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로벌로 진출한 VC 3인의 조언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현장을 가다

스타트업에 ‘글로벌’은 진출해 성공한다면 확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문이 누구에게나 열리진 않는다.

글로벌 진출을 과제 삼은 스타트업은 무엇을 유념해야 하나. 스타트업이 어떻게 하면 글로벌 진출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까? 우리 스타트업들이 현지 진출에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어떠한 네트워크와 자산을 활용해야 글로벌로 쟁쟁한 기업들과 어깨를 견주고 경쟁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이 문제를 목도하고 나름의 길을 개척해온 이들이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전라남도 여수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무대에 섰다.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는 매년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하는 것으로, 주로 벤처투자사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협단체들이 많이 참석한다. 올해 컨퍼런스의 주요 내용 중 ‘글로벌’과 관련한 것을 정리했다.

투자자, 지금 일본에 진출해도 괜찮을까요?

이경훈 글로벌브레인 한국대표

이경훈 글로벌브레인 한국대표가 발표했다. 글로벌브레인은 일본을 중심으로 총 11개국에서 투자 활동을 벌이는 벤처투자사(VC)다. 이경훈 대표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과연 지금 일본 진출에 기회가 있을지를 살펴봤다.

이 대표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일본 스타트업 시장은 매년 약 20%씩 꾸준히 성장해 약 7조~8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한국과 비교하면 다소 작은 규모다. GDP 대비 스타트업 투자 비율을 고려하면 일본은 현재 한국의 2012년 초반과 유사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2022년 기준, 일본의 GDP 순위는 세계 3위지만, GDP 대비 스타트업 투자 금액 랭킹은 11위에 머물렀다.

일본은 경제적 규모에 비해 왜 스타트업 시장이 작을까? 이 대표가 지적한 제일 중요한 부분은 LP(펀드에 자금을 위탁하는 투자자) 구성이다.

일본은 대기업 등 민간 출자 위주로 LP가 구성이 되어 있고, 아직 연기금/정부 차원에서의 출자는 미미하다. 2021년 기준, 미국의 LP 출자자 구성은 연기금/정부가 68%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 기간 일본에서는 연기금/정부 출자 비중이 9%에 그칠 정도로 미미하다. 한국의 경우 모태펀드가 나오고 나서 대략적으로 연기금/정부의 비중이 35%까지 올라온 수준이다.

일본도 이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2022년부터 바뀌고 있다. 일본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국민연금도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포함됐다. 일본은 다양한 정부 기구에서도 투자를 늘려 오는 2027년 까지 스타트업 10만개, 유니콘 100개 목표, 투자금액 10배(10조엔)를 이루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실제로 2022년에 일본 정부 펀드인 JIC로부터의 출자가 매우 크게 확대했다. 일본 스타트업 펀드 전체 출자의 33%까지 확대했는데, 정부 출자금 외에도 일본 내 상장 대기업의 순이익이 역대 최대인 상황에서 이들이 보유한 현금 유보금도 사상 최대까지 올라온 상황. 즉, 대기업 주도로 투자가 이뤄졌던 일본 스타트업 시장에 현금이 더욱 많이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요약하자면, 일본 내에서 더 많은 유동성이 확보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도 유동성이 컸던 2012년에 만들어져, 2020년 경 청산한 펀드의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지금 이 시점에 만들어진 펀드의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정부와 민간 양측에서 더욱 투자가 많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 대표의 이야기다.

따라서, 규모가 다른 투자 시장(시드/ 세컨더리/ 그로스) 전체에서 국내 투자사에도 기회가 올 확률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드(초기투자)의 경우 일본 내 초기 스타트업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지만 현지 VC들의 시드 투자가 아직 미미해 국내 기업에도 시장에 찬스가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B2B SaaS, 딥테크를 주목할 것을 조언했고, 그 중에서도 AI와 SaaS를 강조했다.

다른 투자사의 펀드를 재구매하는 세컨더리 시장의 경우,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로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 세컨더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점을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IPO 시장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는데, 일본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이 빨리 상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스(성장) 시장에서도 국내 펀드에 기회가 있다고 봤다. 큰 금액의 대형 투자건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일본 VC 펀드의 대형화는 아직 미미하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예상되고 있어서다.

한국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일본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게 좋을지에 대한 조언도 내놓았다.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겠다는 욕심보다는 성공을 체험하는 시장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일본에서 전국민이 다 쓰는 동네 서비스를 우리가 만들어낸다는 관점보다는 교두보로 생각해야 한다”면서 “갑자기 미국의 큰 회사와 경쟁은 어렵기 때문에 (일본을 통해) 이런 과정을 한 번 거쳐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동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뜨거운 이유

신유근 쇼룩파트너스 대표

중동 지역의 특성에 대해서는 신유근 쇼룩파트너스 대표가 발표했다. 쇼룩파트너스는 중동에서 가장 큰 VC 중 하나로, 지난 2017년에 신유근 대표와 마무드 아디 공동창업자가 함께 설립했다. 중동과 한국을 이어주는 벤처캐피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 대표는 이날 중동국가 중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현황을 살펴봤다.

중동은 스타트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로, 지난 2017년 이후 7년 동안 시장이 40배가 성장, 현재는 4조원 정도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발전 속도는 계속해 가파를 것으로 예상, 2030년에는 10조원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신 대표는 예상했다. 특히 딜 사이즈가 큰 대규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에 따르면 중동 역시 한국이 밟아온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을 그대로 밟고 있다. 커머스 영역이 2019년까지 굉장히 유망했고, 그 다음으로 핀테크와 딜리버리 영역이 성장했으며 최근에는 B2B, AI, 기후테크 등이 뜨고 있다. 특히 UAE의 경우, 전체 인구의 75%가 35세 이하로 굉장히 젊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 중동국가 중 하나인 UAE의 최근 현황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사우디아라비이가 지난 2019년부터 기지개를 펴고 세계 각국(러시아, 미국, 중국, 인도) 등과 손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UAE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따라서 UAE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동남아시아 등과 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UAE의 국부펀드등이 최근 동남아에 투자를 하고 있고, 한국과도 우호적인 상태를 만들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 아래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떨까? 특히 한국인들이 걱정하는 “안전”의 문제에 대해 신 대표는 “한국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다니고, 신변에 위협을 느낄 것 같지만 외국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2019년 이후, 5년간 급격한 변화가 이뤄졌다. 사우디의 현재 목표는 한국으로, 경제 규모를 키우기 위해 외국 기업 유치를 장려하고 있다.

신 대표는 앞으로 중동에서 열심히 투자하고픈 기업은 “10년은 사우디나 UAE에만 집중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10년에서는 “이집트와 파키스탄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데 큰 도구 역할을 할 것이고, 파키스탄은 독립국가연합(CIS), 터키 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진출을 쉽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냈다. 글로벌로 진출해 성공하면 기업가치가 급격히 뛰므로, 어떻게든 스토리를 만들어 해외 진출을 하려고 하는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돈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한국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10배는 어렵”기 때문에 현지에 대한 공부를 정말 철저히 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해당 국가의 언어를 정말 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남아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과 현지 진출 방안

원대로 윌트벤처빌더 대표

원대로 윌트벤처빌더 대표가 ‘동남아 스타트업 생태계 진출’을 위해 알아야 할 싱가포르 현안을 이야기했다. 원 대표는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계 1호 벤처투자자다. “동남아시아를 정확하게 이해할 것”을 가장 큰 포인트로 지적했다.

먼저 귀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는 “동남아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이 의외로 동남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지적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ASEAN)을 유럽연합(EU)처럼 하나의 국가 시스템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아세안은 일종의 경제 협력단체일 뿐, 하나의 국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부터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남아는 아세안에 들어가 있는 나라들도 각각의 법률과 통화, 시스템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동남아 전체 시장 규모가 예상보다 작다. 주요 6개국 전체의 GDP를 모두 합쳐도 한국의 두 배 수준에 머무르며, 그중에서도 3분의 1은 인도네시아가 차지한다. 한국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3배가 되는 싱가포르도 전체 GDP는 한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동남아에서 테크 기반 스타트업이 나온지는 10년 안팎으로, 한국의 VC나 기업들이 생각하는 스케일업 전략이 그대로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역사가 짧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의 장점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기반한 국가라는 점이다. 특히 최근 홍콩이 제 역할을 잃으면서 싱가포르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싱가포르에 도전하려는 기업들은 무엇에 유념해야 할까? 원 대표의 발언을 요약한다. 첫째, 계획을 갖고 와라.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한 후 계획을 가지고 가야 시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자본도 충분히 확보해라. 정부 지원금으로 동남아 현지에 진출한 스타트업은, 지역을 조금 공부하고 가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VC도 마찬가지. 본사에서 조금씩 승인 받아 쓰는 정도의 작은 규모의 자금력으로는 현지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VC에 돈을 대는 LP 단에서 먼저 글로벌화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LP가 먼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켜야 VC도 해외에서 자유롭게 투자하고, 해외 펀딩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남아 진출을 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로 큐텐을 언급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방식을 가지고 2000년대 후반에 동남아로 진출했으나, 자본력도 부족하고 후발 주자들한테 밀리면서 지금은 동남아에서 싱가포르 정도에서만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시장에서는 완전히 존재감을 잃은 상황이다.

원 대표는 동남아 진출 전략을 잘 짜기 위해선 국가별, 버티칼 별 경량급 전략을 써 출루율을 높이고, 다품종 소량 연합군 전략을 쓰는 등의 동시성과 맞춤형, 희소성을 강화하는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또, 이렇게 출루한 기업들을 나중에 묶어 덩치를 키운 후 M&A를 하거나 해외 IPO를 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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