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프로젝트로 본 미래 ‘디지털 화폐’ 시나리오

“한국은행은 디지털 화폐 연구 사업을 꽤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예금 토큰(Tokenized Deposit)과 같은 혁신 금융 서비스를 (제도권에) 포섭할 수 있도록 점검한 것은 큰 수확이다.”

“한창 인기 있는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예금 토큰을, 마치 둘 중 하나가 죽어야 경쟁이 끝나는 ‘치킨 게임’이라고들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둘은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용도별로 구분해 쓸 수 있는 자리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종이 화폐를 발행하는 한국은행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CD,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활용성 점검에 한창이다. ‘프로젝트 한강’ ‘아고라’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금융 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성준이 한국은행 디지털화폐실 디지털화폐인프라팀장은 26일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한 ‘2025 금융 테크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참석, 그간 한국은행이 진행해 온 여러 실험을 토대로 ‘디지털 화폐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스테이블 코인의 준비 자산이 반드시 필요한데, 예금 토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실시한 대표적 실험은 ‘프로젝트 한강’이다. 올 4월부터 6월까지, 예금 토큰을 실제 사용처에 써보는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했다. 시중은행 예금을 토큰화해 블록체인 위에서 운용, 결제·송금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프로젝트를 띄웠다.

한국은행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석 달간, 은행권 공동 금융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한국은행과 각 은행이 연계해 쓸 수 있도록 했다. 또, 블록체인 기술 기반 상품과 서비스 구현을 위한 제도적 기틀 마련을 위해 혁신금융 서비스를 지정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상거래 현장에서 시스템이 정상 운영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상점에서 대금 결제를 할 수 있도록 실행에 옮겼다. 이 기간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개설된 전자지갑은 약 8만 개, 일어난 거래는 11만 건으로 집계됐다.

성준이 팀장은 “1차 실거래에 대한 성과를 간단히 말하자면 성과도 있었고, 솔직히 말해 기대했던 것에 비해 거래량이 미치지 못한 점도 분명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시범 인프라를 구축하며 큰 배움의 기회를 얻었고, 그간 (디지털 화폐 구축 사용을 위한)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먼저 점검해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프로젝트 한강을 토대로 서울과 부산, 대구에서 디지털 바우처 실증 사업도 진행했다. 목적 제한형 화폐인 디지털 바우처는 싱가포르에서 논의 중인 ‘퍼포스 바운드 머니(Purpose-Bound Money)’와 유사한 개념이다. 예금 토큰 위에 스마트 계약을 얹어 특정 목적에만 쓸 수 있도록 하는 화폐로, 성 팀장에 따르면 “(토큰에 심은 조건에 따라) 돈이 가는 방향의 흐름의 길을 잡아주는 기능”을 실험해 볼 수 있었다.

국제결제은행(BIS)와 국제금융협회(IIF)을 비롯, 세계 7개국 중앙은행과 함께 국제 송금 프로젝트인 ‘아고라(AGORA)’에 한국은행도 참여한다. 아고라는 그리스어로 ‘광장’이란 뜻인데, 디지털 화폐 실험에 세계 주요 국가들이 한 공간에 모인 셈이다. 국가 간 결제 절차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송금 지연 및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다.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이 글로벌 송금 네트워크와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시범 사례라는 의의가 있다.

성 팀장은 한국은행이 진행하는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검증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가 미래의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 유효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초미의 관심사인 ‘스테이블 코인’과도 경쟁이 아닌, 보완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예금 토큰이나 디지털 바우처는 국내용으로 거주자가 주로 쓸 수 있고,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국제 결제나 비거주자가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성 팀장은 “언론에서는 흔히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치킨게임’으로 보지만 두 자산은 서로 다른 목적과 영역을 가질 수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 “둘은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용도별로 구분해 쓸 수 있는 자리가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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