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인뱅 표류 속…신한금융, 제주은행 중심 디지털전략 강화

국내 4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인가가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신한금융그룹이 자회사 제주은행을 통해 디지털 금융 실험에 나섰다. 특히 제주은행은 전사적자원관리(ERP) 기업 더존비즈온과 협업하며 사실상 ‘신한금융의 인터넷은행 대체 전략’의 중심에 자리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제주은행은 더존비즈온과 제휴를 맺고 ERP뱅킹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ERP 뱅킹은 기업의 ERP 시스템과 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연동해 자금 관리와 결제 업무를 자동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제주은행은 기업금융 경쟁력을 강화하고, 더존비즈온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ERP 시스템에서 생성되는 경영 데이터를 활용하면 단순히 대출·보험·카드 상품 심사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재무 상태와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보다 정교한 신용평가가 가능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계좌이체, 자동 결제, 자금 관리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로 확대할 수 있어, 기업 고객에게 통합적이고 맞춤형 금융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고석헌 신한금융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올해 상반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제주은행, 더존비즈온, 신한은행 직원 40여명으로 팀을 구성해 지난 4월부터 각종 제반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1분기 말 출시를 목표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의미있는 상품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오랜 기간 인터넷은행 시장 진출을 모색해 왔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가운데 인터넷은행 지분이 없는 곳은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KB국민은행은 카카오뱅크, 하나은행은 토스뱅크, 우리은행은 케이뱅크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9년 비바리퍼블리카(토스)와 토스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하려 했으나 사업 방향 등에 이견이 있어 무산된 바 있다. 올해 3월에도 신한은행과 더존비즈온은 4번째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앞두고 불참을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에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은행 인가를 받기 위해 요구되는 막대한 자본금 조달 부담과 이에 따른 재무적 리스크,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 준수 의무 등이 사업 추진의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에 규제와 부담이 뒤따르는 인터넷은행 인가보다는 이미 은행 라이선스를 보유한 제주은행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제주은행은 그룹 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강점으로 기민한 사업 전개와 디지털 전환 실험이 용이하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풀이된다.

카카오·케이·토스뱅크 등 기존 인터넷은행들도 인가 당시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라는 과제를 부여받았던 만큼, 제4인뱅 역시 소상공인 대출 확대 등 구체적 의무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ERP뱅킹을 통해 기존 금융권이 접근하기 어려운 비재무 정보를 심사에 반영할 수 있다”며 “단순히 재무제표상의 변화만 보는 게 아니라 입퇴사 패턴, 매출과 인력 증가의 연관성 등을 분석해 기업의 실제 경영 상태를 정밀히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소상공인뿐 아니라 중소기업 전반에 대한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모델”이라며 “제주은행은 신한금융의 디지털 전략 실험 기지로서 사실상 인터넷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은행은 네이버페이와의 협력으로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두 기업은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 역량, 오프라인 인프라를 기반으로 결제, 금융 등에서 협력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제주은행의 금융 서비스가 지역 한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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