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망할 수 있어야 스타트업이 산다”
기본적인 질문 하나. 망할 확률이 없다면 벤처인가? 십중팔구 망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 사회는, 정부는 창업을 장려한다. 살아남은 10%가 맺는 열매가 달콤해서다. 장려하는 분위기 속 창업 했다 문닫는 90%는 그럼 누가 책임지나. 네가 잘 먹고 잘 살려고 창업했다가 사업 못해 망했으니 온전히 네가 끌어안으라고 하는 것이 옳은가? 창업을 장려하고 지원했다면, 마무리에 대한 지원과 관심도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신용불량자’로 끝나 버리는 스타트업의 마지막을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지원해야 한다. 이런 논의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아산나눔재단, 법무법인 미션의 공동 주최 아래 이뤄졌다.
“스타트업 폐업과 관련한 포럼을 진행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간 제가 해왔던 다른 세션과는 다르게 한 분도 명함을 주지 않더라. 사실은, 되게 고민은 많이들 하시는데 어디 가서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는 거다.”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 변호사는 2일 아산나눔재단 마루180에서 열린 ‘스타트업 마무리 가이드북’ 발간 간담회에서 “많이들 고민하지만 어디가 이야기 할 곳 없는 폐업의 문제”를 지적했다. 요점은, ‘폐업’을 단순히 ‘실패’로 치부하는 대신, ‘책임 있는 마무리’와 ‘새로운 도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의 중요성이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삼중고가 지속되면서 스타트업 시장 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자본 시장에서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서 고위험 투자가 어려워졌고, 2022년 말부터 스타트업 생태계가 급격히 위축되는 징후가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스타트업이 늘었지만, 정작 폐업 과정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담았다.
가이드북의 대표 필자이기도 한 김성훈 변호사는 “스타트업의 마무리는 단순히 기업 활동의 종료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며, “이 과정을 안전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우리 생태계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이해관계자에는 창업자뿐만 아니라 직원, 투자자, 채권자, 고객은 물론, 그간 폐업과 관련한 논의엔 잘 들어오지 않은 정부까지 포함한다.
이날 간담회에는 펫 스타트업 ‘도그메이트’를 창업하고 10년을 운영했으나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최근 회사를 커넥팅더닷츠(째깍악어)에 회생형 인수합병한 이하영 대표와 모바일 게임 회사 ‘비컨스튜디오’를 폐업한 후 현재 슈퍼래빗게임즈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웅 대표가 참석해 경험을 공유했다.
이하영 대표는 코로나19 직후, 시장 점유율을 키우기 위해 투자금을 빠르게 소진하다 사업 방향을 잃었고, 늘어난 금융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폐업 절차를 밟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회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 굉장히 외로웠다”며,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 계약서에 포함된 풋옵션 조항 때문에 법인이 종결 처리가 났지만 이후에도 개인에게까지 법적 영향이 미치고 있는 상황이라 어렵다”고 토로하며 풋옵션과 관련한 투자 계약서와 권리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심의할 필요를 강조했다.
김영웅 대표는 갑작스러운 재정 악화로 폐업을 결정하게 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폐업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면서도, 폐업 과정에서 투자자나 팀원들에게 현재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폐업 당시 벤처 기술 보증기금의 대출 상환에 대한 개인 신용 문제는 없었지만, 이후 재창업 시 기술보증기금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원동력으로 ‘한 달 정도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남은 자금’과 ‘절반의 월급을 받고도 함께 책임감 있게 소통하며 함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함께 남아 ‘을 꼽았다.
박희덕 트랜스니크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실패한 경험이 성공 경험에 비해 투자를 받는 데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데이터를 축적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VC 입장에서 창업자가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폐업 과정에서 주주들을 챙기는 ‘진정성’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투자사와 채권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처럼 하나의 계약서에 모든 이해관계자를 담는 ‘원 컨트랙트(One Contract)’ 제도를 제안했다.
김성훈 변호사는 스타트업 마무리를 위한 정책적 제언을 내놨다. 그는 실패를 용인하고 다음 도전을 응원하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회생·파산 절차는 스타트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위한 예납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창업자가 폐업 후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경제 활동에서 퇴출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가는 시장이 성공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패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며, “창업 진흥이 국가적 아젠다라면, 창업의 마무리 또한 공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가이드북을 계기로 스타트업의 ‘마무리’에 대한 공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