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가요] “왜 플립을 하느냐고요?” 미국 가는 스타트업들
“국내 스타트업의 법인을 해외로 옮기는 ‘플립(FLIP)’을 단순히 응원하는 것이 맞느냐”
올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나온 질의입니다. 질문 그대로, 플립은 국내에서 사업하던 법인이 해외 진출을 위해서 그 나라로 본사를 옮기고, 원래 있던 한국 법인은 지사로 바꾸는 걸 말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더 큰 기업가치를 평가받아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혹은 더 넓은 시장에서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죠. 기업의 입장에선 나은 기회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국가 처지에선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가 다른 나라로 본사를 옮기는 것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스타트업의 플립을 응원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는데요. 하나는, “어떤 이유로 기업이 플립을 할 수밖에 없을까?”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플립 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느냐”입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왕 하는 플립 “가능하면 쉽고 유리하게 할 수 있는 법”도 같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플립을 선택하나
한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에 “정부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이 ‘플립 외에는 다른 성장이나 엑시트 수단이 없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현 구조가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플립을 결정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시장에 대한 기회와 국내 시장의 구조적 한계라는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플립을 고려하는 기업 중 상당수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선 엑시트(Exit,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것을 문제 삼는데요.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돈을 회수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 누가 스타트업에 돈을 넣겠느냐는 이야기죠. 다시 말하면, 이 문제를 풀면 플립 외의 대안도 생겨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엑시트는 크게 기업공개(IPO, 상장)를 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 두 개 다 우리나라에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아직 충분한 재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스타트업은 ‘기술특례상장’이란 제도를 통해 공개 시장에 나갑니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에 영업 실적 요건을 완화, 상장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죠. 그러나 이 제도에는 우려가 따라붙습니다. 부실기업이 상장되어서 일반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스타트업을 위한 상장 제도이지만 비교적 그 문턱이 높습니다.
지난달 국회토론회에서 자본시장연구원 이석훈 금융산업실장은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상장은 쉽게 하고, 대신 상장 폐지 요건을 엄격하게 마련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상장과 성장을 촉진하는 방안을 쓰고 있다는 소개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기업의 성격을 반영한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주식가치가 장기적으로 일반 상장기업보다 낮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스타트업의 특성 상 초반에는 재무 성과가 낮아도 장기적으로는 주식 가치가 높아지는 사례가 일반 상장보다 많았다는 겁니다. 이 연구위원은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이 상장 후 5년~7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가총액이 성장하는 특징이 있다”며 “단기 실적에 집착하기보다는 기술과 시장성, 그리고 투명한 정보공시를 통한 투자자 보호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정부가 모태펀드 퍼붓는데, 왜 시장에선 돈이 없다고 느낄까?”]
인수합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벤처투자사가 인수합병으로 엑시트한 비중은 단 0.7%에 불과합니다. 일단 스타트업을 인수할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은 주로 ‘인력 내재화’에 더 집중합니다. 인수보다는 기업 내부에서 팀을 꾸려 기술이나 서비스에 대처한다는 거죠.
물론, 정보 비대칭이나 기업가치 평가의 어려움 등도 인수합병의 허들로 꼽힙니다. 국내 중소벤처기업은 국제회계기준(K-IFRS)을 적용하지 않고(의무가 아님) 국내회계기준(K-GAAP)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즉, 재무제표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애써 코스닥에 상장한다고 해도 그 시장 자체가 작아 기업가치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것도 걱정거리입니다. 코스닥 시장은 ‘코스피 시장의 2부’로 여겨질 정도로 규모가 작습니다. 예컨대, 나스닥 상장이 점쳐지는 야놀자 역시 국내 시장에선 투자자가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없죠.
앞서 같은 토론회에서 최영근 상명대학교 교수는 “거래소의 투자자 보호 중심의 보수적인 운영 방식으로 코스닥은 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시장과 벤처투자자금 회수시장으로서의 독자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하면서 “혁신기업 시장으로서의 코스닥 정체성을 확립하고, 코스피 시장과의 경쟁체제 구축을 위해 코스닥 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방금 말한 이유들이 바로, 스타트업이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글로벌 자본시장과 투자 생태계 접근성”을 위해 플립을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죠. 일단 글로벌 대형펀드나 미국의 투자사들은 한국보다는 미국 법인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법제도나 계약 구조, 지분 정리 방식 등 여러 제도가 훨씬 익숙하고 엑시트 전략도 더 잘 세울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이 외에 애초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한국 스타트업’이라는 이름보다는 ‘글로벌 본사’를 가진 기업이 파트너십과 고객 확보가 쉽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습니다. 현지 고객을 확보하고 시장에 빠르게 접근하기 위해서도 해외 본사 이전은 유리한 카드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플립이 꼭 나쁜가?”하는요.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에 더해, 근본적으로는 국가와 시장이 변하는 배경을 봐야 한다는 해설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구가 줄어들면서 내수시장이 작아지는데 소비재 기업이 국내 시장만 바라보면서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어렵겠죠.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앞으로 자신들이 한국에서만 비즈니스를 잘 해가지고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은 없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글로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처음부터 세계 시장에 나가서 세계 시장에서 돈을 받고, 세계 시장에서 상품을 팔고, 세계 시장에서 협력할 기업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한국에서 플립을 하지 않고도 기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여러 시장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플립을 하려는 기업들이 별다른 문제나 손해 없이 글로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플립도 쉽지 않다, 현실적 문제
플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현실적 문제에는 뭐가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최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김성훈 변호사가 발표한 내용을 요약, 전달합니다.
먼저, 주주와의 갈등이 있습니다. 플립은 기존 한국 법인의 주주 구성 및 지분 비율을 그대로 미국 신규 법인으로 옮기는 과정이므로, 기존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한국식 투자 계약과 미국식 투자 계약 간에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한국의 투자 계약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 투자자에게 상환권과 같은 강력한 권리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미국식 투자 계약, 즉 주주 간 계약서(SHA)는 이러한 조건들이 빠지거나 변형될 수 있어 한국 투자자의 권리 누락 또는 희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주주(GP)는 플립으로 인한 상황을 LP(출자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플립의 각 과정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향후 자금 회수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LP에게 직접 설명해야 하는데, 아직 플립한 기업이 엑시트를 해서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한 성공 사례가 드물어 리스크 예측이 어렵다는 것도 갈등의 요소가 됩니다.
김성훈 변호사는 “특히 엔젤 투자자나 벤처캐피탈(VC)과 같은 기관 투자를 받은 경우에는 주주 수가 많아 의사 합치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면서 “한국 VC나 정부 자금 기반 투자자들은 플립에 대해 신중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고 지적합니다.
신뢰자본이 부족한 것도 플립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부분입니다. 플립했다고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 변호사는 “해외 현지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은 단순히 법인 구조 변경을 넘어선 ‘신뢰 자본’ 구축에 달려있다”고 설명합니다. 해외 현지에서의 문화적, 언어적 장벽은 플립 국가에 대한 이해 부족과 맞물려 예상치 못한 문제 발생 시 대응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죠.
신뢰가 부족하면 거래 지연, 분쟁, 비효율과 같은 예상치 못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이는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성장을 저해합니다. 플립은 하드웨어적인 본사 이전을 의미하지만, 진정한 글로벌 확장은 소프트웨어적인 현지 신뢰 자본의 축적을 요구하는 것이죠.
여러 법적인 문제에도 부딪힐 수 있습니다. 플립은 복잡한 법률 및 세무 절차를 수반하는데요, 이는 스타트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양도소득세 부담입니다. 플립 구조는 한국법인의 주주가 보유지분을 신규 해외법인에 양도하고, 대신 해외법인의 주식을 받는 방식입니다. 세법상 이는 현금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양도’로 간주해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됩니다. 특히,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는 액면가 수준에 주식을 취득했을 것이므로,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한 상태라면 양도차익이 수십억 원에 달할 수 있어, 실질 세 부담도 커지는 것이죠.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외국환거래 신고 절차나 높은 법률 및 회계 자문 비용도 어려운 부분중 하나입니다. 해외 법인 설립이나 주식 가치 평가, 외국환거래 신고, 주식 교환 계약 체결, 주주 간 계약서 수정 등에는 수많은 법률적·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법률과 회계 자문에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플립에서 파생되는 여러 이슈는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지적들입니다. 해외 진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 활동에 대해서 정부 정책이나 규제, 행정 시스템이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