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쿠팡 청문회가 드러낸 불편한 진실

“고객중심”

쿠팡이 창립 이래 금과옥조로 유지해온 경영 철학이다. 오직 고객만 보면서, 고객만족을 최대 가치로 삼고 사업한다는 것, 이것이 쿠팡이 내세워온 정신이었다.

그런데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는 이 철학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고객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 쿠팡

쿠팡의 고객은 대부분 대한민국 시민이다. 대한민국 시민의 대부분은 또 쿠팡 회원이다. 이번에 유출된 고객 개인정보가 337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즉, 쿠팡 고객은 곧 대한민국 시민인 셈이다.

국회의 쿠팡 청문회는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시민들을 대신해서 쿠팡의 경영진에게 질문을 하는 자리였다. 결국 쿠팡의 고객들이 쿠팡에 질문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오직 고객만족을 위해 존재한다는 쿠팡은 어떤 태도로 이 자리에 임했는가? 한 마디로 무성의했고, 회피했다. 김범석 의장이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이 자리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쿠팡 정체성의 이중성이다. 그동안 쿠팡은 한국 소비자에게 한국 회사처럼 다가왔다. 한국어로 소통하고, 한국 시장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한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문제가 생기자 미국 회사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쿠팡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김범석 의장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대신 한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미국인 CEO가 책임자로서 고객이자 시민 앞에 섰다.

미국인 CEO는 “내가 책임 지겠다”고 했다. 그가 질 수 있는 책임이라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가 보여준 모습은 이 불똥이 미국으로 튀지 않도록 막고자 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미국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공시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시민이자 고객들은 김범석 의장이 사태의 원인을 설명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하길 바랐다. 그러나 통역으로 시간을 끌어가며 청문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과연 고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던 회사의 모습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놓아줄 수 없는 딜레마

이제 우리는 쿠팡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객을 존중하지 않는 기업,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에 더 이상 휘둘릴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 쿠팡 고객들에게는 아직 대안이 없다. 워낙 강력한 쿠팡의 서비스로 인해 쉽게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빠른 배송, 괜찮은 가격,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인해 쿠팡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 효용성이 높다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은 쿠팡이 잘한 일이다.

문제는 이 높은 효용성이 시장 독과점으로 이어졌고, 그 효용성이 책임 회피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정부나 국회는 쿠팡을 제재할 방법을 찾는 듯 보인다. 하지만 쿠팡에 대한 규제나 제재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규제로 쿠팡의 효용성을 없애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받게 된다. 쿠팡의 효용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쿠팡의 효용성 못지 않은 서비스를 양성하는 것이 답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쿠팡 못지않은 효용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쟁사들이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물류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며, 네이버나 컬리 같은 쿠팡의 경쟁 업체들과 중소 이커머스 업체들이 쿠팡 못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진정한 선택권이 주어질 때, 기업은 비로소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쿠팡 청문회는 하나의 기업에 대한 질타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시장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객에게 집착한다”는 말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고객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업에 알려야 한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본질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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