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 첫날 키노트에 ‘윈도우’는 왜 없을까

2년만에 빌드2017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 컨퍼런스로, 1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가 여는 행사 중에가 가장 크고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근래 이 행사가 이전보다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새로운 제품들보다도 회사의 변화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빌드 키노트 현장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를 바라보던, 또 이 회사가 추구하던 비즈니스와 전혀 다른 메시지를 꺼내 놓았기 때문이지요. CEO가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고, 윈도우10을 조심스럽게 내놓던 시기였던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충격은 더 클 겁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꺼내 놓았고, 그 서비스의 중심은 모두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클라우드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라는 가치를 윈도우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 컴퓨팅에 비춰보고 있었는데, MS는 완전히 환골탈태를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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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이미지가 MS의 변화를 설명하는 열쇠입니다.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다양한 기기와 인공지능, 그리고 서버 중심에서 벗어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지난해에도 빌드는 열렸습니다. 지난해 빌드는 챗봇과 서비스 패브릭 등 그 전 해에 내놓았던 가치관들을 다져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해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년 전 꺼내 놓은 거대한 그림을 계속해서 만들어 왔고, 이제는 그 그림의 새로운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첫날 키노트는 2년 전처럼 충격적이라거나 환호할 만한 순간을 그리 많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키노트를 마치고 난 뒤에 잔잔하게 오는 변화의 메시지는 2년 전의 그것 못지 않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CEO의 발표는 ‘뭘 새로 꺼내 놨는지’에 대한 문제보다 ‘왜 꺼내놨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었습니다. 그는 제품이 아니라 기업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것 같고, 그 철학을 개발자들과, 또 이용자와 팬들과 나누고자 했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던 부분도 대부분 제품보다도 MS가 왜 클라우드를 확대하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지에 대해 기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손을 심하게 떠는 장애를 갖고 있는 이에게 으로 곧게 이름을 쓸 수 있도록 손 떨림을 잡아주는 밴드를 만들어 준 이야기 같은 부분입니다.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에 대한 궁금함보다도 기술이 가야 할 방향성은 결국 사람들이 더 나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empowering) 데에 초점이 맞춰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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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기술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는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행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윈도우는?’이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네, 첫날 키노트에 윈도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윈도우10이 5억 대의 기기에 깔렸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2년 빌드를 통해 2018년까지 10억대의 기기에 윈도우10을 배포하겠다고 했는데, PC 외에 임베디드 기기나 X박스 등의 기기를 통해 윈도우10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기인인 테리 마이어슨이나 조 벨포어 부사장은 아예 무대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내일 무대에 올라 윈도우10 플랫폼과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을 듯 합니다. 하지만 첫날은 윈도우도, 홀로렌즈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클라우드, 그리고 그 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들에 인공지능이 접목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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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키노트는 윈도우보다 맥과 리눅스, 안드로이드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MS에게 이 운영체제들은 이제 또 다른 시장입니다.

심지어 멀티 디바이스를 언급하며 맥에서 모바일 앱을 비롯해 애저, 유니티, 웹, 닷넷 코어 등을 개발할 수 있는 비주얼 스튜디오 2017을 발표했습니다. SQL서버 2017 역시 기존 윈도우 서버를 벗어나 리눅스와 도커로 확대됐고, MySQL과 PostgreSQL은 아예 애저의 서비스로 올려버렸습니다. 애저 스택을 시연하는 장면에서는 맥과 크롬 브라우저를 이용해 대시보드에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관심사는 더 이상 윈도우에 머무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2015년 빌드에서도 느꼈고, 마이크로소프트에 관심이 있다면 최근의 움직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5년 쯤 전에 클라우드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게 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윈도우8로 PC에서 자존심을 구겼고, 안드로이드와 iOS로 윈도우폰이 위태롭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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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L서버 역시 클라우드를 이용해 데이터베이스 보관 개념 자체를 바꿉니다. 뭔가 MS의 제품에 애저(Azure)가 붙으면 전혀 다른 개념이 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 변화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윈도우10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아오기 시작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받아들이는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클라우드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제품은 바로 오피스365입니다. 오피스365는 어떻게 보면 오피스2016에 원드라이브를 더한 구독형 서비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오피스2016과 오피스365는 전혀 다른 제품입니다.

이번 키노트에서도 해리 셤 리서치 수석 부사장은 “오피스365는 AI의 결합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파워포인트는 머신러닝을 더해 다국어 번역 서비스를 갖췄고, 엑셀은 데이터 분석 솔루션으로 확장됐습니다. 이 외에 최근 새로 추가된 ‘그래프’는 업무 습관을 분석해 최적의 업무 효율성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이 더해지면서 오피스는 ‘제품’에서 ‘서비스’가 됐습니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든 제품에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을 접목해 서비스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인텔리전트 클라우드’와 ‘인텔리전트 엣지’입니다. 기존에 클라우드와 모바일을 강조했던 것은 플랫폼 관점의 변화를 강조했던 부분이 큽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든, 어떤 환경에서든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직접적으로 모든 서비스를 인공지능이 바탕에 깔린 클라우드 환경으로 전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서비스들은 개발자와 이용자들과 만나는 접점, 즉 엣지(edge)가 되는 셈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더 이상 ‘제품’은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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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나, 팀즈, 아웃룩이 하나로 묶이는 경험이 제시됐습니다.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입니다.

그러다 보니 윈도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첫날 키노트가 어렵고 재미 없을 수도 있습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이나 관심도와 달리 쉽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다도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회사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운영체제가 하나의 클라이언트 환경이라고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큰 경쟁사는 맥과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이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구글도 빠질 수 없지요. 하지만 이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들을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몇 년 사이에 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맥용 개발도구를 만들고, 안드로이드와 iOS용 오피스365를 내놓았습니다. 윈도우 서버의 자존심이었던 SQL서버도 2017 버전과 함께 리눅스용과 아예 도커 컨테이너로 확장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직접 클라우드에 접속해 서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클라우드 쉘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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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클라우드, 클라우드… MS의 중심은 확실히 애저로 옮겨갑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윈도우가 없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토록 미워하던 리눅스를 끌어안고, 회사가 흔들릴 정도로 고민거리였던 안드로이드와 iOS를 활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이 제품들은 경쟁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비스를 최적화해서 돌릴 수 있는 시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오피스 임원이 애플의 신제품 무대에 오르고, 구글I/O에 등장하는 게 단순한 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사이에 어느새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아마존이나 구글, IBM, 오라클 등과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차별화하는 요소로 인공지능과 멀티 플랫폼을 꺼내놓은 것입니다.

윈도우95가 나올 때를 잠깐 돌아볼까요. 당시 뉴스에는 윈도우95의 원가가 3달러인데, 이를 100달러 넘게 판매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돈을 쓸어담는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부를 인수할 때는 오피스의 분기 매출액 정도로 회사 하나를 샀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제품을 파는 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 사업이었고, 판매량이나 점유율은 곧 회사의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에 대해 탄탄하게 준비를 마쳤고, 이제는 ‘어떻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할까에 대한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그 변화가 당장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는 동안 사이에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기반 서비스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모든 서비스에서 인공지능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를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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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접점도 좀 더 쉬워지고 있습니다. MS는 이제 ‘대중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를 포기한다거나 내려놓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서비스를 윈도우 안에 가두지 않는 게 더 낫다는 답을 얻었고, 그 결과물로 클라우드가 쓰인 것이지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로 성장했지만 앞으로는 ‘컴퓨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일 열릴 빌드 둘째날 키노트에서는 윈도우10과 가상현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 겁니다. 한결 부담을 내려놓은 윈도우의 변화도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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