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슛 돈슛’ 묘한 전우애까지…아크 레이더스, 대박난 이유 있었네
넥슨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생존협동탈출(PvPvE 익스트랙션) 어드벤처 신작 게임 ‘아크 레이더스(Arc Raiders)’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정식 출시 이후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량을 연일 갱신하면서 전례 없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아크 레이더스는 출시 2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240만장을 돌파했다. 출시 직후 2주 만에 400만장, 두 달을 조금 못 채운 시점에서 1000만장을 달성한 데 이어 지속해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다.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 기준 평일 동시접속자는 20~30만명을 유지, 최고 동시 접속자 수는 48만여명을 넘어선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 콘솔 사용자까지 포함한 최고 동시접속자 수는 96만명을 돌파했다.
왜 아크 레이더스는 전례 없는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이용자 입장에서 어떤 콘텐츠와 시스템이 아크 레이더스 흥행을 이끌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체험해보니, 익스트랙션 어드벤처라는 ‘하드코어’한 장르를 대중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둔 걸 알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돈슛단을 만나면서 묘한 전우애를 느끼기도 했다. 사용자들이 쉽게 이탈하는 걸 막는 시스템, 협동을 간접적으로 권장하는 영리한 게임 시스템이 게임에 빠져들게 했다.
높은 ‘진입 장벽’, 시스템으로 허물다
PvPvE 기반 익스트랙션 어드벤처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다. 다른 이용자와 컴퓨터 적을 물리치고, 전리품을 챙겨 탈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 도중 죽거나 탈출에 실패하면 모든 아이템을 잃는다. 이에 신규 이용자는 게임에 적응하기도 전에 게임에 흥미를 잃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구조는 익스트랙션 어드벤처 대중화에 발목을 잡았다. 장르의 원조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가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된 이유다.
아크 레이더스는 신규 이용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출시 초기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신규 이용자 정착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은 ‘로드 아웃’이다. 기본 장비를 무료로 제공해 게임 안에서 죽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조성했다. 반복해서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부담을 줄여,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다음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자의 경우 게임 초반 무료 로드아웃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결국 수없이 죽으면서 기본 지급 받은 아이템을 상당수 잃었다. 그러자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 욕구가 크게 줄었다. 어차피 플레이해 봐야 탈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잘못하면 조금 남은 아이템까지 모두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료 로드아웃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바뀌었다. 죽거나 탈출하지 못해도 그만. 운이 좋아 탈출하면 열심히 모은 전리품을 모두 챙겨 나갈 수 있었다.
이용자만의 지하 거점인 ‘레이더 은신처’에도 이용자가 게임을 이어 나가게 하는 요소가 있다. 반려 수 ‘꼬꼬’다. 꼬꼬는 사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마다 기본 자원을 자동으로 쌓아둔다. 플레이 결과와 관계없이 점진적인 성장이 가능해, 초반 게임 정착에 큰 도움을 준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상쇄하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사용자 이탈을 최소화한 것.
기존 사용자와 신규 유입자 간 격차를 줄이는 ‘원정 프로젝트’도 있다. 원정 프로젝트란 숙련된 사용자가 자신의 성장치를 초기화하는 대신 영구적인 명에 보상과 추가 스킬 포인트와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덕에 기존 사용자들은 게임을 계속할 원동력을 얻고, 그 과정에서 신규 사용자와 격차가 자연스럽게 완화된다.
넥슨 관계자는 “강제성이 아닌 보상과 선택을 통해 유저 생태계에 선순환 구조를 완성한 점이 흥행을 가능케 한 결정적 차별화 포인트”라며 “지속적인 유입과 리텐션(Retention, 이용자 유지율)을 만든 콘텐츠적 흥행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싸울까 협동할까…선택에서 오는 재미
보통 익스트랙션 어드벤처 게임은 눈앞에 나타난 모든 적과 싸워야 한다. 동종 게임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 자신의 캐릭터 PMC로 플레이하면 스캐브라 불리는 컴퓨터 적, 다른 사용자가 조종하는 ‘유저 스캐브’ 그리고 같은 PMC 모두를 물리치고 탈출해야 한다. 게임에 진입하면 다른 유저와 협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크 레이더스는 같은 익스트랙션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반드시 모든 적과 대치할 필요가 없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다른 사용자와 협력하는 방법도 있다. 게임 안에는 이른바 ‘돈슛단’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다른 사용자와 싸움 대신 협력을 추구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돈슛단은 쏘지 말라는 뜻을 지닌 영어 ‘Don’t Shoot’와 단체를 뜻하는 한자 ‘단(團)’의 합성어다. 이들은 다른 사용자를 만나면 쏘지 말라는 감정표현을 내보내며 상호 협력 의사를 밝힌다.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평화롭게 전리품을 챙겨 탈출하는 또 하나의 선택지인 셈이다.

실제 게임에서 돈슛단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파티를 맺고 시작하는 ‘스쿼드 플레이’에서 조차 많은 사용자들이 평화를 추구했다. 이들은 다른 사용자가 보이면 즉각 돈슛 감정표현을 통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밝혔다. 아크 레이더스는 인간을 적대하는 로봇 아크(적으로 등장하는 컴퓨터 로봇)로 인해 문명이 붕괴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스쿼드와 함께 아크를 상대할 때는 함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묘한 전우애까지 생겼다.
‘공격성 기반 매치 메이킹’은 이러한 게임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대한 비슷한 성향을 지닌 이용자끼리 만나도록 돕는 게임 시스템이다. 다른 이용자와 싸우는 걸 즐기면 그러한 성격의 이용자와 만날 확률이 늘어나는 식이다. 반대로 평화로운 플레이를 원하는 돈슛단과 같은 사용자는 그와 비슷한 성향의 이용자와 자주 만난다. 앞서 패트릭 쇠더룬드(Patrick Söderlund) 엠바크 스튜디오 대표는 외신 게임비트(GameBeat)와 인터뷰에서 아크 레이더스에 공격성 기반 매치 메이킹이 적용됐다는 사실을 직접 밝힌 바 있다.
즉 아크 레이더스는 PvPvE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용자 스스로 성향에 맞는 대결을 간접적으로 택할 수 있다.
원조의 장점은 그대로 흡수
익스트랙션 어드벤처 장르 원조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는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로 큰 호평을 받았다. 넥슨은 이를 아크 레이더스에 잘 풀어냈다. 지형에 따라 바뀌는 발자국 소리, 전리품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뒤지는 소리, 아크에게 발각됐을 때 경고음, 실내·외 소리 변화, 누군가 죽었을 때 터지는 신호탄 등 공간에 따른 세세한 소리를 현실감 있게 전달한다. 사운드는 최신 AAA급 게임의 화려한 그래픽과 함께 이용자가 아크 레이더스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또한 게임의 세계관에 녹아들게 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패키지 형태, 결과적으로 옳았다
제값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패키지’ 형태는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요소로 평가됐다. 국내 게이머들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패키지 게임을 선호하지 않는다. 내려받기는 무료지만 내부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는 프리투플레이(Free to play)에 익숙해서다. 해외의 경우 패키지 게임에 관대하지만,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이 엄격하다. 즉 패키지 게임으로 초반 흥행에 성공하려면 쾌적한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고 높은 게임성을 갖춰야 한다.
넥슨은 아크 레이더스 기획 단계에서 프리투플레이로 출시하려 했지만, 추후 패키지 출시로 방향을 틀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은 초반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넥슨은 판단한다. 패키지 게임은 유료 구매를 전제로 하는 구조로, 게임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있는 이용자들이 모인다. 덕분에 출시 초기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윤정환 기자>yjh@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