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지만 안 하면 더 손해’…은행의 스테이블 코인 딜레마
국내 은행들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원스코) 발행 주체로 나서고 있지만, 발행을 맡더라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예치금 형태로 은행에 유입되더라도, 은행이 직접 고객 예금을 운용해 얻는 수익과 비교하면 수익률이 크게 낮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게다가 원스코는 발행만으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달스코)과 달리, 국내 수요에 한정돼 있어 발행 차익으로 얻는 수익(시뇨리지 효과)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시스템 안정성과 신뢰 확보를 위한 운영 부담도 여전해, 은행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 내부에서는 원스코 발행에 대한 회의론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수단으로서 화폐적 성격을 갖고 있어, 시스템이 실패하거나 신뢰를 잃으면 회복이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A 은행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는 초기 셋업과 운영 비용이 모두 수반되며,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하기는커녕 역마진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회계 기준 정비, 내부 모니터링 체계 구축, 추가 인력 채용 등 부담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은행 관계자들은 원스코의 실제 수요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초기에는 활용 가능성을 탐색하며 ‘어디에 쓸 수 있을까’에 집중했지만, 뚜렷한 수요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스코 발행 필요성은 강조되지만, 시장 수요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원스코가 등장했을 때 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B 은행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의 수요처를 억지로 찾기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접근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이 은행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수요가 없으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충분하다면 은행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시장은 스스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원스코 발행에 자발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정부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수익이 크지 않더라도, 발행에 참여하지 않으면 시장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현실적 부담도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단기 실적에 민감해 대규모 장비 구매나 시스템 설계 등 비용이 큰 사업은 여러 해에 걸쳐 나눠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스테이블 코인 사업은 후순위로 밀리기 쉽고, 여러 은행이 참여하면 책임이 분산돼 어느 한 곳이 서둘러 추진할 유인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발행을 권장하더라도 은행 입장에서는 급히 움직일 이유가 없으며, 실제로는 형식적으로 ‘하는 척’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핀테크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은행과 정부의 태도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한편, 원스코 발행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은행 중심으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은행만으로는 혁신이 어렵기 때문에 핀테크 등 혁신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원화 스테이블코인, 금융혁신의 미래를 열다’ 토론회에서 “은행이 원스코를 발행하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기득권 영역에 머물러 새로운 지급 결제 수단이 시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달스코나 해외 민간 스테이블 코인처럼 혁신적이고 편리한 대체 수단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금융 통제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