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구글코리아 전 대표가 만든 AI 스타트업 ‘스켈터랩스’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  리뷰를 연재합니다. 코너명은 ‘바스리’, <바이라인 스타트업 리뷰>의 줄임말입니다. 스타트업 관계자 분들과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대기업이 세상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어요. 구글과 아마존도 선택과 집중을 하죠. 대화 엔진과 초개인화 엔진에서 구글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공한 창업가, 구글 엔지니어 출신, 구글코리아 개발 총괄 대표로서 구글의 검색 서비스 변화를 이끈 인물.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꽤 성공한 이력인데, 조 대표는 다시 사표를 내고 밖으로 뛰쳐나와 창업했다. 이번에 꺼내든 카드는 ‘인공지능(AI)’이다. 스켈터랩스는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대화 엔진과 초개인화 엔진을 핵심 역량으로 삼는다.

스켈터랩스가 독특한 점은 ‘철저한 기술회사’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다섯 번째로 유니콘을 많이 보유한 나라다. 그런데 이 아홉 개의 유니콘은 모두 서비스나 플랫폼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기술에만 집중해 유니콘으로 성장한 곳은 아직 우리나라에 없다. 기술로만 승부를 보기엔 시장이 작거나, 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조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술에 집중할 때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생겨날 수 있다. 이유는 있다. 그 어떤 대단한 회사라도, 세상의 모든 문제를 모두 직접 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큰 회사들이 가려워할 곳을 긁어주는 기술을 그 어디보다 집중해 잘 풀어낸다면 시장은 당연히 열린다고 봤다. 특정 도메인에 구애받지 않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다양한 산업군으로 유연하게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스켈터랩스를 “한 마디로 AI 기술 회사”라고 정의하는 조 대표를 최근 본사 이전을 앞둔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탁 트인, 카페 같은 공간이 스켈터랩스의 기업 문화를 살짝 엿보게 했다. 그에게서 스켈터랩스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수많은 인공지능 기술 기업 중 회사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

■ 스켈터랩스, 어떤 회사인가?

벨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문이 열려서 놀랐다. 아니, 내가 누군 줄 알고 문을 열어주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쉽게 들어오도록 자동으로 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동료가 제안한 아이디어다. 포지티브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일단 제약하지 않고 풀어 놓는다. “이런 건 하면 안 돼”라는 제약이 생기는 건 우리 같은 회사에 안 좋은 생각이다. “일단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피드백을 주면 된다.

회사 내부도 개발자가 많은데 칸막이가 없다. 실질적으로 교류를 많이 하라는 것도 있지만, 상징적으로 그만큼 오픈되어 있다는 걸 뜻한다. 내가 ‘A’라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서 ‘B’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건 제가 권장을 하지 않는다. “난 내 것만 할게”라는 벽을 허무는 거다. (서로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문화를 만드는 게 저희한테 중요하다.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크고 작은 일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좋은 인력들은 보수와 상관없이 다른 면에서 만족감을 줘야 한다. 문화적인 부분이 굉장히 크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리 그룹 만큼 좋은 멤버가 농축되어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자부한다.

 

좋은 멤버가 모여서 어떤 일을 하나?

대화 엔진과 초개인화 엔진을 만든다. 지금 기술 업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대화 엔진’을 해야겠다는 생각했고 그중에서도 기술에 포커스 해야겠다 싶었다. (대화 엔진을 하는 다른 회사들은)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 같은 솔루션을 많이 시도한다. 그래서 한국에도 대화 관련 사업을 하는 곳이 많다. 스켈터랩스는 그중에서도 독특(unique)하게 핵심(core) 기술에 집중(focus)한다. 제가 알기로는 그런 회사가 거의 없다.

 

스켈터랩스의 독특한 점 하나는 개발자 책상에 칸막이가 없다는 점이다.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는 문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다.

 

핵심 기술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동안 대화 엔진이라고 하면 애플리케이션 챗봇이나 AI 스피커를 생각했다. 그런데 AI 스피커를 써봐서 알겠지만, 아직 굉장히 수준이 낮다. 대답할 수 있는 게 한정된다. 사용자가 물어보면 대답은 하지만 조금이라도 복잡한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아직 기술 수준이 실용화되기엔 갭(gap)이 있다.

이걸 못하는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되면 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아지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풀면 시장이 커지는 것은 검증이 되는 건데, 아직 기술 수준이 모자란다.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아니면 그 문제를 풀 수 없다. 저희가 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서 핵심을 잘 뽑아내서 스마트하게 대답하는 기술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도(intent)를 인식하는 기술적 문제를 푼다. 자연어 문장을 주면 거기에서 인텐트를 정확하게 인식해서 그에 맞는 대답을 하는게 대화 엔진 기술이다.

 

대화 엔진에 대한 이야기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인텐트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서 “오늘 날씨 어때?”라는 인텐트를 표현하는 방법이 수천가지다. “따뜻해?” “비와?”  이런 게 다 같은 인텐트다. 기계가 줄 답은 똑같다. 수천 가지 배리에이션(Variation, 변화)에 대해서 하나의 인텐트를 알아내는 게 어려운 거다. 지금 현재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대화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의도 수가 적게는 20개에서 많게는 40~50개다. 딱 정해진 몇 가지의 패턴에만 제대로 반응한다. 우리가 풀려는 문제는, 인텐트 수가 많아도 잘 처리하는 것과 수많은 배리에이션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것, 두 가지가 핵심이다.

 

최근에 스켈터랩스 자체 테스트 결과, 대화 엔진의 성능이 좋았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스켈터랩스가 자사 AI 기반 대화 엔진의 인텐트 분류에 대해 글로벌 기업 대비 높은 수준의 성능 테스트 결과를 공개한 걸 말한다).

두 가지 익사이트 한 부분이 있다. 하나는 수치가 상대적으로 되게 좋았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서 격차가 보였다.

  • F1 스코어가 높다는 뜻은 그만큼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의미다. 스켈터랩스의 대화엔진은 해당 테스트에서 600개 인텐트 기준  72%의 F1 스코어를 냈는데, 글로벌 A사와 B사는 모두 65%의 F1 스코어를 냈다고 이 회사 측은 밝혔다.

두 번째는, 그 수치 자체의 절댓값이 실용적이라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챗봇을 만들 때는 제품 문의나 배송 문의 같은 스무개 남짓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거기에 대고 ‘오늘 날씨 어때?’를 물어도 될 정도로 많은 수의 인텐트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좋은 예를 든다면, 어떤 회사의 FAQ가 실제로 몇백 개라면 챗봇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런데 600개 정도의 인텐트라면 어지간한 것은 다 담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핵심은 초개인화 기술이다

개인화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다. 점점 더 개인화를 잘 하는 서비스나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보통 개인화라는 것은 하나의 서비스 영역 안에서 그 사람에 맞춤한 걸 말한다. 넷플리스를 볼 때 나의 취향대로 추천이 들어온다. 그게 개인화라면, 초개인화는 그 범위를 우리의 삶으로 넓힌 거다. 예를 들어 온라인이나 모바일 안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모든 경험이 서비스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집이 어디고 회사가 어디고 이런 것부터, 어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지 또는 싫어하는지 등을 모두 포함한다. 생활에 많은 단서가 있는데 이걸 자동으로 학습해서 맞춤 서비스나 보조를 해줄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초개인화다.

개념적으로는 개인화와 같지만 범위가 넓다. 예를 들어 내가 넷플릭스에서 보는 콘텐츠와 실제 극장에서 선택하는 영화는 다를 수 있다. 또, 내가 어느 가게에 가서 마블과 관련한 물품을 샀다거나 하는 시그널이 모이면 보다 구체적으로 “아, 이 사람이 마블 중에서도 아이언맨을 좋아하네”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마블과 관련한 행사가 있을 때 정보를 줄 수 있다. 스팸과 정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도움이 되면 추천이고, 그렇지 않으면 스팸이다. 이 사람의 취향과 생활습관을 학습해서 어시스트나 추천을 하고, 아니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만든다.

 

개인의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하는 건가?

수집 단계로 가면 AI가 아니다. AI가 들어가는 것은 수집된 걸 갖고 추론을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마블 영화를 봤다고 해서 마블 팬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연히 본 걸 수도 있다. 남들이 다 보니까 보는 걸 수도 있고. 그럴 때 마블 관련한 정보를 주면 스팸이다. AI 기술은 이 데이터들을 토대로 추론을 계속한다. 이 사람의 취향을 조금 더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간다고 치면 GPS가 안 잡힌다. 그런 상황에서 덜 똑똑한 엔진은 거리 범위 내에서 이 사람이 대충 어느 범위에 있을 거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똑똑한 엔진은 지금이 식사 시간이고, 이 사람의 평소 취향을 봤을 때 어느 식당에 갔을 거다. 이 사람은 여기에 있다, 라고 한다. 조금 더 인텔리전트하게, 장소나 취향을 인식한다.

 

대화 엔진이나 초개인화 엔진이 결과적으로는 의도나 상황 맥락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같은 기술인 것 같다

재미있는 부분은 기술적으로는 다르지만, 같은 컨텍스트를 쓴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스켈터랩스가 컨텍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AI가 인간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통제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는데

몇 년 전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의 사생활 침해가 걱정이 된다. 기술이라는 것이 악용되기 시작하면 되게 무섭다. 예를 들어 (나는)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처음 달았을 때 식겁했다. 아직도 (블랙박스를) 잘 못 받아들이겠다. 그래도 블랙박스가 가는(보급되는) 이유는 밸류가 있어서다. 보험료가 싸지고, 사고가 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기술의 적용에는 항상 어두운 면이 있다. 그 어두운 면을 항상 고민하면서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굴 인식도 마찬가지다. 얼굴인식의 세계 최강자는 다 중국이다. 프라이버시 이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AI도 카메라와 마찬가지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선을 넘었을 때 AI가 줄 수 있는 무기가 너무 세다. AI가 발전할 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거기다.

 

지금 스켈터랩스가 하는 ‘초개인화’ 연구도  결국은 사생활 침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초개인화는 프라이버시가 100% 보장이 되는 선에서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제3의 회사나 개인이 알 수 없다. (기술이) 어시스트는 하지만,  (사용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개인식별정보(Personally identifiable information)를 갖고 있지만 얼굴이나 이름,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은 저장하지 않는다.

 

대화 엔진이나 초개인화 엔진은 글로벌 유수의 기업들도 다 한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도 하는데, 스타트업이 경쟁에서 승산이 있나?

이 세상의 문제가 큰 회사라 해서 다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풀어야 할 문제들을 모아 놓으면 대기업 열 개를 갖다 놓아도 풀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구글도 아마존도 선택과 집중을 한다. 큰 회사일수록 더 큰 것 (더 큰 매출을 낼 수 있는)에 집중한다. 벤처 사업은 다 리스크가 있다. 문제를 푸는 시도를 했다가 못 푸는 경우가 많다. 실패를 하는 거다. 대기업이 백 가지 천 가지 시도를 다 할 수 없다. 스타트업이 그 시도들을 하고, 그중 잘되는 곳은 대기업이 인수하거나 파트너가 된다. 그게 투자고 제일 정상적이고 건전한 에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어도 이 부분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기업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다.

 

스켈터랩스가 B2B 사업을 주로 하는데, 어떤 파트너들이 있나?

롯데홈쇼핑에 저희 챗봇 엔진이 들어가 있다. MOU를 맺고 외부에 알린 파트너로는 이노션(현대 계열사), 효성 ITX 등이 있다.

 

글로벌 진출도 고려하나

국내 타깃이 목표는 아니다. 처음부터 뚜렷하게 글로벌로 목표를 세웠다. 기술 회사의 장점이 그거다. 문화적인 갭이 별로 없다.  어려운 문제를 풀면 세계로 적용이 가능하다. 이 문제를 풀면 어떤 기회가 열리느냐를 당연히 생각하고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국인 직원도 있고, 문서를 작성할 때도 영어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야 외국인 엔지니어가 들어와서 일하고, 외국 사업에 적응하기도 쉽다. 그렇다고 영어를 대단히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문서 작성(written)을 영어로 하지만, 얘기할 때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통역 비슷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탁 트인 공간이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내는 인상적인 공간.

 

■ 기술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기술 회사’로 정체성을 세운 이유가 있나

통상 기술회사라고 하는 곳보다 조금 더 기술에만 집중하는(focus) 형태다. 많은 경우의 회사들이 어떤 기술을 갖고 시작하지만, 결국엔 애플리케이션 사업 영역으로 회사를 키운다. 그러다 보니 (그런 회사들보다) 우리가 다루는 문제 자체가 조금 더 어렵고, 사업 모델도 차이가 있다. 직접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보다는,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파트너들이 사업을 할 수 있게(enable), 경쟁할 수 있는 사업을 하도록 상품 서비스를 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 꽤 성공한 스타트업이 많지만 기술 스타트업은 드물다. 기술 스타트업이 더 생존하기 어려워서 아닌가?

기술 스타트업이 기회 면에서 좋다. 다양한 조직을 갖지 않아도 사업을 할 수 있다. 개발 R&D 인력하고, PM, UX 구성원들로만 사업을 가져갈 수 있다. 처음엔 기술회사로 시작해도 결국엔 돈을 벌기 위한 사업에 진출하는 순간 정체성을 많이 잃는다. 우리나라가 시장이 크지 않아서다. 그래서 저희는 그냥 기술이 아니라 하드코어 기술을 하기로 사업 계획을 세웠다.

 

하드코어 기술이라면 어떤 건가?

다른 데도 다 할 수 있는 거면 하드코어가 아니다. 그러면 기술회사로 남을 수가 없다. 저희 비전은 기술을 잘하면 많은 회사와 파트너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만의 경쟁력 갖고는 기술 회사를 하기 어렵다. 세계적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어느 기술에 대해서 “한국 기술은 낮고 외국은 높다”는 게 별로 없다. 한국 시장에서 원하는 거나 세계 시장에서 원하는 거나 결국은 같은 거다. 그런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만들려면 결국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키(key)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처음부터 사람에 대한 우선순위를 높게 뒀다.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도 어려운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레퍼런스가 중요하고, 저 정도면 세계 어디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트업에서 좋은 인재를 뽑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 가지 방법은 돈을 많이 주는 거다. 다른 데서 1억 원을 준다고 하면 우리는 5억 원을 주면 다 온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좋은 인재를 못 뽑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들어온 사람은 그렇게 해서 나간다. 인재 확보 측면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이 돈으로 하는 거다.

두 번째는, 결국은 제가 보기엔 이게 더 좋은 방법이고 롱텀으로 지속 가능한데, 결국은 ‘풀고 싶은 문제’를 제시하는 거다. 좋은 엔지니어는 어려운 문제를 풀 때 희열을 느낀다.

세 번째는 일하는 동료가 실력이 좋은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평범한 그룹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가져갈 때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만, 많은 엔지니어는 실력 있는 동료와 교류하면서 자기와 팀이 성장하고 골을 성취해 나가는 데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다음이 문화다. 이 모든 것이 바탕이 되면 창의력을 갖고 고난이도 문제를 풀 때 두려움을 갖지 않고 도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그건 돈이 안 되니까 다른 걸 하자”는 식의 수직계층 적인 환경에서는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스켈터랩스에 와서 놀라는 것이 오픈된 문화다.

 

딥러닝 연구를 하려면 데이터가 많아야 하지 않나? 스타트업은 데이터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사실 이게 약간 업계에서 미스(myth, 신화)라고 하는 거다. “AI 하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스타트업이 그걸 어떻게 해?”라고 한다.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데이터를 주면 인텔리전스를 만드는 식이라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데이터가 없어서 뭘 못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는 기술을 만드는 회사고, 우리 기술을 응용해야 할 문제를 가진 회사는 데이터가 많은 곳이다. 우리가 기술로 문제를 풀 때, 파트너가 데이터를 같이 가져온다. 파트너가 “우리는 이런 데이터가 있는데 너희 기술로 문제를 풀어보자”하고 오지, “우리 데이터를 너희한테 못 보여주지만, 문제를 풀어줘”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사업할 때 데이터 때문에 못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데이터가 중요한 분야도 있다. B2C로 얼굴을 인식하는 앱을 만든다고 치면,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B2C에서는 그렇지만, B2B는 그런 문제가 없다.

 

 

■ 구글 뛰쳐나와 또 다시 창업 하는 이유

구글 출신이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구글코리아 대표도 맡았다

커리어를 보면, 과거에 나는 스타트업만 했다. 다른 회사에 취직한 게 딱 한 번이고 그게 구글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을 해보고 구글에 들어갔다. 구글이라는 회사는, 다 아시겠지만 정말 기술 회사다. 기술 회사가 어떤 밸류가 있고, 그 밸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많이 배운 곳이 구글이다.

 

구글코리아 대표를 할 때는 어땠나?

2014년까지 7년 넘게 프로덕트 R&D 총괄로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었는데, 하나는 한국에서 론칭된 모든 구글 서비스에 대한 책임이다. 구글 검색부터 유튜브 등 모두다. 두 번째로는 엔지니어링 센터를 리드했다. 제가 구글에 들어갔을 때는 구글이 키워드 검색할 때 웹검색 결과만 보여주는 것에 굉장한 고집과 자부심이 있던 회사였다. 그러다가 구글 검색이 크게 방향을 틀었던 적이 있는데, 검색 결과에 답을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예컨대 영화 검색했을 때 오른쪽에 관련 정보가 나오는 것 말이다. 이게 저희 한국 팀의 이니셔티브다. 전 세계에 보이는 스트럭쳐 데이터의 상당 부분을 코리아에서 한다.

 

구글과 네이버가 서로 닮아간다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 변화가 한국팀에서 나온 거였나?

맞다 (웃음).

 

구글 입사 전에는 어떤 창업을 했었나?

카이스트 박사 과정 때 논문을 써서 보내놓고는 졸업 심사를 하기 전에 나와서 창업했다. 그때는 PC 통신이 처음 나올 때여서 당시 소프트웨어로는 꽤 큰 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상장도 했고. 2000년에는 좋은 엔지니어를 몇 명 뽑아서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고, 거기서도 잘 되어서 M&A를 한 다음 구글에 갔다.

 

구글은 개발자들한테는 최고의 직장일 텐데, 나와서 다시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됐나?

처음 구글에 들어갔을 때는 구글이 세계적으로 확장을 할 때였다. 구글은 인재의 중요성을 아는 회사다. 어떤 나라, 어떤 도시, 어떤 지역에 들어가면, 예를 들어 톱 클래스 엔지니어가 10명만 되면 그곳에 엔지니어링 센터를 만드는 전략을 가졌다. 내가 들어갔을 때쯤에 세계적으로 몇십 개의 R&D 센터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구글의 핵심인 검색 프로젝트로 살아남은 팀은 한국과 브라질밖에 없다.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고, 이걸 인정받고 나니까 새로운 어떤 걸 하면 좋을까 고민하게 됐다. 아이디어가 생겼고, 구글에서 할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업계획을 짜서 마운틴뷰(본사)로 가 임원들 앞에서 발표했다. “이걸 하면 1억 불 매출이 나올 거야”라고 했다. 작지 않은 규모였다. 반응도 좋았는데 임원이 이런 말을 하더라. “좋은 아이디어인데, 1억 불 갖고 우리가 뭐하니?” 맞는 말이었다. 구글은 하루에 1억 불을 버는 회사인데, ‘아 이걸 하려면 구글에서 나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2000년대 초는 한국에 공대 기피 현상이 심했던 때기도 했다. 기술 회사가 거의 없어졌을 땐데, 어떻게 보면 안 좋은 상황이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그만큼 스페셜한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래서 기술이 코어인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발표가 창업의 모태가 됐나

모태라기보다는, 구글 안에서 말고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됐다.  나이가 있으니까 앞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정도 더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 놓치면 구글에서 은퇴해야겠다는 두 가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한 번 더 나가서 하자는 생각을 한 거다. 당시 발표한 내용과 지금의 사업은 전혀 다른 내용이다.

 

개인의 비전은 무엇인가?

돈을 많이 번다기보다, 굉장히 의미 있는 성공을 하고 싶다. 실리콘밸리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와 구글코리아에 간 가장 큰 이유가 실리콘밸리의 경험을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에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우리 회사가 기술 회사로 성공을 하면, ‘이런 회사도 있구나, 이렇게 갈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 좀 더 많은 기술 회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내가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엔지니어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국제 경쟁력이 있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 솔직히 걱정이다. 우리나라를 이스라엘과 비교 많이 하는데,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애매해서 이걸 나눠 먹는데 집중하는 게 많다. 그런데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는 (내수 규모가) 나눠 먹을 게 없어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보고 간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삼성이나 큰 회사가 세계 시장에서 성장했는데, 앞으로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라고 본다. 기술 회사가 좋은 것은, 아무 재료가 없어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다. 구글도 차고(garage)에서 성공했다. 성공의 기회가 소프트웨어에 많이 있는데, 경쟁력을 가지려면 인재가 많아져야 한다. 개인적인 바람은 사회가 조금 더 소프트웨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중심이 옮겨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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