭시 S8은 출시 반 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빼어난 스마트폰 디자인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화면은 6.3인치다. 갤럭시 S8+의 6.2인치보다 약간 크다. 기존 갤럭시 노트 시리즈가 이끌던 5.7인치에 비해서는 많이 커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 면적은 비교해봐야 하지만 기존 16:9 비율의 대각선 길이 5.7인치 화면과 18.5:9 비율의 대각선 길이 6.3인치는 기준이 전혀 다르다. 5.7대 6.3으로 0.5인치 늘어났다고 정량화해서 설명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갤럭시 노트의 상징인 커다란 화면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화면이 꺾이는 부분도 갤럭시 S8+와 달리 더 바깥쪽에서 급격히 휘는 설계여서 실제로 쓸 수 있는 화면 면적은 넓어졌다. 이 때문에 양쪽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아 손에 잡히는 느낌도 좋다는 평이 많이 눈에 띈다.

● 갤럭시 노트와 S펜의 의미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의미는 화면 크기와 펜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화면 크기는 이제 상대적으로 의미가 줄어들었고, 여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확연히 구분지을 수 있는 요소는 S펜에 있다. 하드웨어적인 펜의 진화는 지난해 4096 단계의 필압을 인식하는 갤럭시 노트7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올해는 큰 변화는 없다. 삼성전자도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의미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라이브 메시지다. 펜으로 그리는 이미지가 그대로 GIF 형태로 저장되는 식이다. 선이 그어지는 과정까지 담겨서 그대로 메신저를 타고 넘어가는 기능이다. 동영상을 캡처하는 기능도 있다. 펜으로 원하는 영역을 지정하면 그 부분이 GIF 파일로 만들어진다. 이른바 ‘움짤’을 만드는 요즘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그 밖에 빈 화면에 메모를 한다거나 이미지에 마크업을 더하고, 마우스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기능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펜에 우리가 PC에서 쓰던 입력 장치 경험을 더하고, 연필을 대신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한 S펜에도 이제 성숙기가 다가온 듯하다. 여전히 S펜은 가장 진보된 스마트폰의 펜이다. 하지만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데에는 부담이 따르게 마련이다. 새로움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 스마트폰에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S펜에서 나타난다. 무엇보다 절치부심해서 만든 갤럭시 노트8이기에 삼성의 고민이 S펜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다.

● 더 어려워진 하드웨어의 진화, 그 틈새

갤럭시 노트8의 기본 골격은 갤럭시 S8과 비슷하다. 펜을 제외한 소프트웨어 경험은 당연히 비슷하다. 홍채 인식이나 사라진 물리 홈 버튼, 뒤로 자리를 옮긴 지문 인식 센서 등도 그대로다. 하드웨어에 가장 큰 변화는 듀얼 카메라다. 어떻게 보면 삼성이 한 발 늦게 시작했고, 이미 대중화된 기술이기도 하다. 그 동안 삼성이 듀얼 카메라를 미뤄 온 것은 의외지만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갤럭시 노트8의 듀얼 카메라는 광각 렌즈의 역할을 맡는다. LG전자의 듀얼 렌즈와 비슷하다. 애플은 아이폰7플러스에 망원 렌즈를 넣었는데 삼성전자는 광각을 골랐다. 클로즈업 사진보다 널찍한 풍경을 찍거나 여러 사람이 모인 사진을 찍는 빈도가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듀얼 카메라를 늦게 시작했지만 차별점으로 두 개 카메라 모듈 모두에 광학식 손 떨림 방지 시스템을 넣었고, 두 가지 화각을 동시에 촬영하는 기능도 들어갔다. 아이폰7플러스에서 선보인 심도 표현도 더해졌다. 렌즈 밝기는 f/1.7로 곧 공개될 LG전자의 V30에 들어가는 f/1.6 카메라와 비교되긴 하는데,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조리개값 0.1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근래 갤럭시 발표들과 비슷하게 프로세서와 관련된 발표는 따로 없다. 사실상 플래그십 스마트폰에서 프로세서에 대한 차이는 이제 큰 차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6GB 메모리다. 이제 안드로이드 역시 64비트 환경으로 넘어갔고, 4GB 이상의 메모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삼성이 발 빠르게 메모리 용량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메모리 가격이 치솟았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메모리는 많을수록 좋고, 여러 가지 앱이 더 매끄럽게 작동할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전반적으로 갤럭시 노트8은 삼성전자의 고민이 많이 엿보이는 제품이다. 이제 안드로이드 기기는 나쁜 것을 골라내기 어려울 정도로 상향 평준화됐고, 제조사가 직접 손 봐서 차별화를 이끌던 기능들은 구글이 안드로이드의 기본 기능으로 넣고 있다. ‘해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이야기가 제품 곳곳에서 들리는 것 같다.

윈도우 PC와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두고 제조사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초기에는 운영체제의 튜닝과 소프트웨어로 불완전한 요소들을 해결해내는 게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제조사의 역량을 소프트웨어로, 운영체제로 드러내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디자인과 소재의 고급화, 품질 관리 등이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소비하는 식의 시장이 열리고 있다. 멀리 볼 게 아니라 바로 PC 시장의 이야기다. 어쨌든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를 기다려 온 팬들 앞에 2년 만에 성공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았고,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는 하드웨어를 만들어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기자>hs.choi@byline.network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