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건립, 국산 AI 반도체에 ‘기회’ 될까
최근 AI 데이터센터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SK텔레콤(SKT)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첫 삽을 떴다. GPU(그래픽처리장치)가 6만장 들어가고, 103MW(메가와트)의 총 전력 소비량이 예상되는 국내 최대 규모다. 이 데이터센터는 2027년 11월 40MW 규모로 1차 가동한 뒤 2029년 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이달 말까지 한국에 두 번째로 지은 자사 데이터센터를 공식 가동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생성형 AI 서비스가 다방면에 도입되면서 AI 인프라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제2 데이터센터를 세웠다. AI 이용률이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추가 건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을 추진하는 등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민간 기업과 협력해 AI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국내 기업·연구기관·대학 등에서 AI 기술을 개발·활용하는 데 필요한 연산 자원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데이터센터가 늘면 AI 반도체 기업은 웃는다. 칩을 더 많이 사가는 큰 손님이 생기는 셈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엔비디아와 AMD가 시장을 대부분 차지한 시장에서, 새 파이가 생기는 만큼 그동안 위축됐던 국내 AI 반도체 기업은 매출처를 만들 가능성이 생기는 한편 자사 제품의 성능을 알릴 기회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데이터센터 건립 호재를 기다리는 회사 중엔 리벨리온이 있다. 특히, 울산 데이터센터에 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1차 가동되는 시기와 리벨리온의 차기 AI 칩 ‘리벨’의 예상 출시 시기가 맞물리기 때문. 리벨은 현재 판매 중인 ‘아톰’처럼 추론에 특화한 NPU다. 대규모 데이터센터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개발 중이다.
SK그룹은 리벨리온의 2대 주주인 만큼 이 회사의 AI 반도체 칩 사용을 외면할 이유는 없다. 리벨리온 입장에서는 울산 데이터센터에 칩을 납품하고 완성도를 증명하는 게 향후 고객사 확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기업 내부 AI 모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AI 서비스에 칩을 납품해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데이터센터를 건립, AI 반도체 시장의 수요를 끌어내주길 기대하는 곳도 있다. AI 반도체의 경우에는 “이 칩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성능을 낸다”라는 검증을 해야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런 검증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이퍼엑셀은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AI 반도체 스타트업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 주도의 데이터센터에서 국내 AI 반도체 실증 레퍼런스를 많이 만들어야 해외 기업에 칩을 판매하는 게 수월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일반 기업에서는 굳이 기존과 다른 칩을 구매해 테스트하는 위험 부담을 지면서 실증에 나서지 않으니, 이런 역할은 공공이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다만,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아무도 응찰하지 않아 벌써 두 차례나 유찰됐다. 투자 부담이 높고 수익 모델이 명확하지 않은데, 정부는 민간 기업의 과도한 이익을 견제하겠다며 51%의 지분을 갖는 특수목적회사(SPC) 구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진원 하이퍼엑셀 최고기술관리자(CTO)는 해당 사업을 주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장관 후보로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지목된 점을 거론하면서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의 전제 조건이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분구조나 지원 등 세부 요건이 변경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나서서 지은 데이터센터가 기대 만큼 많은 국산 칩을 사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AI 학습에 필요한 GPU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실질적으로 AI 서비스 구동에 활용하는 NPU 구매에 소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은 주로 NPU를 개발하고 있으니 촉각을 곤두세울 만하다.
엔비디아가 지배한 AI 시장에서, GPU 대신 AI 반도체를 더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 왔다. 예컨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지난 3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서 GPU 확보만 언급한 게 아쉽다”며 “AI 인프라를 구축할 때 학습용과 추론용을 동시에 갖추고 엔비디아와 비 엔비디아 제품 2기종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AI 시장에서 추론용 시장이 커지고 있음으로, 추론에 적합한 AI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들의 제품에도 관심을 가져달란 이야기다.
아울러,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GPU를 하나 사서 쓰는 것이 칩을 하나 구매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GPU 생태계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박 대표는 “엔비디아 GPU에만 의존하면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를 비롯한 인프라가 엔비디아로만 구성돼, 이후 다른 하드웨어를 추가하기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당초 국가 AI 컴퓨팅센터 사업 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국산 NPU 비율을 50%까지 올릴 예정으로 명시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19일 2차 추경안을 편성하면서 국산 NPU 조기 상용화를 위한 개발 지원에 300억원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 20여곳에 10억~20억원씩 지원해 맞춤형 설계와 디자인 지적재산권(IP) 활용을 돕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인 정책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인프라 구성 단계에서 NPU 포함을 바라는 업계가 사업의 진척과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병찬 기자>bqudcks@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