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창업가들이 얻은 결론, ‘기술보다 고객이 먼저’
“저희는 딥테크 스타트업이지 스타트업 딥테크가 아니잖아요. 결국 기술을 하는 스타트업이고, 스타트업이면 고객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김중호 아이디어오션 대표는 29일 서울 마포구 디캠프 마포에서 열린 ‘디캠프 디데이’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기술을 앞세우는 회사이기 전에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 스타트업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날 함께 무대에 오른 다른 딥테크 창업가들도 사업을 하며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번 디데이는 디캠프 배치 4기 딥테크 창업가 7명이 성장 과정과 사업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시장 검증과 고객 확보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창업가들은 기술이 뛰어나다는 점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고객과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디어오션은 AI로 기계 설계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메테우스’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CES 2024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9월 메테우스 오픈 베타를 출시했다. 김 대표는 대기업 중심의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을 공략하던 전략에서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B2C 영역까지 넓히는 방향으로 사업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고객을 만나 요구 사항과 불편을 들었다. 그러다 새 기계를 설계할 때 소프트웨어를 한 번 쓰고 마는 고객과, 설계 업무를 계속 맡으며 꾸준히 쓰는 고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대기업뿐 아니라 고객사의 요청을 받아 기계 설계를 꾸준히 맡는 협력사 등으로 고객층을 넓혔다. 그는 “좋은 기술을 만들어주면 나중에 누군가 쓰겠지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고객을 더 많이 만나보고 상품을 정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용 전기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는 코스모비도 고객을 만나면서 제품 개발 방향을 바꿨다. 처음에는 작은 큐브위성에 들어가는 추력기를 개발했지만, 고객을 만나 수요를 확인하면서 100~300kg급 소형 위성에 필요한 추력기로 개발 방향을 조정했다.
박동하 코스모비 대표는 “고객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실제로 더 많이 올라가고 전기 추력기가 더 필요한 위성은 큐브위성보다 조금 더 큰 소형 위성이었다”고 말했다. 세션에서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꾸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박 대표는 “고객의 요구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 역시 “잘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초음파 기술을 산업 공정에 적용하는 퍼스트랩은 고객에게 기술력을 인정받고도 장비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겪었다. 장비가 국내 단가보다 비싼 가격대에 형성돼 있어 기술력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고객의 구매 결정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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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랩은 화장품 기업에 기술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예산과 제품 개발 절차까지 이해해야 했다. 원료 개발을 지원하고 기존 방식과의 차이를 수치로 입증하는 등 고객이 기술을 채택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함께 수행해야 실제 판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황 대표는 “제품과 고객 사이에 놓인 절차를 공급자가 줄여주지 않으면 고객이 먼저 다가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기술적 우위를 앞세우기보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구매와 채택에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파로보틱스는 고객의 도입 여건에 맞춰 판매 방식을 바꿨다. 테파로보틱스는 자체 VLA 모델을 개발하는 피지컬 AI 기업이다. 당초 소프트웨어만 판매하려 했지만, 고객이 이를 공장에 적용했을 때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지 떠올리기 어려워하자 요청에 따라 표준 하드웨어도 함께 공급하기 시작했다.
시장 진입 계획도 달라졌다. 테파로보틱스는 실패에 따른 책임이 큰 완성차 산업에 나중에 진입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해당 업계에서 수요가 가장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정혁 테파로보틱스 대표는 미국 완성차 업체로부터 도입 요청을 받았을 당시,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생산 라인에 솔루션을 도입하려면 이 시기에 맞춰야 했다. 박 대표는 고객사 담당자도 새로운 기술을 양산 라인에 적용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자사 역시 도전해야 한다고 판단해 완성차 산업 도입 시기를 앞당겼다.
우주에서 제약 연구와 생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스페이스린텍도 연구 경험만으로 사업을 풀어갈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는 창업 초기 투자자들로부터 우주도 어려운데 제약까지 결합하면 더 어렵다는 반응을 들었으며, 2년간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연구자로서 생각했던 기술의 가치와 시장이 바라보는 가치가 달랐다고 돌아봤다. 이후 우주 실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시장과 고객이 요구하는 가치에 맞춰 사업을 구체화해왔다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에서 출발했더라도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오민선 기자> omsoms94@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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