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우선’이라던 정부, 게임 진흥 정책은 어디에?

취임 100일을 맞이한 윤석열 정부에 ‘게임’은 관심 영역 밖으로 보인다. 대통령 후보 시절 내놓은 여러 게임 공약을 지킬 의지가 없어 보이는 데다 게임 산업을 등한시하는 모습이다. 지난 7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대통령에게 5대 핵심 과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추진과제 중 게임이 빠져있어 게임을 ‘패싱’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문체부는 영화, OTT 콘텐츠, K팝 등의 성과를 소개하며 경제 성장 축으로 선정한 반면 여기에 게임은 포함하지 않아 여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산업에서 게임 산업이 절반 이상의 수출액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게임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연간 매출액 중 게임 산업(14.4%)이 음악 산업(4.9%)과 영화 산업(2.4%)보다 비중이 더 컸다. 뿐만 아니라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 중 게임산업은 69.4%로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후보 시절 내놓은 게임 산업에 대한 관심이 단순 ‘선거용’에 불과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공약은 단지 선거용’?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청년층을 위한 공약으로 ▲전체 이용가 온라인 게임의 본인인증 폐지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 공개 ▲소액 게임 사기 전담 수사기구 설치 ▲이스포츠 지역연고제 ▲장애인 게임 접근성 개선 등의 공약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 측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게임 이용자 편의 확대와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 공약을 제시하며, 청소년의 회원가입 시 전체 이용가 본인인증(법정대리인 동의 의무) 의무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현행 게임 산업법에 따르면 게임물 관련 사업자는 게임 과몰입 방지를 위해 이용자의 회원가입 시 실명∙연령 확인과 본인인증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본인인증 대상에는 전체 이용가 게임물도 포함된다.

아울러 확률형 아이템 정보 투명성에 대해서도 강조한 바 있는데, 당시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불공정 행위로 게이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며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조작하지 못하도록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반 국민이 감시할 수 있게끔 감시 기구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일정 규모의 게임사에는 게임보호권익위원회를 설치해 게임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이외에 이스포츠 산업을 지역연고제로 시행하고, 지역별로 이스포츠 경기장을 신규 설립하겠다는 계획과 게임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장애인의 게임 플레이를 돕겠다는 것이 공약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 중 공약이 추진되거나 실행 의지가 보이는 건은 하나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체부가 대통령 업무 보고서에서 게임 산업을 제외해 불만은 거세지고 있다. 이후 문체부는 게임 인재를 교육하겠다는 계획을 추가했지만, 드라마∙K팝 등에 비해 진흥 계획이 미비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같은 정부의 처사는 게임 산업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도외시하겠다는 의지로밖에 볼 수 없다”며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은 게임 분야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무관심, 그 이유는?

‘게임 패싱’과 관련한 문제 제기는 지난 4월 윤 대통령이 문체부 장관으로 박보균 전 중앙일보 편집인을 후보로 내정하면서 지적돼 온 바다. 당시 일각에서는 박 장관의 활동 경력이 정치 분야에 집중돼있다는 점을 들며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서 전문성이 없다고 지적했지만, 박 장관은 “게임산업의 진흥을 위해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

그러나 걱정은 현실이 됐다. 한 야당 관계자는 “정부의 초대 장관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어떤 분야에 초점 맞추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게임산업과 관련한 내용도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모습에 걱정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지가 있었다면 게임법 개정안 발의와 관련한 추진 행동을 보였을 것”이라며 “이 또한 문체부의 게임 산업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첫 번째 업무 보고에서 많은 여야 의원들이 게임 질의를 한 것으로 보아 여당 측에서도 게임 산업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발언에서 그치는 것에 불과해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의 게임 패싱과 관련해서 게임사 측들은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 임기가 남았으니 그저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게임 패싱과 관련해 “지지율 관리 차원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게임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을 때의 지지율 하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낮은 지지율과 해결 해야 할 여러 사회적 현안이 밀려 있는 상황 속, 집단 내 호불호가 강한 사안인 게임 산업은 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 안에서도 게임 진흥과 관련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하기도 했다. 해당 관계자는 “게임사들만 게임 규제에 관심 있기 때문에 사안의 중요성이 알려지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사뿐만 아니라 게임 이용자들 또한 게임 규제와 관련한 목소리를 내는 등의 화두를 던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 많지 않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게임업계는 현재 P2E(Play to earn, 돈 버는 게임)와 관련한 규제 가이드라인이나  중국 판호 문제, 메타버스 등급 분류, 게임 질병코드 등의 문제로 머리를 싸매는 상황이다.

특히 판호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지난 2020년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가 중국 판호를 받은 건 가만히 내버려뒀기에 중국 정부가 승인한 건 아니”라며 “지속적으로 정부 측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라고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현 정부가 게임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렸다는 건 굉장히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중국의 저작권 침해 문제 또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의 관련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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