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0주년 영림원소프트랩은 왜 일본에서 모였나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한 일본 오사카. 한국에서 30년 간 사업을 이어온 토종 기업 직원 전체가 이곳에 모였다. 지난주 내부 시상식을 겸한 기념식과 함께 전사 워크숍을 일본에서 진행했다. 향후 100년 기업으로 갈 초석을 다지고 직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인데, 일본에 모인 영림원소프트랩의 속내는 뭘까.
전사적자원관리(ERP) 전문기업 영림원소프트랩은 향후 성장을 위한 전진기지로 일본을 택했다. 20년 전에도 일본 진출을 꾀했지만 눈물을 머금었던 상황. 이번에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게 권영범 대표의 의지다.
‘아픈 손가락’ 일본 재도전…베트남·인니도 아시아 거점
영림원소프트랩에 일본 시장은 반드시 정복하고 싶은 산이다. 2003년 진출을 도모했지만 파트너사의 파산으로 제품 2개만 팔고 돌아온 아픈 기억이 있다. 다시 2017년 6월 현지 법인 ‘에버재팬(EverJapan)’을 세운 회사는 본격적인 일본 상륙에 돌입한다. 지사가 아니라 아예 현지 법인을 세운 것도 철수를 우려하는 파트너사와 고객사의 신뢰를 사기 위해서다.
영림원소프트랩은 일본의 클라우드 확산 흐름을 기회로 본다. 특히 내년 초 공식 계약을 앞둔 파트너사는 천군만마다. 연 매출 3000억원 이상의 대형 파트너사와의 협력으로 매년 100개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확보한 23개 파트너사 네트워크도 십분 활용한다. 이를 발판 삼아 회사 연간 매출 1억달러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일본은 아직도 수기(手記) 중심 업무문화가 강하지만 되레 ERP를 채택할 고객사가 많다는 뜻도 된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 전환을 강조하는 데다가 민간 기업들의 전환 속도는 더 빠른 것이 반갑다. 시장도 크다. 영림원소프트랩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5배 큰 ERP 시장을 가진 것으로 본다. 압도적인 시장 지배자가 없는 것도 호재다.
클라우드 ERP인 ‘시스템에버(SystemEver)’로 시장을 공략한다. 시스템에버는 이미 한국에서는 깊게 뿌리 내리며 성능을 인정 받은 솔루션이다. 마에다 토모오(Maeda Tomoo) 에버재팬 법인장은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일본 중소기업들은 (대형 ERP 구축을 위한) 자금을 댈 여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시스템에버는 합리적인 가격대와 서비스형소프트웨어 형태로 제공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600만개의 기업이 있는 일본의 디지털 전환 흐름과 맞물려 구독형 ERP가 빨리 확산할 거라는 게 토모오 법인장의 기대다. 지난해 매출 575억원을 기록한 영림원소프트랩은 2030년까지 1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00억원 매출 달성을 계획한다. 이 가운데 일본을 포함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 시장 매출을 20~25%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일본 법인은 이보다 더 원대한 꿈을 내비쳤다. 일본 사업을 총괄하는 박경승 영림원소프트랩 부사장은 “향후 5년내 한국 매출을 따라잡겠다”고 말했다. 일본을 회사 성장동력의 든든한 토대로 자리잡겠다는 뜻이다. 영림원소프트랩은 연 매출 5억엔에서 500억엔 사이의 일본 중견기업 ERP시장을 1481억엔 규모로 추산한다. 이중 5%만 따내도 74억엔, 우리 돈으로 7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박 부사장의 계획에 비춰보면 5년 내 해당 시장의 5%를 차지하는 게 성공 지표가 될 전망이다.
베트남 사업도 일본과 뗄 수 없다. 베트남 현지 기업은 사실 인사나 회계의 투명한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ERP 구축은 거부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베트남이 중요한 건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이 대거 진출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 본사가 베트남 지사를 관리하기 위한 ERP 수요를 흡수하려는 계산이 깔렸다. 일본에 영림원소프트랩 ERP가 널리 보급되면 이들 기업이 베트남 지사를 꾸릴 경우 자연스럽게 베트남 시장도 활성화 되는 구조다. 김진환 베트남 파트너사 대표는 “현지에 진출한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 지사에 대한 공급으로 새로운 ERP 시장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10년 내 매출 1200만 달러, 시장 점유율 5%를 목표로 중견 제조업체를 집중 공략한다. 권오철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ERP를 포함해 플렉스튜디오(Flextudio)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수익성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인도네시아가 중요한 건 개발 인력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국가이니 만큼 인도네시아를 거점 삼아 현지 개발자를 채용하고, 한국 인력은 미래 먹거리인 AI ERP 개발 인력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AI ERP 연구개발 박차…3년 간 역량 집중
영림원소프트랩은 AI에도 힘을 준다. 일본이 시장 개척 성격이라면 AI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기술 토양이다. 지난해 ‘K-시스템(K-System) AI’를 소개했던 회사는 향후 AI를 접목한 ERP 개발에 집중할 예정이다. 권 대표는 “ERP는 AI 베이스로 고도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 3년 내에 모든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해 AI ERP를 제작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AI ERP는 영림원소프트랩이 2030년 비전으로 제시한 ▲매출 1억달러 ▲주가 10만원 ▲임직원 평균 연봉 1억원 ▲아시아 넘버1 ERP 회사로의 자리매김 등 ‘4 ACEs’ 전략의 초석이기도 하다. 기술 기반 연구소와 시스템 경영 연구소를 두 축으로 AI ERP 개발에 집중한다. 기술 기반 연구소는 효과적인 AI 적용 방안을 찾고, 시스템 경영 연구소는 컨설팅을 중심으로 맞춤형 개발 도구 개발에 힘을 쏟는다.
AI를 탑재한 ERP와 개발 도구를 개발해 수익성을 높이고 국내외 2000여기업이 쓰는 K-시스템 에이스(Ace)의 외연을 넓혀 비전 달성을 뒷받침한다. 기업문화 혁신 플랫폼 ‘에버레스크(Everask)’도 조직 내 소통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일본 시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회사의 의지를 알리기 위해 현지 개최한 30주년 워크숍은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인사팀 주도로 2달여간 준비한 행사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올렸다. 오사카 한복판에 짐을 푼 직원들은 3박4일의 현지 워크숍을 즐겼다. 회사는 ‘영림원 GO’ 프로그램을 통해 숙소에 걸린 회사 깃발 사진을 찍거나 직원 단체사진을 찍으면 복지포인트를 주는 이벤트를 여는가 하면, 희망자에게는 패키지 여행 상품도 제공했다. 영림원소프트랩 관계자는 “(깃발은) 영림원이 일본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아시아 넘버1 ERP 회사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워크숍과 맞물린 기념식 행사는 30주년을 넘어 100년 기업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십분 녹아들었다. 직원 공로를 추켜세우는 시상식이 열렸고, 직원들의 축하 공연이 열렸다. 직원 자녀들이 나와 “나도 아빠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영상 메시지에는 모든 직원이 미소 지었다. 또 펜션과 캠핑카, 스파 등 복지 시설이 들어간 제2캠퍼스 구축 계획이 소개되자 직원 일부는 환호성을 보내기도 했다.
30년 내공을 쌓은 영림원소프트랩은 100년 기업으로 영속을 다짐했다. 권 대표는 “일본은 장수기업이 많은 국가”라며 “제대로 노하우를 익혀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