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셧다운제 재현될라…인터넷산업 전문가 제언 살펴보니
‘2024 인터넷산업규제 백서’ 발간
10명 학계 전문가 제언
‘플랫폼이 나쁘다’ 전제 이어져
진흥 없이 규제 강화 전망만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이 최근 ‘2024 인터넷산업규제 백서’를 발간했다. 21대 국회 전체 임기에 걸친 인터넷산업규제 입법평가 결과는 100점 만점에 평균 25.3점으로 중하위 수준이다. 백서 조사가 진행된 4년 동안 최저 점수였다.
<관련기사: “규제입법평가 여전히 과락…더 나빠져” 인기협 진단은?>
백서엔 10명의 학계 전문가 제언이 다수 포함돼 있다. ▲2024년 플랫폼 산업 전반에 대한 평가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플랫폼 산업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를 3인의 연구자가 삼각검증으로 분석해 결과의 편향을 줄였다. 곱씹어 볼만한 주요 제언의 내용을 소개한다.
규제와 부정적 시각으로 어려운 한 해를 보낸 인터넷 산업과 관련해선 ‘게임 셧다운제’가 언급됐다. 셧다운제는 여성가족부 주도의 청소년 보호논리를 우선시해 오히려 기본권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야기한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당시 ‘인터넷 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새벽 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면 안 된다’는 일정 시간 접속 차단 규제가 진행됐다. 그러나 입법 취지처럼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컸고, 산업의 위축과 각종 부작용을 불러왔다. 결국 시행 10년 만에 폐지됐다.
되짚어보면 셧다운제 폐지도 거듭된 내부 자성의 목소리보다는 예상치 못한 외부 자극이 계기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계정통합 조치로 세계적인 인기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청소년이 못하게 되는 사태가 발발하자, 셧다운제 폐지 여론이 급물살을 탄 것이다.
“현 시점에서 플랫폼 관련 규제는 플랫폼이 나쁘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졌다. 이런 규제를 당연히 업계를 크게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과거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셧다운제는 제정 10년 만에 폐지가 됐다. (중략)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쟁환경이 치열해지는데 정부는 도와주지 않고, 과도한 규제를 동원하면서 전체적으로 산업이 많이 위축될 수 있다.”

이해와 철학이 없는 플랫폼 산업 규제를 꼬집는 제언도 여럿 있었다.
“정부가 플랫폼 산업을 바라보는 입장은 첨단신산업이 아니라 기존 전통 산업에서 조금 발전된 산업에 가깝다. (중략) 기존 산업을 갉아먹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때그때 문제가 생기면 플랫폼에 책임을 묻는 형태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끼리 잘 연결도 되지 않는다. (중략) 철학과 목표가 설정되고 나면 수단은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목표가 없어서 규제 수단 설정에 혼란이 온다.”
“정부가 혹시 모르는 가상적 리스크까지 자꾸 많이 생각을 한다. 왜 이런 가상의 리스크를 생각하는지 보면, 정부가 기술과 새로운 산업에 대해 잘 모르고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권한 강화에 몰두하는 정부 태도를 질타하는 발언도 나왔다. 조직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하는 행태는 계속 지적된 바 있다.
“규제 당국은 2년 후면 자리가 바뀌기 때문에, 책임을 과하게 지면서까지 새로운 산업에 맞는 혁신적인 결정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강력한 수비 기능을 가진 기관이 변화를 가로 막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규제하는 부처는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반대편에서 진흥을 담당하는 부처가 산업 진흥을 위해 수위 조절을 해줘야 하는데 (중략) 결국 플랫폼 산업을 진행하려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부분 영역에서 진흥보다 규제가 더욱 강한 상황이다. 인터넷 실명제나 게임 셧다운제도와 같이 자유 민주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제도가 국내에 도입됐던 사례가 있고, 정부의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내수 시장이 갇힌 한국의 플랫폼 산업의 현실을 진단했다. 현재 플랫폼 산업은 미중 양강구도로 심화되고 있으며, 미국 빅테크를 견제하던 유럽도 본격적인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세계 각국이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한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한국의 디지털 시장은 일정 수준까지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인구 규모와 자본 시장의 한계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규제와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한국에 딱 맞는 서비스 품질을 보유했으나, 글로벌 진출에는 장애물이라고 봤다.
“플랫폼의 강점은 동일한 서비스를 글로벌 시장에 동일한 형태로 확장하는데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과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한국만의 독특한 모델을 만들며 성장했다. 이러한 방식의 사업 모델은 기업의 수익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내 플랫폼 기업이 규제의 경제를 이루려면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다. 기업을 이를 적극 추진하고, 정부도 지원을 해야 하지만 오히려 국내 시장에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주변 기술이 통합되며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기업과 자유 경쟁을 통한 생존 전략을 현실적으로 어렵고,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2025년 이후 플랫폼 산업 예측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다수 전문가들이 국내 규제 강화를 우려했다. 현재 한국은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등 플랫폼 대상의 강한 규제를 논의 중으로, 올해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규제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사우대 규정은 너무 광범위하고, 입증책임 전환으로 경쟁제한성을 사업자가 입증하도록 되어있다. 인공지능기본법도 고영향이라는 개념으로 EU의 AI Act보다 적용범위가 넓어졌다.”
“2025년엔 여러 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크다.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재 플랫폼 관련 법안들의 골격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부처 간 이해관계만 조정한 상태로 법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지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그 피해는 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전체 서비스업과 연관 지어 플랫폼 산업을 바라봐야지, 너무 플랫폼의 중요성을 한정 지어 생각하진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서비스 개선을 이루는 것을 혁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너희가 무슨 혁신을 하기에 수수료를 받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적인 생태계가 구현되긴 어렵다.”
“지금 플랫폼이라고 하며 검색, 배달, 이커머스 정도의 범위를 생각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첨담기술들이 녹아서 우리가 생각했던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모든 산업이 총집합될 것이다. 플랫폼 문제를 넓게 보면 결국 우리 미래를 좌우하는 사업일 수밖에 없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