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연구개발 지원, 중기부는 어떻게 바꾸려 하나 (feat. 한성숙)
정부도 투자를 한다. 미래 먹거리가 될 만한 기술이나 사업의 연구개발(R&D)에 지원을 하면, 이 돈을 받은 기업들은 소정의 목표달성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 이 과정에서 중소·벤처·스타트업이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며, 운이 좋으면 새로운 데다 사업성이 큰 기술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두에게 막힘없는 투자를 하면 좋겠지만, 예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부 부처는 가능하면 돈 쓴 만큼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누구를 지원해야 할 지 심사를 하고, 기업의 R&D 수준과 단계에 따른 투자 방안을 마련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정부 정책을 쉽게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초, 국가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중소·벤처 기업들은 큰 혼란을 빚었다. [관련기사: 팁스는 왜 자꾸 논란이 되나] 정부가 주기로 약속한 R&D 예산을 제때 주지 않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줄여버리는 바람에 그에 맞춰 기업 운영 계획을 세웠던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생겨났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것도 우려의 한 부분이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앞으로 정부가 여러 좋은 정책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신뢰가 없어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나라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워질 것은 분명해서다. 당시 사태는 지원 받는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도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따라서, 이번 정부에서는 국가 R&D 예산을 늘리는 것에 더해, 그 예산을 어떻게 집행할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고, 실질적으로 중소·벤처에 도움이 되는 지원 방식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아래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발표한 ‘한국 중소벤처기업 R&D 지원 방식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 방안’도 그 일환이다.
한 장관이 지적한 그간 R&D 지원 방식의 문제점과 중기부가 시행하려는 개선방안을 정리해봤다.
기업이 제시한 목표, 정말 달성 가능한가: R&D 목표 설정 어려움, 지원 대상 선정 기준 모호함 푼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같은 경우는 정부나 전문가가 끌어줘야 할 영역이 있어 보인다. 여기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심사는, 중소기업이 제시한 목표에 기반해 이뤄진다. 이게 효과 있으려면, “기업이 스스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정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자기 기업의 현실을 평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꽤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목표 자체가 실제로 도달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지원 역시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 어렵기도 하다. 정부나 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한 이유다.
따라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이 스스로 적절한 R&D 목표를 설정하기 어려운 경우, 정부나 전문가들이 R&D 방향을 제시하거나 끌어주는 역할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심사의 방식과 전문성도 문제로 봤다. 한 장관은 “(전날 현장 간담회에서) 스타트업으로부터 들었는데, 심사에서 탈락한 기술이 후에 CES 혁신상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면서 “스타트업의 경우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미래 기술을 개발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심사 방식이나 심사위원들의 전문성이 이러한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다”고 짚었다.
이는 현장 전문가가 심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나올 수 있는 문제다. 스타트업이 내놓은 기술이 ‘세상에 없던 것’이라면, 이를 심사할 전문가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서다. 즉, ‘전례 없는 기술에 대한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는데, 중기부는 “스타트업의 경우 특히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R&D 집단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심사 기준과 현장 전문가 위주의 심사위원 구성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좋은 기술이 있더라도 돈이 돼야: 공공 기술과 시장 수요 간의 간극을 줄여라
출연연구기관 등에서 개발한 공공 기술을 중소기업이 당장 시장에 내놓을 상품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기술적 간극이 크다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출연기관의 연구 기술 중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고 기술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의지를 한 장관이 보였다. 구체적으로는 공공 기술 거래 활성화와 통합 포털 구축을 언급했다. 한 장관은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거래할 수 있도록 기술 거래 통합 포탈을 더욱 활성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R&D 지원도 시장을 중심에 놓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당장 시장에서 팔리는 기술들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인데, 한 장관은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R&D 영역 및 기술 사업화, 지역 혁신 관련 부분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어렵게 개발한 기술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경우에 대해 지금까지 이를 돕는 지원이 미흡했다고도 봤다. 따라서 기술성과 시장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을 투입해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나 해외 인증 부분도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내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팁스(TIPS)와 같이 민간이 참여하는 R&D 지원을 발전시키고, 창업, 성장, 글로벌 단계별로 차등화된 지원 규칙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단은 쓰기 쉽고 알기 쉬어야: 어려운 정부 용어는 쉽게, 사업계획서는 간소하게
복잡하고 어려운 신청 과정과 사업 계획서 작성 부담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한 장관은 “R&D 지원 사업 신청 과정이 전반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면서 “정부 용어가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고,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1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요구하는 등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AI 활용을 통한 지원 시스템 고도화와 신청 과정 간소화를 약속했다. AI를 활용한 사전 평가 시스템인 K-탑(K-TOP)을 발전시켜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중소기업이 어려워하는 정부 용어를 단순화하고, 사업 계획서 작성 부담을 줄이는 등 신청 과정을 간소화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돈: 역대 최대 규모 R&D 예산 편성, 민간 협력 강화
올해 중소벤처기업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R&D 예산을 편성해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재차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자원 마련을 위해 민간과의 협업도 강조했다. 한 장관은 “앞으로 민간과 손잡고 시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중소기업의 미래로 보고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