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플랫폼 산업 강타한 AI·라인·김범수·웹툰
2024년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이 폭포수처럼 쏟아진 해였다. 작년보다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텍스트를 거쳐 영상과 이미지 생성이 가능한 멀티모달 AI 모델이 앞다퉈 나왔고, 다방면에서 뛰어난 추론 성능을 보이는 버전업 모델도 속속 나오고 있다.
글로벌 주요 모델로는 ▲오픈AI의 GPT-4o ▲구글 제미나이 2.0 ▲메타 라마(llama)3 ▲앤트로픽 클로드3 ▲미스트랄AI의 미스트랄 라지 등이 있다. 국내엔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카카오 카나나 ▲삼성 가우스2 ▲LG 엑사원 등이 있다.
AI 시장에서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자본력과 인력 규모 등을 감안했을 떄 미중 경쟁이 본격화됐다. ▲텐센트 훈위안(Hunyuan) ▲바이두 어니(Ernie) ▲바이트댄스 더우바오(Doubao) ▲알리바바 큐원(Qwen) ▲딥시크(Deepseek)의 ‘딥시크-R1’ 등이 있다.
이런 가운데 AI 모델 경쟁이 빅테크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한국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린지 오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들의 엔비디아 호퍼 AI 칩 물량 확보전은 무서울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48만5000개, 메타는 22만4000개, 아마존은 19만6000개, 구글은 16만9000개로 파악된다. 일론 머스크의 xAI도 호퍼 AI 칩 20만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플랫폼 인터넷 산업을 AI가 강타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4년 넘게 법안 병합과 폐기, 논의를 거친 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일본 정부의 라인(LINE) 경영권 매각 압박도 있었다. 이른바 라인 사태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의 구속은 업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나스닥 상장은 웹툰 종주국인 K콘텐츠의 우수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AI 기본법’ 국회 통과…환영 속 업계 우려도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 이후 전 세계 2번째로 AI 관련 법을 갖추게 됐다. 2020년 국회에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이후 4년 넘게 19건의 다양한 법의 병합·폐기를 거쳐 지난달 상임위 문턱을 넘어 국회 통과했다. 법 시행 시기는 1년여 경과를 두고 2026년 1월부터다.
AI 기본법은 건강한 산업 발전을 위해 마련된 법이다. AI 기술 오남용 등 부작용 방지에도 초점을 뒀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당초 규제 최소화를 원칙으로 내세웠으나, 선행주자인 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참고하면서 강력한 의무 규제 사항을 실어 각계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EU DMA와 DSA는 유럽 내 뚜렷한 입지의 AI 기업이 없는 가운데 데이터 활용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오면서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규제법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AI 기본법을 국내 산업 진흥 중심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상당 기간 논의가 길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 인선 불협화음과 이후 공영방송 주도권을 놓고 정치권 다툼이 길어지면서 AI 기본법 제정 지연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업계는 AI 기본법에 담긴 AI 발전을 위한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설치 등 정책 지원, 창업 등 산업과 연구개발(R&D) 지원, AI 신뢰성 근거 마련 등 내용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이나, 고영향 AI 추가 규제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AI 기본법 제40조(사실조사 등) 조항 관련해 조사권 오남용 우려를 제기한다.
법안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고를 받거나 민원이 접수된 경우 사실조사 명분으로 사업자의 사무소, 사업장에 출입해 장부, 서류, 그 밖에 자료나 물건을 조사할 수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에도 영장 제시 등의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나, AI 기본법에 담긴 조사권엔 조사 대상의 권리보호를 위한 조항이 없다. 한마디로 불완전한 조항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과도한 규제 부담이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거나 최악의 경우 한국 내 서비스 철수도 가져올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대한 조치로 관련 조항 삭제와 함께 피조사자 권리 조항 추가가 거론된다.
‘라인(LINE)’ 경영권 넘어가? 일단 스톱
네이버가 띄운 일본과 동남아 지역의 국민 메신저인 ‘라인(LINE)’을 두고 지난 4월부터 한달여 간 온나라가 떠들썩했다. 라인 경영권 탈취 우려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라인 운영권을 쥔 라인야후 모회사 A홀딩스의 네이버 지분(50%) 매각 압력을 행사하는 등 민간 기업 대상으로 유례없는 움직임을 보인 까닭이다. 이른바 ‘라인(LINE) 사태’다.
라인 사태는 2023년 11월 라인야후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로 인해 불거졌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총 30만2569건의 개인정보 유출이 확인됐고, 이 중 일본 이용자 계정은 12만9894건으로 조사됐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네이버클라우드 협력사 직원 PC가 서버를 감염시켜 관리자 권한이 탈취되면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전부터 일본 정부는 라인의 개인정보 시스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민간의 영역은 물론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라인 공식 계정을 활용해 대민 서비스를 하는 까닭이다.
올해 3월과 4월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행정지도를 내렸고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를 넘어 ‘경영 체제의 재검토’까지 언급했다. 이후 라인 사태가 본격화했다.
당시 총무성은 “재발을 확실하게 방지하기 위해서 단지 일부 시스템 네트워크의 기술적 분리 조치 등을 강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보안 위험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위험을 감안한 실효적인 대책을 실현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를 모회사 등을 포함, 그룹 전체에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위탁처(네이버)로부터 자본적인 지배를 상당 정도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네이버가 라인 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로 읽혔다. 다음달인 5월, 네이버는 A홀딩스의 나머지 지분을 가진 소프트뱅크와 지분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공식화했다. 세간에선 일본 정부가 네이버를 압박해 기술력은 물론 경영권까지 탈취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디지털 영토 침탈 수준으로 라인 사태가 격상했다.
사실 네이버의 속내는 ‘제값을 쳐준다면 못 팔것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라인야후 이사회에서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가 물러나는 등 실질적인 경영권을 잃어버린 어려움 속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차선책이다. 글로벌 AI 기술 경쟁이 격화하면서 실탄이 필요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판단이 일본 정부의 압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후 일본을 향한 부정 여론이 확대일로 상황에 놓이면서 사실상 양사는 매각 협상을 멈췄다. 양국 정부도 네이버도 소프트뱅크도 모두 부담되는 상황인 까닭이다. 언제든 협의는 재개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지금까지 상황에선 소프트뱅크가 유리한 입지다. 라인야후 이사회를 장악한 가운데 네이버가 쥔 A홀딩스 1주라도 더 가져간다면 마음놓고 라인을 지배할 수 있어서다.
‘김범수 구속과 보석’ 흔들리는 카카오
카카오가 충격에 빠졌다. 법원이 지난 7월 23일 새벽,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이자 경영쇄신위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에 개입했다는 혐의다. 업계는 영장 발부에 대해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뒀으나, 발부 이유를 두고 “과한 것 아니냐”는 대체적인 반응이 나왔다.
당시 법원은 김 위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연 뒤 새벽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신분이 확실한 기업 총수에겐 이례적 조치다. 김 위원장은 카카오 경영진 수사과정에서 출국금지 상태였다.
김 위원장은 어린 시절 가족과 단칸방에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이른바 흙수저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다. 김 위원장은 수많은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하고 일부는 계열사로 끌어들이면서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를 한체급 키웠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2021년엔 당시 재산(지분가치)의 절반인 약 5조원의 기부를 약속하는 등 존경과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랬던 김 위원장이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자 업계 역시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선 카카오와 계열사들은 현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기업으로 통했다. 주가는 연일 하락세였다. 그의 공백으로 인해 카카오의 쇄신에 의구심을 보내는 시선도 있다.
따지고 보면 카카오는 총수 구속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도 구조조정 부침을 딛고 수익성 개선을 이뤄내는 등 연간 기준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 중이다. 그럼에도 카카오 주가는 3만원대에 안착한 모양새다.
지난 10월 법원은 김 위원장 구속 101일 만에 보석을 인용했다. 김 위원장은 첫 공판 이후 보석 심문에서 “수백건 회의에 참여하면서 한 번도 불법 승인을 내려본 적이 없다”며 “검찰이 카카오측이라며 내가 하지도 않은 수많은 것을 얘기하는 데 너무 답답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공판에선 ‘평화적으로 가져오라’는 지시 여부를 두고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검찰은 SM엔터 인수를 성공시켜라는 의미로, 변호인측은 기존 입장에 반하는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평화적으로 (SM엔터를) 가져오라’고 명시적인 지시를 했다고 보고 “더 이상 늦추거나 실패하지 말고 SM을 가져오라는 취지다. 평화적으로라는 말은 하이브와의 경쟁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위원장 변호인측은 “검찰의 주장처럼 평화적으로 단어를 전면에 나서지 않고 시장에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SM을 가져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 당초 계열사 확장이나 SM 인수에 부정적이었고 적대적 방식의 인수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했던 김범수가 갑자기 인수를 지시하고 돌변할 계기가 전혀 없다”고 맞받았다.
지난 12월 13일, 법정에 선 이진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김 위원장을 두고 “위법행위 발생에 극도로 민감한 상태였다”며 검찰 주장과 달리 외부 여론을 의식해 적대적 방식의 덩치 불리기는 꺼렸다고 짚었다. 또 그는 “말단 비서에게도 ‘가져오라’는 등 수직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고 김 위원장의 행실을 부연했다.
재판은 관련 증인이 많은 관계로 해를 넘겨 상당히 길어질 조짐이다. 법원은 2차 공판에서 늦어도 내년 7월 말 이전까지 관련 사건의 증거조사를 마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쟁점별로 여러 기일에 거쳐 변론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나스닥으로 날아간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본사 이름은 웹툰)이 올 6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당시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26억7000만달러(약 3조7000억원). 공모 희망 밴드 상단인 21달러에 1500만주를 기업공개(IPO) 발행했다. 네이버웹툰의 상장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감상(?)을 불러 일으켰는데, 문화 주변국이라 느껴왔던 한국이 글로벌로 먹힐만한 콘텐츠의 종주국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스닥 상장의 바탕에는 네이버웹툰 자체가 꽤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깔렸다. 웹툰의 종주국 한국에서, 네이버웹툰은 압도적 1등이다. 최근에는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 측에 따르면 웹툰엔터테인먼트의 사용자는 올해 1분기 기준 1억7000만명이다. 월간활성이용자(MAU)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2470만명 (15%), 2110만명(12%)에 나머지 지역에서 1억2320만명(73%)을 기록했다.
창작자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것도 웹툰 측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지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창작자에게 지급한 누적 금액이 28억달러(약 3조8800억원)를 넘겼다. 작년 기준 창작자 2440만명에 이들이 올린 5510만편의 작품을 보유했다. 연간 100만달러 이상 수익을 올리는 창작자는 2023년 글로벌 기준 483명이다.
이런 수치에도 불구하고 웹툰의 주가는 지속 떨어지고 있다. 현재 시가는 13.36달러로, 일년 중 최고였던 25.66달러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는 미국 상장한 국내 기업들의 공통적인 현상인데, 쿠팡도 그렇다. 쿠팡이나 네이버웹툰이나 모두 국내에선 일등 기업이지만, 미국에선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했으면, 이보다는 덜 박한 평가를 받을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국내 상장했다면 시총이 1조원대로 기업가치 평가는 훨씬 적게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시장 규모가 작아서다. 나스닥은 부진한 국내 증시에 비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많고, 성장성만으로도 기업가치를 높게 산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야놀자와 토스 등의 기업들도 미국 상장을 목표로 한다. 이들 기업에 투자한 회사들도 엑시트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내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로는 부족하다. 다만, 주가와 거래량이 부진한 기업은 나스닥에서 퇴출될 수 있어 리스크도 높다는 의견은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