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말 바꾼 삼성전자, 적자가 얼마길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지난 1분기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죠. SK하이닉스는 영업손실 3조4000억원을 내면서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요. 삼성전자도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에서 14년만에 적자 전환했죠. 심지어 4조5800억원이라는 역대급 적자입니다. 반도체 불황이다 불황이다 했는데, 진짜로 반도체, 특히 메모리 불황이 체감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메모리 업황 바닥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점차 나오고 있습니다. 곧 반등한다는 말이죠. 지난 3일, 마이크론은 각 유통사에 D램과 낸드 가격을 더 이상 인하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죠. 메모리 재고 수준이 어느 정도 정상화됐고,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이 향상되면서 그 여파로 메모리 업황이 곧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죠. 

YouTube video

메모리 업황이 앞당겨질 수 있었던 이유로는 모든 메모리 공급업체가 감산에 돌입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정도만 감산을 하고 있었는데요, 올해 초 삼성전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입장을 바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산은 인위적으로 생산라인에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는 것을 말합니다. 

삼성전자의 감산 선언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과거 메모리 시장 하락세가 있었던 때에도 삼성전자는 끝까지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라인을 재배치하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자연적 감산 정도만을 해 왔었죠. 웨이퍼의 크기는 12인치로 동일한데, 메모리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크기가 커지거든요. 그러니 더 큰 메모리를 같은 크기에서 만들면 자연스럽게 생산되는 제품 개수는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재고 조정이 자연스럽게 되는 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자연적 감산을 해 왔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던 2008년, 유럽 재정위기 상황이 있었던 2011년, 중국 경기가 악화됐던 2016년, 미중 갈등이 심화됐던 2018년에도 메모리 불황기는 왔었는데요, 그 때에도 삼성전자만큼은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젠가 불황이 끝나고 추후 호황사이클이 돌아왔을 때에는 메모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이득이거든요. 반도체 시장에는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나타나니, 조금만 버티면 다시 호황 시기를 누릴 수 있는 겁니다. 비싼 가격에 더 많이 팔 수 있으니, 일단은 쟁여놓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겠죠. 게다가 거시경제 영향으로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는 언제 물이 들어올 지 모르니, 일단 노를 젓고 있어 본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여파가 꽤나 심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생산라인이 늘어나면 라인을 재배치하고, 또 부족해지면 생산라인을 늘리고 라인을 재배치하고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던 겁니다. 전사 영업이익은 6400억원을 기록했고, DS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내버렸으니,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 알 수 있겠죠. 삼성전자 내에서는 “실적이 우상향 곡선을 그려야만 한다”는 기조가 있는데요,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내부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을 지는 예상이 되죠.

결국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입장을 바꿨습니다. 장기적으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하고 선단 공정 중심의 설비 투자는 과거의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지만, DDR4와 같은 레거시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에 돌입하겠다는 말이지요. 메모리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감산에 돌입하니, 메모리 업계 전반이 곧 업황 회복이 일어나겠다고 기대를 거는 분위기입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모든 메모리 업체의 감산 돌입이 즉각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일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2분기를 지나 하반기부터는 그 효과가 충분히 드러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죠. 

SK하이닉스 측의 발언을 한 번 살펴볼까요. SK하이닉스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의 감산 조치가 업계에 확연한 변화를 이끌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현재 메모리 현물가는 바닥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일부 고객사를 중심으로 2분기 수요 증가분 대응을 위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점점 줄어든 재고를 채우기 위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점차 업황이 회복하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겠죠.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감산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인프라 투자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자금 상황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에서 5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용인시에도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투자도 함께 단행하고 있죠. 돈 나갈 구석이 많은 겁니다. 결국 삼성전자에게는 수익성을 확보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감산을 단행하면 영업이익을 보존할 수 있으니, 결국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메모리 시장에는 늘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언제는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 호황을 맞았다가, 어느 순간 재고가 수요보다 많아 곧 불황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메모리의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그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수요가 단시간에 뚝딱 하고 늘어난 생산량에 맞춰 증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업계가 그렇겠지만, 기가 막히게 수요를 딱딱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거시경제 리스크가 상존할 때에는 수요를 종잡을 수 없어 업황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기도 합니다. 지금의 불황은 그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모든 메모리 공급업체의 감산으로 업황이 회복하고 경기도 곧 회복하게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영상제작_ 바이라인네트워크 <임현묵 PD><최미경 PD>hyunm8912@byline.network
대본_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