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무엇을 물어보나- CJ오벤터스 데모데이 현장에서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시장의 투자 전문가들이 스타트업에 주로 어떤 질문을 하는지 말입니다. 시장에 돈이 말랐다는 요즘, 투자를 검토하는 이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힌트를 전합니다. 투자를 유치하고 싶은 스타트업이라면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물론, 어떤 질문이 나오는지는 스타트업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하지만요.
참고할 현장은 최근 CJ인베스트먼트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함께 만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오벤터스’의 데모데이입니다. 오벤터스는 식품이나 유통, 콘텐츠 미디어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라이프스타일에 맞닿은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데모데이에는 총 열두팀의 스타트업이 참여해 사업 모델을 발표했고, 다섯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심사위원의 면면이 스타트업 씬에서는 유명한 이들입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대표,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유진 스파크랩 공동대표,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이지혜 KB인베스트먼트 상무가 가상의 투자심사역이 되어 질문을 던졌는데요. 그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아봤습니다.
유형 1) 누가 고객인지, 돈은 어떻게 벌 것인지를 묻는다
가장 기본이자 제일 중요한 질문입니다. 기업은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당장 돈은 못 벌어도 일단 얼마만큼 빨리 성장할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이 2~3년 전 트렌드였다면, 요즘은 투자심사역들도 “당신은 어떻게 자생할 수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수익실현에 대한 구체적 계획에 대한 질문은 요즘 꼭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투자사는 결국 피투자 기업의 주주. 피투자사가 돈을 잘 벌어 기업가치가 올라야 수익실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스타트업이 돈을 잘 벌길 가장 바라는 이들 중 하나가 투자사이기도 합니다.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는 3D 콘텐츠를 만드는 리빌더에이아이에 “주요 고객은 어디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기술 자체는 훌륭해도 이 기술을 쓸 만한 적절한 시장이 없다면 빛좋은 개살구겠죠. 이 기술에 기꺼이 돈을 쓸 사람들이 있다고 보는지를 물은 겁니다. 김정현 리빌더에이아이 대표는 “커머스와 부품 검수에 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김유진 스파크랩 대표는 이날 비즈니스모델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던졌는데요. 그는 AI 커머스 비주얼 솔루션을 만드는 드랩 이주완 대표에게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되는지” 질문했습니다. 드랩은 스마트폰으로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을 AI로 보정하고, 탬플릿 등을 제공해서 마치 스튜디오에서 전문가가 찍은 사진처럼 바꿔주는 솔루션을 만들어 공급합니다. 이주완 대표는 김유진 대표의 질문에 “크레딧으로 관리하고, 월정액 서비스로 제공한다”고 답했습니다. 요즘은 여러 서비스가 월정액 구독모델로 많이 선보이고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장면입니다.
리빌더에이아이는 3D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요즘 커머스의 상품 페이지를 보면 사진을 360도로 돌려가면서 제품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곳들이 있는데요. 리빌더에이아이가 바로 그런 기술을 공급합니다. 이런 3D 사진을 만들어내려면 제품의 모든 부분을 스캔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스캔이 되지 않은 영역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이전에는 그런 부분을 수작업하며 모델링을 해야 했는데, 리빌더에이아이는 AI를 활용해 3D 사진에서 빠진 영역을 구현해냅니다. 이주완 대표는 올해 애플이 공간 컴퓨팅을 발표했을 때 심장이 뛰었다고 했는데요. 앞으로 가상 공간이 활성화되면 3D 콘텐츠의 활용도도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형2)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실제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는 또 별개의 능력입니다. 발표 장표에서는 끝없는 성장 그래프를 그려낼 수 있지만, 그 성과를 뒷받침할 생산 능력은 어떻게 갖춰나갈지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역시 그런 질문이 나옵니다.
김유진 대표는 농산부산물로 친환경 코팅 용기를 만들어 일회용품을 대체하겠다는 ‘나누’의 이윤노 대표에게 “현재 생산 캐파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또, “꾸준히 납품하는 채널 고객은 있는지”도요. 시장에서 원하는 만큼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현재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지속가능성은 다른 말로 ‘고객에게 얼마나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신뢰 받지 못하는 기업은 고객에게 외면 받을테니까요.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발효 펄프의 품질관리는 어떻게 하는지”를 물었는데요. 일회용기는 음식이 직접 닿는 제품입니다. 성분과 품질이 제품의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질문을 받은 ‘나누’라는 스타트업은 “일회용품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는 역발상을 갖고 태어난 곳입니다. 일회용기이기는 하되, 친환경 펄프용기로 만들어 재활용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것이죠. 친환경 펄프 용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원료 배합 -> 페이퍼몰드(종이로 만들어낸 포장재 형태)-> 친환경 코팅’이라는 세 단계 공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나누 측은 현재 제주공장에서 원료 배합을 위한 환경 구축은 마친 상태이고요, 내년 2분기까지 페이퍼몰드를 위한 공장을 완공하겠단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거친 환경이 있는데요, 대기업이 안 하는 후가공을 도맡음으로써 협력관계가 될 수 있음도 시사했습니다. 우선은 사발면 용기로 부터 시작해 일회용컵과 도시락 용기를 거쳐 세상의 모든 일회용기를 대체해보겠단 꿈을 갖고 있죠.
유형 3) 예상 가능한 현실적 어려움을 묻다
현실적인 질문도 합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계열사나 관계사와 돈독한 협력관계를 강점으로 가진 스타트업 ‘보다에이아이’에게 이용관 대표는 “대기업과 협력관계가 매출을 빨리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수익을 늘리기에는 구조적 이슈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아마도 대기업과 하청구조에 있는 회사들의 마진율이 박하고 따라서 수익성이 높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창연 보다에이아이 대표는 이 질문에 “부품 협력사, 즉, 일차 벤더가 더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상위 그룹사의 생산 품질 개선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이용관 대표는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처럼 답하기 어려워보이는 까다로운 질문도 했는데요. 역시 보다에이아이에 던진 질문입니다. “원가절감과 품질 개선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는 것이죠.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어서, 만약 저라면 대답하기 어렵다고 느꼈을 것 같은데요. 전창연 대표는 “현재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검사의 정확도가 높지 않아 장비를 켜놓은 채 운영하지는 않고 비용만 내는 머신비전을 ‘살아있는 좀비’라고 부른다”고 표현하면서 “일차적으로는 품질 안정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보다에이아이는 현대자동차에서 분사해 독립한 스타트업입니다. 자동차 부품 공장과 같은 제조현장에서 제품의 품질 분석에 활용하는 플랫폼을 개발합니다. 제조 기업들에도 데이터 분석은 중요하지만, AI와 같은 기술 활용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이미 구축해놓은 자동화 생산 설비를 AI 솔루션 등에 연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보다에이아이가 중점을 두는 것은 정량화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량을 판별, 다시는 그런 불량이 나오지 않도록 개선된 품질 검사 프로세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자동차와 PoC 단계를 거치면서 제품의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경쟁력 중 하나겠네요.
한편, 이지혜 KB인베스트먼트 상무는 생활가전 렌털 플랫폼을 표방한 ‘렌트리’의 서현동 대표에게 “서비스 이용 후 고객이 제품을 반납하거나 수거해야 할 상황이 생길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이 의미 있는 것은, 통상은 “어떻게 파느냐”에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잘 파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품의 전 주기에서 기업이 신경써야 할 부분은 예상 외로 많죠. 고객 응대에서부터 사후 품질관리와 유지보수까지, 귀찮아도 잘 해내야만 하는 영역들입니다. 렌트리의 경우에는 렌털 커머스 포털로 역할하기 때문에 반품이나 수거 영역은 제조사가 맡는 것으로 역할이 분리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