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 한컴, 왜 첫 파업 맞았나
노조 “실적 대비 낮은 보상, 소통 없는 결정”…사측 “고성과자 중심 보상”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노동조합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에도, 올해 임금 협상에서 사측이 낮은 인상률을 고수하자 노조가 반발하며 파업에 나선 것이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한컴지회(이하 한컴노조)는 23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컴타워 앞에서 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쟁의에 착수했다. 이날 현장에는 노조원 160여명이 참여했으며, 카카오·네이버·엔씨소프트·NHN·넥슨·넷마블 등 총 16개의 IT업계 노조도 함께했다. 한컴노조 측에 따르면, 노조 가입률은 약 65%로 과반을 넘는다.
한컴 노사는 올해 1월부터 총 8차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벌였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5월 27일 협상이 결렬됐고, 회사는 6월 11일 5.8% 인상안과 일시금 50만원을 추가 제시했다. 이후 7월 14일 열린 9차 교섭에서 노조는 인상률을 6.9%로 낮추고, 승진자 인상분은 별도로 산정해 달라고 제안했지만, 회사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노조는 최종 수정안까지 거부돼 파업을 결의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5월 26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찬성 90.6%로 가결됐다.
한컴은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 1530억원, 영업이익 497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2.4%, 18.2% 증가한 수치다.

이날 정균하 한컴노조 지회장은 “회사는 우리의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듯 건물 1층 블라인드를 모두 내리고, 사내 카페도 ‘공사 중’이라며 일시 폐쇄했다”며 “하지만 이 현실은 하늘을 손으로 가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회사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협상의 테이블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며 “직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시간만 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이 자리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측이 성과급 확대를 강조했지만, 지급 대상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노조측 주장이다.
엔씨소프트,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IT 기업 노조가 연대 발언에 나섰다.
오세윤 네이버노조 지회장은 “성과 중심 보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부 기준이 불투명하다”며 “오늘 이 자리는 한컴만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노동자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상 기준과 성과 평가가 투명하지 않으면 어떤 구성원도 조직에 신뢰를 갖기 어렵다”며 “IT업계 전반에서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고, 이 자리에 연대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송가람 엔씨소프트 노조 지회장은 “성과는 함께 만들어놓고, 보상은 일부에게만 돌아간다면 신뢰를 깰 수밖에 없다”며 “성과 중심 보상을 말한다면 그 기준과 과정 모두가 투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자회사 ‘씽크프리’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씽크프리는 지난해 10월 한컴에서 분사한 신설 법인이지만, 지난 6월 27일 단독으로 6.7% 임금 인상에 합의하며 형평성 논란을 키웠다.
박성의 카카오노조 수석부지회장(한컴 자회사 씽크프리 교섭 대표)은 “같은 본사 방침을 따른다고 해놓고, 본사는 5.8%, 자회사는 6.7%라는 말이 되느냐”며 “위기일 땐 책임을 직원에게 돌리고, 실적이 좋을 때는 보상을 줄이는 자본의 행태가 이 판교에 모여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한컴은 파업 참여자에게 해당 시간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정 지회장은 “쟁의 준비에도 유급이 적용된다고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명시돼 있다”며 “이를 무시하고 무급 처리하려는 건 명백한 부당 행위”라고 반박했다.
지난 5월, 한컴은 노조와의 협상과 관련해 “성과 중심의 투명한 인사와 보상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으며, 고성과자에 대한 과감한 보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회사는 그동안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 인상을 유지해왔으며, 올해도 평균 4.3% 인상안과 별도의 성과 인센티브를 함께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를 ‘성과 중심 인사제도 도입 원년’으로 삼고, 상위 성과자에게 집중 투자하고 일률적 인상을 지양한다는 입장이다.
한컴 관계자는 이날 결의대회에 대해 “공식 입장은 이전 발표로 이미 밝혔고, 이번 사안에 대한 별도의 입장은 없다”며 “노조의 모든 활동에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에 인사정책과 관련한 자료는 발송한 적 있다”고 말했다.
한컴노조는 향후 순환파업과 본사 앞 무기한 피켓 시위, 자회사와 연대 파업 등 추가 행동도 예고한 상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곽중희 기자>god8889@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