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국감] 국정자원, 배터리 이설 매뉴얼 없었다…“입찰·냉각 시스템·백업 모두 허점”
행안위 국감서 국정자원 관리 부실 도마 위 “30% 방전 원칙도 없고, 일반 입찰로 초급 기술자 투입”
지난달 대전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원장 이재용, 이하 국정자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 화재가 국가 전산망 마비로 이어지면서, 국가 데이터센터의 관리 체계 전반의 허점이 국회의 집중 추궁을 받았다.
14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국정자원 화재 사태를 두고 ▲배터리 이설 매뉴얼 부재 ▲전문성 부족한 업체 입찰 ▲냉각·항온항습 시스템의 단일 구조 ▲이중화·백업센터 미비 등 허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배터리 이설 매뉴얼 부재”…고동진 의원, 시스템 관리 허점 지적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1일 자료를 요구했지만, 국정자원이 제출한 문서는 화재 발생 이후 행동 요령만 담긴 매뉴얼이었다”며 “배터리 이설 작업 시 따라야 할 절차나 안전 기준이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방서(공사 지침서)에는 배터리 충전량을 30% 이하로 낮춘다거나 절연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조차 없었다”며 “이런 기본적인 안전 조치가 부재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이설 관련 매뉴얼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고, 작업자들의 안전 수칙 준수 여부는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라며 매뉴얼 부재와 관리 체계 미비를 인정한다고 답했다.
고 의원은 배터리 공사 업체의 입찰 과정의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감리 일지에는 충전량 확인이나 전원 차단 등 핵심 절차 기록이 없고, 자격 취득 1년이 안 된 초급 기술자들이 대부분이었다”며 “30억원 규모의 무정전 전원장치(UPS) 배터리 이설 공사를 아무 업체나 참여할 수 있는 일반 경쟁입찰로 진행한 것은 명백한 판단 미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이설 공사는 국정자원이 발주한 리튬이온 배터리 이설 공사로 시공은 ‘일성계전’이 맡았으며. 감리는 ‘태평엔지니어링’이 담당했다. 두 업체 모두 국정자과 첫 계약을 체결한 곳으로 배터리나 전력안전 관련 전문 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 의원은 “감리단장조차 본인이 잘 안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답변했다. 작업이 얼마나 대충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며 “이런 고위험 작업을 제한경쟁이 아닌 일반경쟁으로 입찰을 붙인 것은 배터리 이설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입찰 방식과 업체 선정 과정에서 배터리 이설 공사의 위험성과 기술적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제한경쟁입찰로 전환하고, 감리 자격 기준을 강화해 전문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겠다”고 답했다.

냉각·항온항습 시스템 한곳에 집중…구조적 결함 지적
화재로 전산실의 전력 공급뿐 아니라 냉각·항온항습 설비가 동시에 마비된 것이 국정자원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층 전산실 화재가 옥상 냉각탑으로 이어지는 배관에 영향을 주면서 2~4층의 항온항습기가 전부 멈췄다”며 “냉각 설비가 단일화된 구조였기 때문에 피해가 전층으로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전기설비규정에는 UPS 기준은 있지만 냉각 설비 기준은 없다”며 “전력은 이중화돼 있지만 냉각 시스템은 단일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전력 계통은 이중화돼 있었지만 냉각 시스템은 아니었다”며 “설비 구조상 취약점이 있었고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해 냉각·항온항습 설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하겠다”며 “데이터센터의 신뢰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등급제(Tier)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의원은 “대전 본원은 전화국 건물을 개조한 임대 시설로 전력·공간 모두 한계에 이르렀다”며 “국정자원에 인접해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사고 발생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냉각 시스템 등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윤 장관은 “대전 본원은 구조적 한계가 있는 임대 건물로, 향후 대체 센터를 포함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3조원 없어 백업센터 못 만드나…주호영 의원, “이중화 신속히 구축해야”
백업센터 부재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데이터는 백업돼 있지만 돌릴 서버가 불타 복구가 늦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며 “결국 동일한 시스템을 이중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조선시대에도 4대 사고(史庫)를 분산 보관했는데, 정부는 3조원 예산이 없어서 백업센터를 못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현금성 쿠폰에 수십조를 쓰면서 국가 데이터는 한 곳에 몰아뒀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현재 대전·공주·광주·대구 등 4개 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완전한 복제 시스템은 아니다”며 “3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단계적 이중화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답변했다.
국정자원이 운영 중인 4개 센터는 모두 주센터(대전)의 기능을 분산 지원하는 형태로, 실시간으로 동일 데이터를 운영하는 ‘이중화(액티브-액티브)’ 구조는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즉, 백업센터가 있지만 주센터가 마비될 경우 즉시 전환할 수 있는 실시간 복제 체계가 없어 복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주 의원은 “피해액이 이미 3조원을 넘었다”며 “비상 전력처럼 즉시 전환 가능한 백업센터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원장은 “공주센터를 포함한 기존 거점의 기능을 강화해 단계적으로 실시간 이중화 체계를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재난…박수민 의원 “30% 방전 규칙도 안 지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국정자원 화재는 특정 정부의 탓이 아니라 ‘30% 이하 방전’ 같은 기본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은 인재”라며 “국정자원 원장과 조직원들의 안전불감증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짚었다.
여기서 말하는 ‘30% 이하 방전’은 UPS 리튬이온 배터리를 옮기거나 분리할 때, 내부 전력을 30% 이하로 미리 소모시켜 폭발 위험을 줄이는 기본 안전 수칙을 뜻한다. 배터리에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을 경우 작은 충격이나 전기적 단락에도 불꽃이 발생할 수 있어,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다.
또한 박 의원은 “이중화 구축은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한 일이나, 이런 핵심 설비를 예산 탓으로 미뤄온 것이 사태의 본질”이라며 “정쟁보다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모든 중앙·지자체 시스템을 대상으로 백업·이중화 실태를 점검 중”이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산 인프라 관리 체계를 전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복구율 40%, 287개 시스템 정상화…핵심 시스템은 77.5% 복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4일 12시를 기점으로 국정자원 화재로 중단된 정부 전산시스템 709개 중 287개(40.5%)가 복구됐다. 1등급 핵심 시스템은 77.5%(40개 중 31개)가 정상화됐고, 2등급은 51.5%(68개 중 35개), 3등급은 45.6%(261개 중 119개), 4등급은 30%(340개 중 102개) 복구율을 기록했다.
1등급 핵심 시스템은 국가 행정 전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서비스로, 주민등록시스템·정부24·조달·국세·복지·국방 등 정부 업무의 중단 시 국민 생활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시스템이 포함된다. 2등급은 공공기관의 주요 행정 지원 및 업무 처리용 시스템, 3등급은 일반 행정 지원 및 내부 업무 시스템, 4등급은 정보 조회나 민원 안내 등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보조 시스템이다.
행정안전부는 “국정자원 내부 운영관리 시스템인 ‘엔탑스(nTOPS)’가 복구되면서 복구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여전히 정부의 다수 업무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장 복구와 데이터 검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1등급 시스템을 최우선으로 단계적 복구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행복청·보훈부 등 주요 부처의 일부 업무 시스템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으며, 완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곽중희 기자> god8889@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