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입법평가 여전히 과락…더 나빠져” 인기협 진단은?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인터넷산업규제 백서 발간
21대 국회, 492건 규제 쏟아냈으나 현실성·균형성 부족
“철학 없는 규제와 부정적 인식이 산업 위축시켜” 지적
“AI 혁신 기업 달릴 수 없게 보폭까지 정해선 안 돼”
“(인터넷산업 규제) 입법 평가를 매년 해왔는데, 좋아진 건 없습니다. 예전에도 과락 수준이었고, 올해는 25점대 점수가 나왔습니다. 10인의 전문가가 용어 정의, 체계 정당성, 과잉금지, 산업 이해도라든지 모든 항목에서 저조하게 보셨습니다. 저희가 볼 때 아쉬운 점이 너무 많습니다.”
23일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 회장<사진>은 서초구 인기협 대회의실에 마련한 ‘2024 인터넷산업규제 백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입법 평가 현황을 짚었다. 백서는 인터넷산업 현황, 전문가 인식조사, 주요 규제 동향, 제21대 국회 입법 경향 분석 등 총 4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백서에 따르면 21대 국회(2020년 6월~2024년 5월) 임기 동안 발의된 인터넷산업규제 관련 입법안은 총 492건에 달했다. 그러나 규제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강화되는 흐름과 달리, 법안의 내실은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발의된 법안 중 80% 이상이 임기만료로 폐기된 가운데 폐기된 법안(22.7점)이 통과된 법안(36.1점)보다 입법평가 점수에서 현저히 낮은 성적을 받았다.

21대 국회 전체 임기에 걸친 인터넷산업규제 입법평가 결과로는 100점 만점에 평균 25.3점으로 중하위 수준이다. 임기 후반부에 더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국외 입법 절차 참고해야
“GDPR(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 등 유럽의 여러 법안을 보면 수년에 걸쳐서 8개 위원회가 심층 토의를 계층별로 토론해서 합의된 부분을 또 상위 토론회에서 아젠다를 정제하는 식으로 갑니다. 어느 한 의원실에서 만드는 법이 아닙니다. 입법 절차를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평가지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1대 국회의 인터넷산업 규제법안은 산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율규제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고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행정편의주의적인 접근과 균형성 부족이 두드러진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임기 동안 22건 발의되었던 플랫폼법안 중 단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이 법안들은 입법평가에서도 체계정당성, 과잉금지, 산업이해 등 핵심 항목에서 현저히 낮은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플랫폼법(안) 평가 점수는 평균 15.5점으로 주요 5개 법률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체계정당성’(8.1점), ‘과잉금지’(8.7점), ‘산업이해’(9.6점), ‘자율규제 관련현황 반영’(9.8 점) 등 핵심 항목에서 10점 미만의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
임기 후반부, 법안 품질 더욱 떨어져
인기협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법안의 현실성과 균형성의 저하가 더욱 심해진다고 우려했다. 임기 전반부(2020년 6월~2022년 5월, 2년간)에 비해 후반부(2022년 6월~2024년 5월, 2년간)에 발의된 법안들은 특히 ‘산업 및 기술 이해도’ 측면에서 큰 폭으로 평가가 하락했다. 21대 국회 임기에 걸쳐 인터넷산업 관련 논의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음에도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산업 현실과 법안 내용 사이의 괴리는 더욱 심화됐음을 보여준다.

백서의 전문가 인식조사를 통해, 10인의 학계 전문가들은 국내 플랫폼 산업이 규제와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위축효과’를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전문가는 “플랫폼에 대한 철학과 목표가 없다 보니 규제 수단 설정에 혼란이 오고, 주체와 방향 없이 표류하는 것”이라 진단하였으며, 또 다른 전문가는 “현 시점 플랫폼 관련 규제는 플랫폼이 나쁘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규제는 당연히 업계를 크게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내수시장에 갇힌 한국 플랫폼 기업들의 글로벌 확장 한계도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국내 플랫폼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국내 시장에서의 고립이 심화되는 상황”이라고 국내 기업이 처한 현실을 짚었다.
“AI 규제, 의견 수렴 중…지켜봐 달라”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기본법 시행령 초안을 위한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박성호 회장은 “저희가 의견을 확정한 상태는 아니”라고 짚으면서, 지켜봐 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AI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위험한 거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이불 밖으로 나가면 다 위험하죠. 뭐가 위험하냐 물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길 밖으로 나갈 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보폭을 정해주면 안 되잖아요. 달리다가 넘어질 수도 있는데 벌써 이런저런 규칙이 시행되면 달릴 수가 없습니다. 조금 지켜볼 필요도 있다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습니다.”
“(AI 생성물 표시 의무화 관련) 우리가 지금 딥페이크(AI를 활용한 가짜 동영상) 때문에 AI 결과물에 표시하게 되는 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유럽도 논의가 시작된 것이지 AI 전체 결과물에 적용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그 적용 범위에 대해 예외나 분명하게 사전 적용 범위를 정해줄 것을 요청드릴 생각이고요. 관철이 된다면 사업 리스크는 좀 줄어드니까 의견이 한 곳으로 모아질 수도 있고, 관철이 안 된다면 유럽에서 하는 것을 보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국제 정세 품은 입법 평가 지표로 바꾼다
인기협은 지난 4년간 인터넷산업규제 기준을 유지했으나, 최근 국내외 상황이 급변하면서 변화를 줄 필요가 생겼다.
한승혜 인기협 디지털경제연구원 연구위원(리더)는 “국제 정세, 통상 압력 관련해서 그런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법안인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법안인지 그런 것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글로벌 입법 동향을 참고한 법안인지 평가 지표에 반영하려고 한다”며 “갈라파고스 규제가 나오지 않으려면 (국제 정세를) 참고해도 국내 실정에 맞게 참고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규제 마지노선이란? 되묻고 되물어서 필요하면 해야
‘규제의 마지노선을 어디까지 봐야 하나’라는 원론적 질문도 나왔다. 대중소 기업의 입장이 각각 다르고, 규제로 인해 어느 한쪽이 피해보는 상황을 최소화하려면 규제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정말 어려운 얘기입니다. 개인적 소신은 이 규제가 꼭 필요하냐라고 되묻고 되물어서 그건 필요하다라고 하면 규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숙고한다면 자연스럽게 규제의 마지노선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비자가 경쟁 구조를 만들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고요. 100% 완전 경쟁은 아니지만, 한국의 시장 건전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아니고요. 대부분 경쟁 중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