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플랜비 “값싸고 쓰기 편한 데 있다면, 굳이 쿠팡 갈 일 있나요?”
제5회 이커머스 피칭페스타 본선 진출팀 릴레이 인터뷰① AI 쇼핑 집사 ‘민트’를 만드는 플랜비
“동기 좋다는 게 뭐냐”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 건, 이용택-김재민, 두 플랜비 공동대표를 봤을 때다. GS 홈쇼핑 동기로 만난 이들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나와서, 같이 맨땅에 헤딩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심지어는, 회사의 1년 후배였던 한예솔 이사를 “우리가 너를 평생 책임진다”고 꼬셔서 회사로 모셔왔다. “우리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자신감의 발로다.
말 그대로 플랜비는 빠르게 돈을 벌었다. 2021년 창업해 지난해 매출이 324억원이다. 플랜비의 시작은 브랜드를 대행해 판매하는 벤더다. 내 브랜드 남의 브랜드 할 것 없이 가져다 홈쇼핑을 비롯한 여러 채널에 판매했고, 각 브랜드에 컨설팅을 하면서 이문을 남겼다. 김재민 대표의 표현으로는 “우리는 문어발”이라고 했는데, 회사의 모든 직원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도록 장려했다. 그 결과,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를 창업해 현재는 서른개 매장으로 확장했다.
회사가 흑자전환하면서, 플랜비는 원래 꿈꿔왔던 걸 진짜로 해보기로 했다. 사람들의 쇼핑 경험을 혁신하겠다는 것. 때마침,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도 생겼다. 챗GPT를 대표로 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이다. 여기에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를 결합해 사람의 구매 의사결정을 돕고(혹은 제안하고), 결제까지 지원하는 AI 쇼핑 비서, ‘민트(MINT)’를 만들었다.
쇼핑 편의를 돕는다는 서비스는 그간 많이 나왔다. 하지만, 결제까지 이어지는 솔루션을 실제 상용화한 곳은 찾기 어렵다. 민트는 현재 초기모델(MVP) 개발을 완료한 상태로, 현장에 접목을 준비 중이다. 플랜비는 민트를 자체 플랫폼에서도 사용하지만, 솔루션 그 자체를 다른 유통 플랫폼에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AI 쇼핑 비서가 말이 쉽지, 사실은 하나부터 열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예컨대, 이용자가 휴지를 하나 고르더라도 각자의 취향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어떤 기준으로 추천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플랜비는 어떻게 해결하려 할까? “변수가 많은 콜드체인 프렌차이즈, B2C 사업을 운영하면서 AI 경영을 위한 데이터를 실전에서 쌓아왔다”고 말하는 김재민, 이용택 공동 대표와 한예솔 이사를 서울 선유도에 위치한 플랜비 사무실에서 최근 만났다.

이름이 왜 플랜비(B)인가? 플랜에이(A)가 아니라?
김재민 플랜비 공동대표(이하 김재민)= 모두 본인 사업을 할 때는 최고의 계획을 세워두지 않나. 그렇지만 항상 실패하고 우리를 찾는다. 우리가 플랜B가 되어 드리겠다는 뜻이다.
이용택 플랜비 공동대표(이하 이용택)= 플랜 베터(better, 더 낫다는 뜻)라는 뜻의 약자이기도 하다.
창업 3년 만에 매출을 324억원이나 냈다.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새로운 일에도 도전한다
이용택= (그간의 유통 환경을 보면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좀 더 고객지향적으로 할 수 있을까, 커머스를 좀 더 혁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창업 후 답답함을 느꼈다는 말인가?
이용택= 아니다. 민트는 5년 전부터 생각해 온 모델이다. 쇼핑을 대신해 주는 집사가 있으면 어떨까, 우리끼리 매일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면서 토론을 많이 했다. 나름대로 유통 전문가다 보니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우선은 벤더를 하자고 한 것이다. 이제 돈을 좀 벌다 보니, “그럼 이제 진짜 우리가 생각했던 혁신적인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술적으로도 요새 GPT도 활용할 수 있고, 아마존도 혁신을 정말 많이 하지 않나. 때가 왔다고 봤고, 우리와 정말 마음이 잘 맞는 투자자나 사람들이 있다면 같이 뜻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이커머스 피칭페스타에도 본선 진출을 희망했다.
AI 쇼핑 에이전트는 많은 곳에서 하겠다고 이야길 한다. 그런데 아직 구현한 데가 없나?
김재민= 잘 없더라. 예를 들어, 쿠팡에서 세제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쿠팡 내부에 있는 데이터베이스(DB)를 다 긁어와서 좋은 점 나쁜 점을 하나하나 다 분석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민트는 쿠팡같이 수만가지 상품을 갖고 있지 않다. 정말 소규모의 상품만 보유하고 있다.
소규모 상품을 보유한 게 커머스 플랫폼의 장점이 되나?
김재민= 코스트코나 홈쇼핑 같은 형식이라고 보면 된다. 코스트코도 한 카테고리 당 3~4개 내외로 적은 종류의 상품을 구비하고 있다. 우리도 같은 방식을 이용, 물류를 굉장히 효율화시켰다.
쿠팡이나 컬리는 수만가지 상품이 있다. 그러나 실제 매출은 몇 가지 제품에서 일어난다. 기저귀도 두 개 브랜드 상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두 브랜드의 상품만 매입해도 80%의 매출을 커버할 수 있다.
적은 양만 집중 매입해서 (필요한) 인력이나 공간을 줄이고 물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홈쇼핑과 같은 거점 창고가 많으므로 우리만 쓰는 별도의 창고를 구비할 필요도 없다. 당일 배송을 하는 곳과 협업도 가능한 구조다.
그렇게 하려면 민트가 쿠팡보다 싸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지 않나?
김재민= 최저가 보장제를 시행하고 있다. AI가 실시간으로 최저가를 확인한 다음, 최저가가 맞다고 판단했을 때 구매가 이뤄진다. 만약에 최저가가 아니라고 판단이 됐을 때는 AI가 (최저가보다) 알아서 가격을 내려 싸게 판다.
손해 보면 어떡하나?
김재민= 손해 보지 않는다. 우리가 소품종을 대량으로 매입을 하다 보니 구매력이 있어, 브랜드사로부터 훨씬 (가격이)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받아올 수 있게 만들었다.

알아서 싸게 판다는 것은 최저가보다 10원이나 100원 정도 무조건 깎는 알고리즘인가?
김재민= 그렇다. 최저가보다 싸게 공급하게 알아서 깎는다.
이용택= 기본적으로 상품 가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폐쇄몰과 유사한 형태다. 우리가 최저가인데 외부에 가격이 공개 되면 다른 대형 플랫폼들과 가격 경쟁이 붙는다. 예를 들어 쿠팡은 낮은 가격을 추종한다. 그래서 경쟁 플랫폼에서 치약을 싸게 팔면, 그 최저가에 맞춰 가격을 내린다. 우리는 그걸 방지하고, 외부 가격과 대비해서는 더 싸게 파는 전략이다.
모든 상품에 이런 전략은 어려워 보인다
김재민= 그래서 우리는 ‘생필품’을 먼저 공략한다. 예를 들어 ‘패션’은 고르는 재미가 있는 상품이다. 그렇지만 휴지나 치약과 같은 상품은 고르는 재미보다는,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상품을 빨리, 싸게 사는 게 더 편하다. 인기 있는 브랜드도 한정되어 있다. 이런 제품에 대해서는 브랜드 소구력이 강한 소수의 제품을 값싸게 추천하는 시스템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봤다.
이용택=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소비를 창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일년에 곽티슈를 12개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게 실제로 떨어졌는지 안 떨어졌는지 내가 평소에 알긴 어렵다. 평소의 소비 패턴 데이터를 갖고 있다면 AI 에이전트가 적당한 때에 “너 곽티슈 떨어졌잖아”라고 말을 걸 수 있다. 확인했더니 진짜 떨어졌다면? “와, 얘가 내 필요를 다 알고 있다” 이런 느낌도 주고 싶다.
내 정보는, 예를 들어서 세탁 세제를 한 번 구매하게 되면, 내 세탁기의 대략적인 사양을 알게 되고 그런 건가?
이용택=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처음에 취향을 고르라고 하듯, 맞춤형이 된다. 우리 집에는 LG전자의 어떤 제품이 있고, 이런 식으로. 그럼 거기에 맞는 제품을 소비 패턴에 맞게 추천하거나, 혹은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민트로 확보한 데이터를 더 활용할 방안이 있나?
김재민=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 쇼핑몰은 특정 치약이 많이 팔렸을 때 그 이유를 MD들이 분석한다. 가성비가 좋은지, 제품이 좋은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용자가 직접 “이거 좀 비싼 거 같아, 좀 더 가성비 좋은 거 없어?”라거나 “불소 함량이 높은 제품은?”이라는 식으로 대화를 한다. 완전히 개인에 최적화된 DB가 나오는 거다. 이런 DB를 가지고 타 홈쇼핑, 쇼핑몰과도 연계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이용택= 저희가 보기엔 홈쇼핑이 간지러운 데가 생각보다 되게 많다. 영업, 마케팅, CS, 물류 파트 전부 다. 이런 영역을 모두 AI 기술을 기반한 민트를 통해 긁어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이커머스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수익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약간 낭만적인 생각도 한다.
민트를 자체적으로도 활용하지만 다른 플랫폼에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곳들도 이런 솔루션의 필요를 느끼나?
김재민= 필요를 느끼지만 가장 걱정하는 것은 보안이다. 그래서 아예 민트라는 솔루션을 해당 플랫폼에 이식하려고 한다.
이커머스 피칭페스타 참가한 계기는?
이용택= 퇴사 후 3년 동안 유통 사업을 하며 회사를 꽤 키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객경험과 플랫폼의 비효율은 영원히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았다. AI비서가 대신 쇼핑해 주는 편리한 플랫폼, 그리고 그 플랫폼으로 수익을 내는 회사를 꿈꿨다.
이커머스 피칭페스타 본선에 진출하면서 내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조언과 기회를 얻고 싶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김재민= 처음에는 생필품 중심으로 한 반복 구매 구조를 안정화하고, 민트로 고객이 편리한 쇼핑체험을 만들고 싶다. DB를 쌓으며 추천 정확도, 운영 효율도 더 높여서 소품종 대량매입, 물류 효율화를 통한 회사 수익을 내는데 집중하겠다.
이용택= 혹시 좋은 기회를 얻어 투자를 받게 된다면 고관여 제품군(뷰티, 건강식품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하고 정기배송이나 초개인화된 추천같은 기능도 추가하고 싶다. 어느 정도 DB가 쌓이면, 홈쇼핑이나 온라인 플랫폼들과 API를 연동해서 민트를 더 많이 쓰게 하고자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