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조사권에 한은 투입…엇갈린 업계 반응

가상자산 법안이 정무위원회(정무위)의 문턱을 넘었지만, 한국은행의 가상자산 시장 조사권에 대해 업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11일 정무위에 따르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통과했다. 이 법안은 이용자 보호에 대한 내용을 담은 1단계 법안으로,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될 예정이다. 영업행위 및 가상자산 상장 등에 내용이 담긴 2단계 입법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추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금융위는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감독·검사 권한을,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을 부여 받는다. 금융위는 필요한 검사·조사권한, 시정명령·영업정지·수사기관 고발 등 처분 권한 등을 규정할 수 있으며, 금융위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 일부를 금융감독원장에게 위탁할 수 있다.

가상자산 법안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기존 금융위원회에 제한됐던 규제 및 자료 요청 권한이 한국은행으로까지 확대된 것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긍정하는 반응과 더 많은 규제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우려하는 등 반응이 엇갈린다.

갈림길의 중심 ‘CBDC’

한국은행의 시장 조사 관할권에 대해 국회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바 있다. 한국은행이 자료 요청 권한을 얻은 ‘CBDC’를 가상자산 정의로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BDC를 가상자산 정의에서 제외하자는 내용과 한국은행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해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자는 내용의 법률안(암호자산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CBDC는 디지털화된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현금으로, 현금없는 경제가 도래할 것을 대비해 공신력 있는 중앙은행이 발행화폐를 보유하자는 취지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 따르면서 관련 화폐를 국가가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금법을 개정할 당시엔 한국은행이 CBDC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최근 한국은행은 CBDC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일단 명확하게 규정을 해놓고, 특정금융정보법을 동일하게 바꾸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또한 스테이블 코인이 자국 통화를 대신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조사, 감독 권한을 가져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장은 지난 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를 대체해 사용할 수 있어 통화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은행이 조사, 감독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다른 자산과의 연동을 통해 가치를 안정화하는 코인으로, 1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것(페깅)이 특징이다. 주로 가상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지난해 UN(국제연합)이 지난해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스테이블코인으로 지원금을 보내 관심이 쏠린 바 있다.

그러나 금융위 측은 CBDC가 가상자산에 대한 개념과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가상자산 개념에 대한 이견이 많은 가운데, CBDC를 가상자산이 아니라고 법률 상으로 명시하면 대체불가토큰(NFT)과 증권형 토큰(STO) 등의 정의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민우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난 3월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불가피하게 이를 명시해야한다고 한다면 추후 관련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을 때 이를 배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엇갈리는 업계 반응

국회 측이 한국은행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업계에선 반응이 갈린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일지 몰라도, 사업 운영에 있어서는 혁신이 저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금융위 눈치 보느라 해야 할 사업도 못하고 있는데, 한국은행 눈치까지 보면 얼마나 힘들지 솔직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오히려 시장의 자율 규제나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서로 권한을 미루려고 했다면 지금은 가상자산 시장에 당국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시장 차원에서 바라봤을 때는 더 안전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또한 시장을 규율하는 기관이 많을수록 긍정적인 효과를 볼 것이라는 반응이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거래소 등의 사업자 입장에서는 심판이 많아지거나 들어야 하는 잔소리가 많아지면 불편할 것”이라면서도 “시장의 투명성과 미래를 생각하면 감시하는 눈이 많을 수록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시장이 5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가 회원사로 있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협의체(닥사)에 의해 자율규제 되고 있는 가운데, 자율규제 차원에서도 투명하고 건전한 자율규제 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중심인 미국은 현재 가상자산을 ‘상품’과 ‘증권’으로 구분하고, 상품인 경우엔 상품거래위원회(CFTC), 증권인 경우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관할하고 있다.

오유리 빗썸경제연구소 정책연구팀장은 “SEC와 CFTC가 상호견제와 균형을 통해 두터운 소비자 보호 방안 입법 발의를 하고 있다”며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담론을 이끄는 이들의 이어가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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