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실리콘밸리? “강박 갖지 말라…디테일 챙겨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 11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1784 신사옥에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를 개최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혁신과 한국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행사로 2014년부터 매해 개최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실리콘밸리에 몸담은 한국인들이 현지 진출을 현실적으로 되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국내 창업가들이 막연한 생각으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거나 플립(해외 본사 설립 후 기존 법인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만류하는 목소리가 여러 번 나왔다.
“우리가 실리콘밸리 진출에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업종에 따라 한국에서 사업이 더 잘될 수 있는 것도 있고요. 어떻게 접근하냐면 이걸 유학하는 것처럼 생각하라 말하고 싶어요. 별로 잃어버리는 것 없고, 차에서도 자면서 해볼 수 있다면 죽어도 가겠다 그러면 해도 되고요. 한국에서 매출이 쭉 나오고 미국에서 20~30억 날려도 큰 문제가 없다가 아니라 여윳돈 2억 3억 밖에 없는데 그걸로 미국에서 1년 하면 성과가 나오겠지 하는 게 가장 위험합니다. 아예 어릴 때나 아니면 졸업하고 유학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리스크 관리에 도움되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김범수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파트너)
“어느 날 갑자기 진출하겠다고 가면 진짜 어려워집니다. 진출해야 되는 이유가 생긴다면 실리콘밸리에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가 먼저 좀 몸으로 부딪혀 보고, 직접 살아보면서 여러가지를 느끼고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
“실리콘밸리 진출 성공과 실패의 가장 큰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고 봅니다. 비즈니스는 그 컬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인데, (제품에 현지 문화를 녹여내는) 디테일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플립(해외 이전) 절차를 먼저 밟아 놓으면 왔을 때 아무것도 안 될 수 있습니다.”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 겸 엘비스 창업자)

이상적 포부 그대로 가졌으면
김범수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파트너는 한국에서 스타트업 투자 업계에 몸담았다가 20년전 실리콘밸리로 넘어간 인물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와 한국 창업가들 간 차이점에 대한 질의에 일반화할 수 없지만, 곱씹을 만한 개인적 감상을 꺼냈다. 두 곳의 창업가들이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같지만, 한국에선 현실과 타협해 사업화가 쉬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넘어간 지 20년이 넘은 이진형 대표도 이 점에 대해 동의했다.
“예를 들어 로켓을 매번 쐈다가 버리니까 이걸 발사대에 다시 착륙하게 만들어보자 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엄청난 경제성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을 스페이스엑스가 했잖아요. 그게 어려웠을 거란 말이예요. 한국을 스테레오타이핑(고정관념화)하고 싶진 않지만, 제가 만나는 한국 사업자들을 보면 우리가 풀려니까 문제가 너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조금 바꾸고 타협해서 풀기 쉬운 문제로 하면 사업화는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원대한 목표를 뒷받침하는 ‘돈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엔 여전히 투자금이 몰리는 까닭이다. 투자 혹한기라고 하나, 여러 지역 중에선 실리콘밸리가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뉴욕과 보스턴에 몰린 기업 투자금을 배 가까이 뛰어넘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최근 벤처캐피탈 투자금이 줄긴 했으나, 실리콘밸리에 대해선 “오늘도 안녕하다”고 김 파트너는 전했다.
“실리콘밸리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제가 생각하기에 간단합니다. 한국에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한 20년 정도 실험해서 진화를 하고 있는 형태라고 보면 실리콘밸리는 그 진화의 과정을 지난 60~70년 동안 거쳐왔습니다. 우리보다 더 많은 실험이나 더 많은 돌연변이들이 나와, 그 중에 일부는 죽고 일부는 살아남았죠. 가장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서 진화한 형태의 생태계를 갖고 있으니까, 꼭 그 생태계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더라도 앞으로 40년 진화에 있어서 보고 배워서 우리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뇌 건강도 챙긴다…연내 ‘뉴로매치’ 솔루션 출시
실리콘밸리가 주목하는 엘비스(Lvis)를 창업한 이진형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신경과와 공과대 전자공학과 종신 교수에 올라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엘비스에선 두뇌 회로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플랫폼인 ‘뉴로매치’를 개발 중으로 연내 출시를 앞뒀다. 디지털트윈(가상환경 복제) 뇌를 만들어 뇌전증을 포함해 다양한 뇌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플랫폼이다.
“노인성 질환인 치매가 증가하는 트렌드를 바꾸는 기술이 없습니다.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국가 단위로 투자했으나 아직 솔루션이 없습니다. 치매의 경우 약 개발하는 데에도 1조원이 넘게 들어가는데요. 약물 수십개에 엄청나게 투자를 했었고, 작년과 올해 2개가 승인이 났지만 효과가 아직 미미하고 부작용이 많아 치료했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뇌에다 전극을 꽂아서 전류로 뇌 질환을 치료하는 그런 방법이 있는데요. 문제는 뭔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뭘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에 부딪힙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아무 데나 꽂아서 클리닉을 해보니 이 사람은 아닌가 보다 결론 내리기도 하고, 성공했다는 의미는 좀 효과가 있으면 잘했다고 하는데 이런 방법으로 치료는 상상하기가 어렵죠.”
이 대표는 뇌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기능들을 알아내기 위해 측정 관리가 필요하겠다고 착안했고, 15년간 뇌 연구를 바탕으로 그러한 측정 방법론을 만들었다. 2021년 뇌 질환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특정 질환에 대해선 모델링을 하게 됐다. 뇌 기능 조절과 단백질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상관 관계를 처음 알아내, 어떻게 조절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지 실마리를 얻어 간질 솔루션을 출시한다.
“뇌 기능이 증가하는 곳에 단백질이 줄어들고, 줄어드는 곳에 늘어나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을 했고, 디지털트윈으로 뇌 기능을 리포티드합니다. 엘비스의 철학은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상태에서 뇌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GPS가 있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뇌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뇌 기능 정보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케어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요.”

AI로도 기업이 운영되네
유현호 대표가 창업한 옥소폴리틱스는 자산의 정치 성향을 테스트하고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실시간 여론 데이터 플랫폼으로도 소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거쳤다. 스무 명을 갓 넘긴 시점에 무려 3명으로 줄이는 결단을 내렸다. 그 이전 챗GPT가 유행하면서 이를 발빠르게 도입했고, 기존 콘텐츠 제작과 엔지니어링 인력까지도 대체할 수준까지 활용하게 됐다. 그는 관련 경험을 전했다.
“저희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잖아요. 정치 스타트업하실 분들 있으시면, 저에게 꼭 말씀주시기 바랍니다. 왜 안되는지 어떤 기회가 있는지 말씀드릴 수 있고요. 저희가 점점 돈이 떨어지고 해서 정리해고를 하게 됐습니다. 3명 수준으로 확 내려갔는데, (회사가) AI로 돌아가는 거예요.”
유 대표는 정치 뉴스를 모아서 요약하고, 또 질문을 만드는 등에 AI를 활용했다. AI를 거치면 전 세계 언어로도 대응이 가능했다. 이러한 업무를 자동화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는 “이제 사람의 언어로 컴퓨터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AI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나중엔 사람들이 보더니 옥소폴리틱스 너희가 만족했으면 우리가 AI 플랫폼을 가져다 쓰면 안 될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업무 자동화) 프로덕트를 발표합니다. AI를 도입할 때 제일 어려운 게 뭐냐하면 사고 전환입니다. 자율주행차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지금 길을 돌아다니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도시 전체를 자율주행 도시로 바꿔버리면 자율주행차를 만들기 굉장히 쉬운 일이 됩니다. 워크플로우 자체를 한 사람 한 사람 어떻게 대처할까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데, 업무 구조를 다시 짜버리면 쉽게 접근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런 컨설팅을 (저희와) 클로즈베타 해보면서 AI 트랜스포메이션 해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을 거 같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