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바이라인네트워크)

“지금이야말로 공공SW사업 대가 문제 해결할 때”

전세계 거브테크(GovTech)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6100억달러 규모(약 8845조)다. 반도체 시장과 비슷한 규모다. 2034년에는 한화 2경590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거브테크 시장 상위권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은 없다. 소프트웨어(SW) 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공공 SW 사업이 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과업 변경에 따른 미지급 문제는 공공 SW 사업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에 따른 결과로, 인공지능(AI) 정부로 도약하기 위해 근본적인 시스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16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공공 SW 사업 적정대가 현실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예산 부족과 과업 변경에 따른 미지급금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 SW 컨트롤 타워 정립 ▲유연한 계약 방식 도입 ▲국가계약법 등 현행법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숙경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공공SW사업 시스템 문제의 핵심 원인을 4가지 ▲국가계약법 등 현행법이 과업변경을 죄악시하는 폭포수 모델 채택 ▲비전문적인 발주기관 ▲쪼개진 거버넌스로 인한 총체적 리더십 부재 ▲혁신 투자 어려운 예산 제도로 꼽았다.

먼저 김숙경 교수는 “국가계약법상 소프트웨어 사업은 건축 공사 방식인 폭포수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완벽한 설계도를 발주 기관이 먼저 그려야 하고 과업 변경을 많이 하면 발주기관 잘못이 된다”고 짚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중간 수정이나 실험 과정을 필요로 해 과업 변경이 잦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업 변경에 따른 감사 책임은 발주기관이 떠안는다.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도를 그릴 수 없는 구조에서 중간에 수정하기 어려운 폭포수 모델을 사용하니, 소프트웨어 산업의 본질적 특성이 제도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전문성 부족이다. 김숙경 교수는 “완벽한 RFP(제안요청서),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기업이 만든 것도 완벽하지 않은데, 하물며 발주 기관 담당자 한두 명이 담당하는 구조에서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발주기관의 전문성은 상당히 낮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 각 기관의 정보화책임자(CIO)는 전문직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사업 관리가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순환 보직 중 하나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담당자가 바뀌어 전문성이 떨어지고, 사업 수행자 역시 어려움을 겪는다.

다음으로는 공공 SW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거버넌스 체계는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로 나뉘어 있다. 기획재정부는 주로 예산에, 과기정통부는 SW 산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행안부는 전자정부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업의 기획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이끄는 리더십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더 나아가 가장 큰 문제로 김 교수는 예산 및 관리 체계를 꼽았다. 김 교수는 “예산이 인플레이션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정체된 지 수년째로 연에 1~2% 성장하고 있다”며 “AI든 클라우드든 모바일이든, 신규 사업에 수요가 굉장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지보수 예산은 70%을 차지해 신규 투자는 위축되고 혁신 없는 경상비 취급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재부의 세세부 사업 단위까지 예산을 확정하는 과도한 통제 역시 문제다. 같은 부처 내에서도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율하기 어려워 부처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확정된 공공SW구축 사업금액은 전년 대비 1.1% 증가한 4조4233억원이다. 그리고 시스템 운영 및 유지관리 사업이 건 수로는 6344건(83.6%), 금액으로는 3조1090억원(70.3%)를 차지한다. 여기서 SW 개발 사업 수는 10.4%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새롭게 구축하거나 개발하는 사업자 수는 적다는 뜻이다. 대부분 유지 관리를 하는 기업들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과업 변경 시 적정대가 지급이 어려운 이유는 과업 변경에 따른 감사 부담, 추가 대금 청구에 있어서 사업자와 발주기관 간 분쟁, 유명무실한 과업심의위원회, 예산 구조 등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미 검증된 글로벌 표준 사례에서 해법을 찾았다. 해결책은 ▲거버넌스 재정립 ▲계약제도 혁신 ▲국가계약법 개정이다.

세부적으로는 흩어진 권한을 모아서 강력한 공공 SW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과장급인 부처 CIO를 실장에서 차관급으로 직위를 격상해야 한다고 봤다. 기재부의 세부 통제 방식에서 총액 블록 그랜트 방식으로 전환해 부처 주도로 노후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전환이 필요하다. 또, 발주기관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커리어 패스를 설계 및 지원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계약제도의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채택한 제도의 장점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을 제안했다. EU는 변경 규칙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고, 계약금액의 10~15% 미만의 경미한 변경의 경우는 간소화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감사 부담을 없애고 법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우, 계약 모델 자체를 유연하게 설계했다. 대규모 사업을 기능별 작은 모듈로 분할하는 모듈러 계약이 그 예시다. 요구 사항을 작게 분할해 실패 위험을 최소화한다.

공공 SW 사업에서 개발과 운영 및 유지 관리가 분리된 구조로 인해 기업이 추가적인 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운영과 개발을 둘 다 잘한다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단절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에게 안정성을 준다는 측면과 공공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개발과 운영 주체를 동일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결국 이 모든 혁신을 위해서는 SW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국가계약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과업 변경을 계약금액 조정 사유로 법제화하고, 거기에 더해 공공 SW 사업에 특화된 계약 모델을 추가하고, 변경의 근거를 더 명확하게 한다”며 “데브옵스(DevOps)를 일상화하는 구축, 개발, 운영, 유지관리 형식의 장기계속계약을 정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6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공공 SW 사업 적정대가 현실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출처=바이라인네트워크)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현행법과 ‘총액 입찰’ 방식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성경빈 LG CNS 공공부문담당 담당은 “차세대 공공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기업인 LG CNS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사업 대가가 제대로 보상이 되지 않는다면 대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어도 중소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RFP를 구체화한 뒤, 발주처와 수행사가 서로 합의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으로 ▲발주 단계에서 FRP에 기술점수(FP) 세부내역이 모두 들어갈 것 ▲분석 단계 이후에는 발주처와 수행기관이 과업을 확정하는 심의위원회를 열 것 ▲확정 후 예산 및 과업 조정을 과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할 것 등을 제안했다.

신정호 아이티센 엔텍 대표는 “총액 입찰이 아닌 내역 입찰로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내역 입찰은 인프라, 소프트웨어 등 모든 내역을 RFP에 포함하고, 변경된 내역이 있다면 과업 변경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조기현 유엔파인 대표 역시 “SW 사업은 공사 계약과는 다른데, 공사 계약은 설계 변경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며 “총액 입찰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과업 변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법 개정과 추후 시행령 등으로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신우찬 국가보훈부 정보화담당관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계약 방법이 도급 계약만 있어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며 “여러가지 글로벌 스탠다드 계약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정리했다.

요구 사항을 명확히 하고 변동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업에 적합한 도급 계약은 예산과 사업 기간이 확정되는 방식이다. 변경 계약이 가능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다른 계약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시간과 자원이 확정되지 않는 계약 방식, 프로젝트를 여러 스프린트로 쪼개 계약하는 방식 등 유연한 계약 방식을 제안했다.

김도승 전북대학교 교수는 “AI 혁신에 있어서 민간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고 국가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 현장과 발주자 모두가 지금 어떻게 보면 피해자로 남아 있는 이런 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며 “너무 오래되고 해묵은 문제지만,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꺼내서 이야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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