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돈이 된다” 제주에서 만난 여섯 스타트업

[컴업 인 제주] 자연을 담는다. 제주의 강력한 자원은 역시 자연이다. 그 자연을 보러 제주로 몰려오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연과 사람을 무기로 새로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여섯 스타트업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제주에서 개최한 ‘컴업 인 제주’의 피칭 세션 무대에 올랐다.

[관련기사: 제주가 스타트업의 ‘포스트 대만’이 될 수 있을까]

더사운드벙커

소리를 모은다. AI가 모든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온전하게 구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예컨대 AI가 바람의 소리를 흉내 낼 순 있지만, 바람이 제주 솔숲을 스쳐 가거나 순천만 갈대밭을 훑으며 내는 그 순간의 소리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그 소리들은 그 찰나, 그 현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영원하지 않아요. 소리 풍경이 오염되고 사라지고 있어요. 그걸 인지한 10년 전부터 사운드스케이프(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의 모든 소리)를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순천만, 고창, 여주, 양평, 백령도 등 전국을 다니면서 소리의 저작권을 모으고 있습니다.“

더사운드벙커는 소리를 쌓는다(아카이빙). 백록담의 분화구에서 일박을 하며 모은 소리, 출입이 제한된 물찻오름의 소리를 녹음했다. 소리의 자산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법을 알려주는 체험 프로그램 ‘사운드 워킹’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일곱 곳의 지자체가 더사운드벙커와 소리를 들으며 걷는 코스를 개발했다. 이들과 함께 걷던 또 다른 이들이 ‘소리 지도사’가 되어 지역을 걷고 소리를 수집한다.

소리가 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강조한다. 더사운드벙커의 현재 기업가치는 30억원. 연 매출 3억3000만원에 순이익 8000만원을 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정부와 기업에 제공하는 소리 상품과 전시/체험 공간, 사운드스케이프 체험 오디오북 음원 판매, 소리 기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더 큰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용원 더 사운드벙커 대표는 “제주가 가진 콘텐츠를 앞으로도 해나갈 예정”이라면서도 “일본으로 진출하는 등 세계의 가치 있는 소리를 모아 IP 사업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소리를 들어보세요: https://soundtour.net/soundbunker#/map999196

지난 2020년, 더사운드벙커가 제주시 알작지 해변에서 녹음한 고요한 밤의 파도 소리. 파도가 몽돌에 부딪혀서 내는 이 소리는, 지금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해안가 도로가 파도에 침식되어 잦은 공사가 이뤄졌고, 그에 따라 알작지 해변의 특징인 몽돌이 유실되고 있다(더사운드벙커 홈페이지 해설 참조). AI가 수많은 소리를 파도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늦은밤, 파도가 몽돌에 부딪히고, 파도에 부딪힌 몽돌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를 만들어내긴 어렵다. 이 지역, 이 순간에만 만들어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씬오브제주

출처=씬오브제주

색을 물들인다. 제주의 풍경을 담은 자연의 색을 찾아 옷에 담는다. 씬오브제주는 “하아이완 셔츠는 있는데 왜 제주셔츠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제주의 감옷에서 영감을 얻어 창업한 팀이다. 강보람 씬오브제주 대표는 “천연 염색은 물이 잘 빠진다거나 엄마 스카프, 어르신들이 입는 옷, 찜질방 옷 같다는 편견이 있다”면서 “그런 편견에서 벗어날, 자연 염색의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감물이 세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날 강보람 대표는 직접 감물을 들인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위에 걸친, 스트라이프 무늬를 낸 염료가 감이다. 강 대표는 “자연 염색이지만 훨씬 현대적이고 모던하며 웨어러블하게 (패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브랜드를 론칭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세 번의 패션쇼를 열었는데, 내년에는 ‘제주 친환경 패션 위크’를 열 계획도 세워놓았다.

감물만 염색의 재료로 쓰는 것은 아니다. 강 대표가 입은 원피스에는 제주에만 자생하는 ‘만수국아재비’가 쓰였다.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인데, 만수국보다는 꽃이 훨씬 작아 만수국아재비라 불린다. 제주 야생화의 다채로운 컬러를 옷에 써, 세상에 단 한 벌만 있는 독특한 옷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사업 아이템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우리 단 둘이 물들인 옷을 커플룩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제주 해남이 잡은 한치 먹물을 점성 있는 물감 형태로 만들어 냈는데, 타투 대신 옷에 원하는 드로잉을 해보는 재미도 씬오브제주가 제공한다.

제클린

천을 재활용한다. 제주의 자연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그만큼 숙박업도 활성화되어 있다. 호텔을 비롯한 숙박업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중에 이불과 타월 같은 천 제품이의 비중이 크다. 제주의 ‘제’, 깨끗하다는 뜻의 영단어 ‘클린’에서 사명을 따온 제클린은, 제주의 숙박업소에서 나오는 온갖 종류의 천을 수거한다. 제클린은 일신방직과 손잡고 소각될 운명의 폐기된 천들에서 새 실을 만들 수 있는 재생 원료를 뽑아낸다. 이 재생 원료는 재생 원사로, 재생 원단으로, 재생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 해 버려지는 베딩 제품의 양은 의외로 많다. 베딩 제품의 사용이나 세탁 과정에서 오염이 됐거나 파손, 마모, 얼룩이 생긴 제품은 곧 폐기 되기 때문이다. 국내 호텔 기준으로 연간 3225톤의 폐 베딩 제품이 나온다. 제클린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장에서 입다 버려지는 작업복이나 군복 등도 수거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섬유 재생 순환 사업’이다.

출처=제클린 홈페이지

제클린은 원래 제주도 내 중소형 숙박 사업자를 대상으로 O2O 세탁 서비스를 하다가, 숙박 시설에 고품질 호텔 베딩·타월 제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해 왔다. 최형지 제클린 부대표는 “호텔에서 버려지는 베딩 제품들이 재활용되거나 업사이클링 되는 것이 아니라 소각장에 들어가서 태워지거나 매립되는 것을 저희가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한 제품을 수거해 물리적 파쇄를 통해 실을 만드는 재생 원료를 생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클린은 섬유에서 시작해 섬유로 끝나는 ‘섬유 밸류체인’을 제주에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섬유 재활용 자체가 큰 사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지만, 환경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도 믿는다. 면화 1kg을 재활용해 만들면 물 2116L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를 1.73kg를 줄일 수 있다. 제클린은 재생 제품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한 이력 추적 시스템, 원료화에 따른 데이터를 축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동시 개발한다.

로컬리

현지인을 만난다. 올해 한국을 찾는 여행객의 수가 2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보다 20% 넘게 늘어난 숫자다. 그러나, 예상되는 관광 수입은 지난해보다 7조원이 줄어든 12조원이다. 더 많이 찾는데, 더 적게 버는 셈이다. 왜 그럴까. 손현근 로컬리 대표는 “한국에서 할 게 없어서”라는 걸 답으로 찾았다. 케이팝, 케이 드라마, 케이 애니메이션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으나, 막상 한국을 찾았을 때 ‘현지인 같은 경험’을 할 콘텐츠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일본어 하는 해녀와 함께 하는 물질 체험’ ‘현지인과 제주 오일장 장보기&집밥 만들기’ ‘제주 도민과 함께 하는 오름 등반 체험’ ‘제주 할머니와 함께 하는 몸국 만들기’ ‘제주 한라 산악회와 함께 하는 제주 막걸리 체험’

로컬리가 만들어낸 ‘현지인 같은 경험’ 콘텐츠다. 손현근 대표는 “유튜브를 보면 현지인과 교류하는 영상이 수백만 수천만 뷰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제는 더 이상 도쿄 타워, 에펠탑 (관광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 간의 연결, 진짜 현지 교류를 사람들이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로컬리

특히, 렌트카 없이는 다니기 어려워 ‘뚜벅이의 무덤’이라 불리는 제주에서, 외국인들이 뭘 할 수 있을지에 로컬리는 집중했다. 지난해 6월, 제주 현지인과 함께 하는 체험 서비스를 만들어 올 8월까지 약 3400만원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60여 명의 현지 호스트를 확보했고, SNS 팔로우 8만명을 모았다. 손 대표는 “그냥 관광 투어가 아니라 현지인의 일상, 그 속에서 만드는 경험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라면서 “단순한 로컬 체험 플랫폼이 아니라 세계 현지인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여행의 기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피터페터

반려동물과 여행한다. 나만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살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함께 좋은 풍경을 보려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반려동물을 많이 잃어버린다. 박준호 피터페터 대표는 “제주의 반려동물 관광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만큼 유기 또는 유실 문제도 심각해져 제주가 인구 대비 유기동물 발생률 전국 1위라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출처=피터페터

먼저 강아지다. 반려견 유기/유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터페터가 고안한 방식은 ‘DNA 안심 등록’이다. 내장칩은 정서적 부담이, 외장칩은 쉽게 잃어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감안했다. 제주공항이나 항만, 숙소 등에서 ‘DNA 안심 키트’를 받은 후, 보호자가 반려견의 구강 상피 세포를 면봉으로 채취해 동봉된 봉투로 제출하고, QR코드로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드는 시간은 3분 안팎인데 박준호 대표는 “국제동물 유전학회의 표준에 따르는 99.9%의 정확도를 보이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피터페터는 이 기술을 ‘단순한 바이오 기술이 아닌 관광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여행객이 혹시나 반려견을 제주에서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제주에서는 꼭 찾아준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유기동물 관리 비용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관공지, 펫 세이프티’라는 선진적인 지역 브랜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박준호 대표는 강조했다. 피터페터는 이 기술을 일본이나 싱가포르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관광 수요가 높은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잡고 있다.

잇더컴퍼니

김봉근 잇더컴퍼니 대표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함께 먹는다. ‘먹는 것’에 대한 요구가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이다. 요리는 쉽고 간편해야 하고, 건강에 기여해야 하며, 콘텐츠도 있어야 한다. 사회적 기여가 있으면 더더욱 좋다. 잇더컴퍼니는 “먹거리에 스토리와 명불을 더한 콘텐츠 푸드를 만드는 것”으로 올해 컴업 인 제주에서 최우수 스타트업 상을 받았다.

회사는 처음엔 애들 먹이다 본인은 굶어 죽게 생긴 영유아 부모를 겨냥, ‘맘마레시피’라는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육아맘을 위한 간식 큐레이션이다. ‘육아맘의 식욕자존감’을 높인다는 스토리텔링이 통했고, ‘콘텐츠 푸드’의 가능성을 알았다.

최근 집중하는 영역은 ‘한국의 밥과 국’이다. 밥솥(재사용 가능)이 포함된 간편식 솥밥 ‘끼니 키트’를 만든다. 쌀과 나물, 양념을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 맞춤형으로 먹을 수 있는 밀키트를 구성했다. ‘상온 유통·초간단’이란 마케팅 문구가 붙는다.

김봉근 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로컬 푸드는 ‘식탁을 벗어난 식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로컬 푸드를 먹으로 이 지역을 찾지 않아도, 로컬 푸드가 그 사람들을 찾아가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김 대표는 “로컬 푸드가 제품화되고, 관광 상품이 되어 고객을 찾아간다면, (먹어본 이들이) 로컬 푸드를 이유로 오히려 관광지를 방문할 수 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관광 콘텐츠로서의 로컬 푸드로, 로컬의 콘텐츠를 담은 스토리 있는 제품을 계속해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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