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 폐기하지 말고 학교 선택에 맡겨 달라”

“AI 교과서, 폐기가 답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가 상황에 맞춰 재량껏 골라 쓸 수 있도록 기회를 계속 달라” (김재원 엘리스그룹 대표)

새 정부가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려하자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들의 저항이 거셉니다. 교과서가 아니면 정부의 예산 지원이 어렵고, 의무가 아니라면 학교들이 굳이 돈 들여 AI 디지털교과서를 쓰려 하지 않을 거라 보기 때문이죠. 명목은 지위 격하지만, 사실상 폐기라 여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AI 디지털교과서를 졸속 도입했고 학교 현장에서 채택률도 낮아 효용성이 적다 보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상황이고, 본회의에 상정되면 처리가 유력해보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을 쓰게 바라보는 곳은 출판사 뿐만이 아닙니다. AI 교과서가 잘 돌아가도록 인프라를 만들고, 챗GPT와 같은 AI 챗봇을 교육용으로 만든 곳도 지금의 상황을 안타깝게 봅니다. 김재원 엘리스그룹 대표의 이야긴데요. 김 대표는 최근 있었던 국회 간담회에 참석해서 “비용을 낮추고 보안을 강화한 모듈형 소형 데이터센터를 AI 교과서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면서 “현재 10만명이 쓰고 있을 만큼 실 수요처가 있는 사업을 갑작스레 없애지 말고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습니다.

엘리스그룹은 원래 코딩 교육 실습 플랫폼을  만드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입니다. 그러다 플랫폼을  값싸고 효율적으로 돌리려 서버를 만들었고,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죠. 최근에는 비용 효율성을 강조한 이동형 모듈러 데이터센터(PMDC)를 만들었습니다. AI 교과서 사업을 준비하면서는 AI 튜터봇  ‘AI 헬피’를 개발했는데, 전국의 10만명 중학생이 쓰고 있습니다. 헬피는 170만건 질의응답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한 소규모 언어모델입니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김재원 엘리스그룹 대표(윗줄 맨 왼쪽). 그 옆으로 토론을 공동주최한 한만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형두 국민의힘 위원이 서 있다.

김 대표는 AI 교과서가 이미 학교 현장에서 꽤 쓰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분명한 수요처가 있는 곳이고, 정부에서는 예산을 민간 기업에서는 시간과 돈을 써서 준비했으니 무조건 사업을 엎기 보다는 더 낫게 쓰는 법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AI 교과서가 졸속으로 만들어졌다고 비판하기 전에, 왜 AI 교과서가 현장 도입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더 의미 있게 쓰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만약, AI 교과서를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지난 3년에 걸친 투자는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죠. 

예컨대, 지난 3년간 엘리스그룹은 AI 교과서가 요구하는 보안 수준을 맞추기 위해 클라우드 서비스 보안인증(CSAP)을 SaaS와 IaaS 양쪽 모두에서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클라우드 인프라와 에듀테크 솔루션 양쪽에서 요구 받는 보안 검증을 다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22일 <바이라인네트워크>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는 “AI 교과서라는 지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검증 프로세스가 있는데, 단순히 교과 내용이 괜찮으냐를 넘어서 교육부 방침에 따라 데이터를 파인튜닝하며 욕설 등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검증을 모두 통과했다”고 그간의 시간과 비용, 노력을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AI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이 지금도 어느정도 각 학교의 재량에 맡기고 있는 만큼, 지금의 정책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교과서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더 봐야 한다고도 지적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새로운 것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람들이 편하게 쓰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보수적인 공교육 환경에선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더 들겠죠. 그러니, 시행한지 6개월도 안 돼서 “이건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란 이야깁니다.

아울러, 지금 AI 교과서가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것들에 대해서는, “공교육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을 모두 넣어 통과시키다보니 사용성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부분들은 의견을 청취해 보완해 나가자”라고도 제안합니다. 성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교육에 들어가는 AI 교과서는 언어나 문화, 장애 문제로 차별 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이런 요소를 고려해  AI를 개발, 배포한 경험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김 대표의 통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AI 교과서도 시장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온 AI 교과서 중 어떤 것은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선 채택률이 올라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막지말고 오히려 AI 교과서의 경쟁을 치열하게 해서, 질 좋은 서비스가 나와야 공교육에도 이바지가 된다는 것이죠. 그는 “학교와 교사의 상황에 맞춰 재량 껏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좋겠다”면서 “AI 교과서 도입이 확산될 것을 고려해 학교 현장엔 사교육 대비 에듀테크 솔루션을 4분의 1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었다”고도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AI 교과서의 수출 가능성도 논했습니다. 현재 대만과 싱가포르 정부에서도 AI 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아젠다를 세우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를 시도한 우리나라의 사례를 참고 중이라고 합니다. 엘리스그룹도 그 경험을 갖고 현지와 협업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김 대표는 “정책적으로  AI 교과서가 끝난다고 하면, 우리가 그들한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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